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독서감평)

다시 한번, 윤고은, 1인용 식탁, 문학과지성사, 2010, 한국

by Aner병문

어제 있었던 일이다. 대부분의 아비이자 남편들이 그렇듯이, 돈도 아낄 겸해서, 나는 자주 도시락을 싸거나, 혹은 컵라면 하나에 집에서 싸온 식은 밥 하나 때려넣어 후루룩 마시고, 책을 읽거나 잠시 눈을 붙이거나 하는 일이 잦다. 회사원의 점심시간이 다 비슷할 터이다. 그러므로 가끔 거리로 나가 점심을 먹는 날은, 정말 일이 힘들었거나, 뭔가 먹고픈게 있을 때나 있는 손수 발품을 파는 일이다. 직장 특성상 여럿이서 함께 밥을 먹지 못하는 탓도 있으나, 나이를 먹으며 점점 주고 받는 말이 편한 사람과 이야기하기 즐기는 요즘은, 차라리 밥 먹는 시간 30분 정도라도 혼자 조용히 만화라도 하나 보면서 있는 편이 훨씬 낫다. 어제 점심도 그러한 날이라, 나는 비교적 늦은 오후 2~3시까지 점심 특선 식단을 짜주는 식단을 찾아다니곤 했다.


쇠고기 육회와 초밥 '무한리필' 을 겸하는 식당은 늦은 시간 3시까지 점심 식단을 준비해주셨는데, 차림표를 보니 제법 그럴듯한 '달걀 후라이' 하나 얹어주는 돌솔김치볶음밥을 6,000원에 파는데다 양이 부족할 듯하여 곱배기가 되냐 여쭈었더니, 손님맞이를 하는 조선족 '아즈마이'가 시원스레 웃으시며, 아이 그까이꺼 주방에 밥 좀 더달라 하믄 되는거 가지고, 남자가 곱배기 흥정을 하오, 내 밥 더 주면 되는거 아이오? 하더니 정말 밥이 고봉으로 왔다. 문제는 내가 알던 김치볶음밥이라 아니라, 볶은 김치를 수북히 흰 밥에 올린, 굳이 말하자면 '볶음김치밥' 이었다는 사실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날치알도 솔솔 뿌려주시고, 뜨겁게 달아오른 돌솥 위로 흰 쌀밥은 치직치직 소리도 요란하게 눌어붙고 있어, 에라, 모르겠다, 뭔지 몰라도 일단 먹어보자 하면서 수저로 밥을 이래저래 뒤섞어 후후 불어 퍼넣는 순간에도 다른 사람들을 이 늦은 점심에 뭘 먹나 흘끔거리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식당은 저녁엔 쇠고기 육회와 초밥을 중심으로 술을 주로 파는 술집이었으나, 점심에는 또 9,000원짜리 철판 스테이크 정식을 파는 곳이기도 했다. 김치며 콩나물무침, 양파절임 같은 간단한 반찬에 역시 뜨겁게 달군 돌접시 위에 푸른 겨자를 살짝 얹어 반쯤 익힌 스테이크를, 이 사람도 저 사람도 모두 썰어먹고 있었다. 다음에 오면 저 스테이크를 한번 먹어봐야겠다, 생각할 찰나, 내 맞은편에 있는 잘생긴 청년과 눈이 쓱 마주쳤다.



그는 숱 많은 머리에 넓은 어깨를 지녔고, 목뼈가 휠까 걱정될 정도로 렌즈가 첨성대마냥 높게 솟은 사진기를 메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혼자 고기를 구워먹고 있었다. 혼자 고기를 구워먹는 일이 잘못된 일도 아니거니와 또 종종 그런 이가 있다고 듣기도 했는데, 막상 눈 앞에서 보니 정말 낯설기는 하였다. 그는 혼자 바쁘게 고기를 굽다가, 또 카메라를 바로 들어 사진을 찍기도 하는 등, 뭔가 일을 하는가 싶기도 했고, 또 '네이버 공무원' 조석 선생의 만화마냥, 혹시 누군가 오는 척 하며 결국엔 혼자 먹는가 싶은데 그도 아니었다. 그는 혼자 고기를 구웠고, 혼자 사진을 찍었고, 또 혼자 열심히 고기를 먹었다. 만약 그가 '혼술' 이라도 한다 하면, 나는 기꺼이 그의 앞에 다가가 차라리 술이라도 한 잔 쳐주었을 터이다. 나는 강신주 선생의 '혼밥은 짐승이나 먹는 것이다.' 라는 표현에 결코 동의할 수 없지만, 적어도 그 말의 맥락은 이해할 수 있다. 술과 밥은, 교류하며 먹는다면 더욱 아름다운 행동이며, 고기를 굽는 일 또한 내 혼자 배불리 먹기보다는, 함께 둘러앉아 먹었던 기억의 오랜 전습일 터이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한 끼를 오롯이 혼자만의 행복으로 소중히 여기며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지 않은, 젊은 세대의 소중하도록 외로운 순간을 함부로 폄하할 수도 없다. 너는 나중에 내 이야기를 듣고, 반농반진으로, 쳐다보지 말라며 나를 일꺠워주었으나, 내가 김치볶음밥인지, 볶은김치밥인지 알 수 없는 음식을 퍼넣으며 힐끔거리는 그 순간에도, 남자는 의연한 태도로 사진을 찍고, 고기를 굽고, 밥을 먹는 세 가지 행위를 반복하여 나는 그 행동의 연유를 알 수 없었다. 아니, 한편으로 말하면, 굳이 연유를 알 필요 없는 행동이었다. 그가 만약 나처럼 혼자 김치볶음밥을 먹었던들, 내가 그토록 그를 낯설게 쳐다보았겠는가, 결국 사회의 언어는 공유를 전제로 하며, 내가 생각하는 사회의 언어도, 결국엔, 내 테두리 안의 작은 독선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자연스레, 윤고은 선생의 1인용 식탁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첫 소설집이기도 한 이 소설은, 정말이지 현대인들이 어느 작품이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귀한 소설들로 가득하나, 역시 표제작인 1인용 식탁이 그 중 지금도 선연히 기억에 남는다. 주인공은, 회사 생활에 지쳐 '혼밥' 을 당당히 하고 싶어하나, 혼밥을 하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하여 결국 '혼밥학원' 에 등록하여 혼밥하는 방식을 배우게 된다. 혼밥학원은 마치 도장처럼 철저히 계산된 교육 과정으로 학생들을 가르쳤고, 몇 단계의 시험 또한 거치도록 되어 있는데, 그 마지막 단계는, 가장 바쁠 저녁시간에 혼자 고깃집에서 고기를 굽고 술을 마시고 온 뒤, 그 영수증을 제출하는 것이다. 혼밥은, 내가 스스로 선택하고자 하는 자유의 방식이지만, 그 혼밥의 당위성을 얻기 위해 주인공은, 정형화된 형식- 조금이라도 사회와 겹쳐져 타인에게 이해를 손쉽게 구하고자 혼밥학원을 가는 방식을 택한다. 자본주의의 그늘에 무력하게 남아 있는 현대 예술을 예술이라 칭하기 어렵듯이, 주인공이 택한 혼밥의 방식 역시, 자유의 욕망에 따르기 보다는, 타인과의 소통을 충돌없이 정당하게 회피하려는 하나의 방식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나는, 이른바 '혼고기' 를 낯설고 신기하게 바라보던 나조차도 신기했고, 나 역시 별 것 없는 사회의 필부라는 사실을 또 한번 깨달았으며, 아무의 이해를 구하지 아니하고 독야청청 정말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삶이란 얼마나 대단히 외롭고 거친 것인가, 다시 한번 무섭고 두렵지 않을 수 없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