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어린이 주일과 어버이 주일을 연이어 맞으며.

by Aner병문

모든 어린이는 나이를 먹는다. 그리고 인연을 만나고, 생산의 때를 받아들이면, 어버이가 된다.



카리야 테츠 원작의 만화 '맛의 달인' 은 말 그대로 여러 요리를 가지고 일본 사회와 역사를 진단하는 어마어마한 기획의 만화다. 백여권이 넘어가면서 크게 두 가지의 줄거리를 가지고 있는데, 요리 및 예술에 정통한 두 부자가 각자 '완벽' 과 '최고' 의 메뉴라는, 인류사에 길이 남을만한 미식 식단을 만들고자 도전하는 내용과, 한편으로 어머니이자 아내인 여인의 죽음으로 절연했던 두 부자(父子)가 감정의 골을 메우고 다시 서로 연을 맺고자 하는 내용이다. 주인공 야마오카 시로(한국판에서는 야마오카 지로 로 오역되었다고 한다.)는 비록 아버지를 끝내 용서하지는 못하지만, 자신은 아름다고 현명한 아내를 만나고 자녀들을 낳아 행한 가정을 꾸리고자 노력하는데, 그때마다 주변 사람들은 '자네도 아버지가 되었네, 이제 조금이라도 마음을 열수는 없나?' 라며 그의 마음을 녹여주고자 노력한다.



딸아이는 정말 많이 컸다. 앞서 말했듯이, 아직 말은 덜 텄어도, 항상 옹알이를 하면서 무엇이든 제가 겪어보고 고민하고 해석해보려는 도전 의식 하나는 일품이었다. 물론 뭐든 꺾고 빨고 부러뜨리고 올라타고 눌러보고 당겨보는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 때문에 아내와 내가 진이 빠지는 것도 사실이다. 더군다나 아내는 나와 달라서 굵직하고 큰 일들은 앞서서 잘 처리하지만, 잔질잔질한 가정사는 늘상 미뤄두려고 하니 언제나 그 일은 내 차지였다. 사실 나는 미리 앞날을 헤아리거나 삶의 큰 그림을 잘 그릴 줄을 몰라서, 그저 매일 하던 일들을 잘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아비와 어미 사이에 아이는 정말이지 호방하게 자라고 있다.



서로 같아서 잘 어울리는 것도 아니요, 서로 달라서 잘 어울리는 것도 아니다. 서로 같아도 지루해하면 소용없고, 서로 달라도 상대를 바꾸려 들면 결국엔 피로가 된다. 본디 타고난 성격이 적지 않게 예민한 나와, 무딘듯 해도 은근히 다혈질인 아내는, 사실 여유가 없을때 서로 가끔 발끈하긴 하지만, 한 사람이 힘들어할때 나머지 한 사람이 덩달아 맞붙는 경우가 잘 없어 지금까지 잘 살아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린이로 각자 커온 두 사람이 비로소 어른 흉내를 내며 아이 하나를 돌보고 있다. 아내와 아이와 계속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훈련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