요즘은 이래 삽니다.
1984, 동물농장, 까딸루냐 찬가 등으로 유명한 소설가 조지 오웰은 그 저작에서도 익히 알 수 있듯, 젊은 시절 내로라 하는 영국 공산당원이었다. 그는 스뻬인 내전에 참전하기 위해 약혼녀와도 헤어지고 혈혈단신 걷고 뛰고 기차 타고, 동지들의 차도 얻어타며 기어이 스뻬인까지 건너가 민중의 자유를 위해 싸운다. 그 신산한 고생은 그의 역작인 까딸루냐 찬가에도 잘 적혀 있거니와 그 유명한 켄 로치 감독의 랜드 앤 프리덤에서 역시 젊은 조지 오웰에게 술병을 건네주다 그 신발에서 나는 악취에 진저리를 치던 병사가 농을 던지던 명장면도 있다. '당신 발냄새로 자본가 돼지 놈들도 죽일 수 있겠군!' 그로부터 몇 세기가 흘러, 지금 우리는 각종 매체를 통해 또다시 전쟁을 접하고 있으며, 간호사 출신인 안식구가 만약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코로나 사태에 봉사하러 갔으리라고 말했듯이, 나 역시 총각이었다면, 여전히 비루하게 한국에서의 삶을 이어나가고 있었다면, 차라리 욱하는 치기에서라도 한번쯤 저 이근 대위처럼 우크라이나 행을 고민은 해봤을터이다. 아직은 근대 무기가 썩 발전하지 못하던 시절, 오로지 사람 하나가 기관총 한 자루로 대체되던 시절, 전세계의 젊은이들은 생전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낯설고 말설고 물선 땅에서 오로지 인간답게 살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쳤었다. 나는 그 기록을 알고 있다.
신동엽 시인이 민중의 아픔에 분노하기보다, '당장에 고깃점 대신 기름덩이만 둥둥 뜬 국밥' 에 오히려 더욱 분노하는 스스로가 서글프다고 자조했듯이, 우리 역시 유튜브로 댓글을 달고, 뉴스를 보며 공분하지만, 실상 전쟁의 여파란, 하루가 다르게 뛰어가는 석유값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똑같이 사람으로 나서, 같은 하늘 아래 누구는 목숨을 걸고 뛰어다녀야 하고, 나와 아내는 아이의 웃음을 보며 유모차를 밀고 다닌다. 누군들 이렇게 살고 싶지 않으랴. 세상의 불공평함에 가끔 내 스스로 안주할 때가 있어 무섭고 두렵다.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커서 이제 고집이 늘고 활동반경이 넓어졌지만, 서툴게 말도 하려고 노력하려고, 애비에미 말은 진작에 알아듣고 눈치도 빨라져서 한편으로는 편한 점도 있다. 나는 가능한 일찍 일어나 태권도 연습을 하거나 화요일 목요일 저녁에는 도장을 도우며, 그 외의 시간에는 언제나 집에서 처자식과 함께 있는다. 아이의 피부는 정말 좋아져서, 나도 보람을 느끼고, 시간내어 근력 훈련도 할세라, 차라리 근력 훈련이라 여기며 늘 아이의 몸에 닿는 옷들을 직접 손으로 빨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아내가 간식과 옷을 챙겨 나갈 준비를 하면, 늘 밤마다 밖으로 나가 놀이터에서 아이에게 그네를 태우고, 미끄럼틀을 태우고, 시소를 태우고, 같이 길을 걸으며 힘을 쭉쭉 빼놓는다. 아이가 지쳐 늘어져 유모차에 매달리면, 비로소 아내와 나는 아이를 태우고 공원길을 좀 더 돌다가 집으로 돌아온다. 그때쯤 달맞이를 하거나, 내가 쉬는 날 낮부터 나와 계시는 어르신들께서는, 요즘처럼 애도 안 낳고 결혼도 안하는 시기에 애국자네 애국자야, 옳게 된 부부야, 라고 하시지만, 보이기만 그럴 뿐이다.
오늘은 내가 쉬는 날이라, 아내와 어머니는 잠시 일을 보러 외출을 했다. 어머니는 날이 풀리면 곧 아버지와 당분간 제주도살이를 하시겠다며, 간 김에 아내와 소은이를 초대해서 2주 동안 제주도를 실컷 구경시켜주시겠노라며 서류 준비를 하겠다고 하시었다. 좋겄다, 전소은, 두 돌 지나고 뱅기 타고 제주도도 다 가보고, 아부지는 서른 넘어서 출장으로 첨 갔시야, 농을 치며 나는 혼자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서 실컷 놀다가 지나가던 어느 노부인께서, 젊은 아빠, 애 좀 보게, 자꾸 바닥으로 몸이 꺼지는것을 보니 엄청 졸린갑네, 하시어 그때서야 서둘러 돌아왔다. 아닌게 아니라 아이의 눈은 그새 졸음으로 퉁퉁 부어 눈두덩이 주먹만한데도, 워낙에 계단오르기를 재밌어 하여, 계단을 쭉쭉 올랐지만, 몸은 졸음에 취해 제대로 걷지 못하고 몇번이고 앞으로 미끄러졌다. 사실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고, 당연히 그럴 수 있는 일이었고, 계단 품도 아이 몸에 비하면 훨씬 넓어 위험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 때 아이가 넘어질 때, 내 혀에서는 나도 모르게 쩟, 하고 혀 차는 소리가 나왔는데, 그 소리는 다름아닌 내가 아주 어렷을 때, 내가 하는 행실이 어머니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어머니가 대단히 못마땅하시어 내던 그 소리, 그 높낮이, 그 길이, 그 무게였었다. 물론 나는 결코 소은이가 넘어진 것이 기분나쁘거나 못마땅하여 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다만 그토록 진저리치고 무서워했던 그 소리가 내 혀에 그대로 남아 있구나, 내가 그 소리를 자식에게 들려주고 있구나, 생각하여 나도 모르게 조금 찔끔했다.
아이는 간식을 잘 먹고 제가 스스로 졸려서 눈을 부비며 제 방 안 울타리로 들어가 입 안에 쪽쪽이를 물고, 애착인형을 품에 안고 잘 잔다. 그러므로 나는 단지 핏줄을 끊임없이 타고 내리며, 이어지는 무언가가 가족을 만든다고 생각하고 싶다. 아무리 거부하려고 해도, 가족을 만들고 나면, 이미 그 무언가는 나도 모르는 새에 계속 드러나는 것이다. 나는 한 가정의 아비이자 남편으로, 그냥 소소하게 술 마시고 책 읽고 태권도하며 여전히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