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자람과 늙음 - 나이를 먹는다는 것.

by Aner병문

아이가 정말 많이 컸다. 새삼 아침에 일어날때 선이 굳어가는 아이의 얼굴을 보아도 그렇지만, 제주도에서 3주만에 볼 때, 제가 무슨 시라소니나 평양박치기마냥 내 몸을 무너뜨릴 듯, 펄쩍, 품 안에 머리부터 뛰어들며 압빠!! 하는데 정말이지 그 순간 몸에 다가오는 무게, 온기 등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통섭의 학자' 로 유명한 최재천 박사님의 유튜브를 즐겨 보는데, 이 위대한 석학께서 말씀하시기를, 본디 유인원은 털이 길어서 천적의 공격을 받으면 새끼가 어미의 털을 잡고 매달리기 때문에 굳이 신경쓰지 않고 도망갈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오히려 털이 없어졌을까? 털뿐만이 아니라 침팬지처럼 날렵하지도 못하고, 오랑우탄처럼 힘이 세지도 않으며, 기타 맹수들처럼 날카로운 발톱, 이, 두꺼운 가죽을 가지지도 못하였다. 최재천 박사님은 인간은 대신 뇌에 투자를 했고, 이 뇌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털이나 가죽보다 더 질기고 두꺼운 '유대감' 이라는 인식을 생성하는데 성공했다고 했다. 너와 내가 서로 남이 아니라, 협력하고 사랑해야될 관계라는 인식과 마음이 인류의 강력한 무기이자 기반인 문명을 만드는데도 일조했다고 하셨다. 유학에서는 이러한 개념을 서(恕) 라고 이른다고 여러 차례 적은 바 있다.



그런가 하면 아이는 확실히 자기 뜻이 단단해지고, 생각과 고집이 늘었는데, 이제는 예전처럼 무조건 제가 좋아하는 화장실이나 TV 앞에 가지 않고, 제가 원치 않으면 과감히 거부할 줄도 알게 되었다. 워낙에 물을 좋아하므로 예전에는 화장실 문만 열어놓으면 항상 변기 위로 뛰어올라가 세면대에 놀겠다고 떼를 쓰기 일쑤였는데, 요즘은 제법 의젓하게 고개를 홱 돌려 다른데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설거지를 하면 뭘 하는지 보고 싶어서 작은 의자를 올려놓고, 개수대에 턱을 괸 채 빤히 쳐다보는데, 어떤 날은 저도 아비처럼 손을 높게 뻗고 싶었는지, 작은 의자와 종이 상자 몇 개를 끙끙대며 가져와서, 가스레인지 주변으로 오지 못하게 둘러쳐놓은 울타리 옆에 쌓아두고는 마치 젠가놀이를 하듯이, 이리 쌓고 저리 쌓고 하면서 어떻게든 단단한 받침대를 만들려고 고개를 갸우뚱갸우뚱 하면서 저 혼자 고민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 다음부터는 아내도 나도, 제 뜻이 있구나 조금 인식을 해서 뭐든지 아이를 통제하려고 하지 않고, 우리가 보는 앞에서 부모가 하는 일을 저도 할 수 있게끔 마련해주었다. 예를 들면 우리가 국수를 먹으면 저도 국수를 먹게 따로 담아준다거나, 우리가 콩밥에 넣을 콩을 나누어서 담을때, 아이도 할 수 있게 그릇에 조금 콩을 담아 저 스스로 나눠보게 한다거나 하는 식이다. 어느덧 제법 커서, 이제 제가 쏟은 물이나 우유는 조막손으로 헝겊을 잡아 제가 쓱쓱 닦을 줄도 알고, 우유를 마시고 싶으면 쪼르르 냉장고로 기어 올라가 기어이 큰 우유통을 싸안고 가져오기도 해서, 결국 우리 부부는 몇 번 웃다가 그냥 뚜껑 달린 큰 우유통을 사기로 했다.아이는 이렇게 커가고 있다.



그러나 나이 먹음에 대한 이야기를 마저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 소은이를 낳았을때, 우리 부부는 부모로서의 첫 발을 내딛었고, 그 것은 코스모스의 첫 장처럼 한 생명의 탄생과 성숙을 지켜보고 다시 겪는 일이기도 했다. 아이를 씻기고 떠먹이고 입히고 재우면서, 우리는 우리 윗세대의 부모가 얼마나 희생했는지 깨달았고, 모자랄망정 우리 젊은 부모가 그 희생을 대물림하고 있구나 생각하여 가슴벅찼다. 태권도를 할 수는 없었지만, 그 때 나는 아이와 다시 자라나면서, 다시 기고, 다시 서고, 다시 걷는 법을 배운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므로 아이가 나와 태권도를 할 수 잇게 될 때 나의 태권도는 더욱 성숙하겠구나 생각햇던 적도 있었다. (그러고보니 아이가 다 클 때 동안 금주하겠다는 약속을 분명히 한 거 같은데, 그건 못 지켰다..^^;;) 아이가 점점 커갈수록 우리도 나이먹었고, 우리는 점점 자식을 싸안은 부모가 되어 분명 세상에 더욱 방어적인 태도를 지니기도 했다.



그러고나서야 비로소 주변 동네의 어르신들이 좀 더 눈에 들어왔다. 우리보다 먼저 젊었고, 우리보다 먼저 나이 드신 분들. 우리가 자주 가는 마트 앞에는 종이상자를 가득 쌓아놓고 혼자 그를 분리하는 품위 있는 노부인이 계신다. 낮이고 밤이고 항시 종이를 정리하시어 수레에 쌓으시다가, 최근 소은이와 눈맞춤을 하시고 인사도 많이 하시고, 늘 품에서 요구르트 두 개를 꺼내어 아이 손에 쥐어주신다. 소은이는 요즘 주변 어르신들께 하도 귀여움을 받아서, 이제 낯선 어르신에게 제가 먼저 인사하고는 두 손을 내밀며 뭘 달라고 조르는게 버릇이 되어버려 혼내고 있다. 종이를 정리하는 노부인께서는 항상 우리 부부를 예뻐하셨고, 그래서 우리는 그 분께 큰 두유를 한 상자 사드렸다.



그런가 하면 우리 회사 앞의 눈이 맑은 노숙자 어르신은 여전히 여유롭고 한갓지게 산다. 그 분의 이야기를 할때마다 아내는 사실 썩 좋아하지 아니하고, 너는 깔깔 웃으며 여전히 부러워하는거야? 되묻는다. 한동안 입성이 깨끗하시더니, 최근에는 꽤 추레해진 모습으로 마주쳤는데, 품 안에서 꾸깃꾸깃한 담뱃갑과 라이터를 꺼내어 담배 한 개피 멋지게 입에 물고는 또다시 느긋하게 벤치에 앉아 우리를 물끄러미 보시는 것이었다. 제주도에 있을 때, 어머니는 관광객이 가득한 수산물 시장을 답답해하시었는데, 그래서 아내는 본인이 회뜨는 순번을 기다릴테니, 나더러 어머니를 모시고 시장 밖으로 나가 있으라 했다. 시장 밖에 어머니를 앉히고 나서야 그 곳이 시장 앞 노숙자 양반들의 터전임을 알았다. 한동안 코로나로 오지 못했던 밥차가 오는 장소였던 모양인데, 각앙갹색의 어르신들이 추레한 몰골로 막걸리를 나눠마시고 있었고, 두 아주머니가 날이 선 제주도 사투리로 서로 싸우고 있었다. 잘은 알아듣지 못했어도, 한 분은 밥차를 편드는 축이었고, 한 분은 시장 상인을 대표해서 악취가 나고 소란스럽고 무서워 못살겠다며 언성을 높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노숙자들은 서로 막걸리 병을 돌려가면서 마시기에 여념이 없었는데, 그 중 한 명이 '어이, 이제 우리도 그만 마시고 일어나지.' 하고 아주머니들 눈치를 보는듯한 언행을 하자, 다른 한 명이 픽 웃으며 뭘 그런걸 신경쓰냐는 투의 말을 했던 것 같고, 그러자 그 분은 '뭐, 이 새끼야? 내 나이가 칠십이여!' 하며 갑자기 막걸리를 발로 팍 걷어차고는, 상대의 뺨을 거세게 올려붙였다. 어머니는 깜짝 놀라셔서 손가락으로 그들을 가리키며 '웜메, 저거 보소, 저거 보소' 하시기에 아이고, 엄니, 손가락질 하지 말어, 하면서 나는 어머니 앞을 막아서고, 그냥 그 자리를 떴다. 하지만 그 어르신들의 행적은 지금도 눈에 남아 있다. 전투경찰 일을 하면서도 종종 보던 광경이긴 하였다.



저들도 소은이처럼 티없이 맑게 태어난 때가 있고, 천천히 성숙해가는 때가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내 청춘이 한때의 부끄러움으로 휘어지고 얼룩졌듯이, 모두의 성장이 똑같이 유지될 수는 없다. 나는 아직 어린 내 딸의 나이듦이 어떤 늙음과 연결될지 알 수 없다. 내가 젊었을 적 부모님과의 관계가 좋지 못했듯, 우리가 아무리 신경쓴들 자식이 그 마음대로 되지 않으리란 것도 안다. 너가 걱정했듯이, 여동생도 나와 술잔을 기울이며, 오라방도 가만 보믄, 소은이 크믄 겁나게 꼰대짓 할것이여, 하길래 다들 그 소리 허더라, 안 그러덜 바래야지, 하며 그냥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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