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다는 것

by leaves

사람은 겉으로 보아선 알 수 없다. 만약 한번도 글을 써본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 자신이 정확히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내 주변에 글 쓰는 사람들을 보며 내가 느낀 것이다. 대학시절부터 따라다니던 선배, 합평회를 같이 하던 동료가 소설가가 되었을때 마치 내가 등단을 한 것처럼 설레었다. 그 다음 감정은 내가 그 사람에 대해 별로 아는게 없었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 그들이 내게 보여준 모습과 그들이 쓴 글은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선배언니는 자신도 자기 안에 그런 모습이 있는 줄 몰랐다고 말한다. 그러니 나는 얼마나 놀랐겠는가. 늘 다정하고 따스한 모습으로 내게 남아있던 언니의 소설은 그로테스크하기 그지 없었다. 늘 사람 좋은 웃음으로 대하던 합평 문우는 요즘 세대의 사랑을 잘 표현하여 주목을 받았다. 그 소설을 보고 나서 내가 그에 대해서 아는 거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소설가를 꿈꾸었지만 나 이외의 다른 자아를 탄생시키기엔 지나치게 나 자신에게만 내 관심이 향해 있었던 것 같다.

수필동호회를 통해 처음으로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탔다는 것을 전해 들었다. 다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고 축하주를 마시는 이도 있었다. 나 역시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그녀의 소설들을 떠올리며 설렜다. 두세권 정도 밖에 읽지 않은 이유는 너무 우울해서. ㅋ 더 이상 읽기가 두려웠다. 그걸 써내기까지 그녀는 어떤 세계를 다녀왔을까. 읽는 이도 힘든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을 다 내어주기로 결심한 것이 아닐까. 문학에 대해 관심은 있지만 아는 것은 별로 없다는게 부끄럽다. 뒤늦게 내가 소설이 아닌 수필에 맞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는 중이다. 물론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소설도 쓸 생각이다. 동화든 그림책이든 뭐든.

고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쓴다는 것은 내게 숨통을 틔여주는 하나의 방법이었고 그러다보니 잘 쓴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었다. 요즘은 정체기로 과연 내가 무엇을 더 쓸 수 있을지 고민하는 기간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글과 나는 같은 부류인지 스스로 묻는 중이다. 꽤 오랜동안 나의 글은 나의 우울일지 같은 역할을 해왔다. 그러다 사랑에 빠져 러브레터 장인이 되었다. ㅋ 나는 사랑을 통해 내 오랜 우울을 이겨내고 있고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는 경험을 하고 있다. 그리고 진짜 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고 있다. 비록 소설은 못써도 이 시간이 아깝지는 않다. 그것이 내게 미친 영향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따라가면 없었던 길이 보이고 다른 차원의 세상이 열린다. 문학을 알게 해준 현대문학 선생님께 감사드리고(갑자기?) 죽을 때까지 할 일이 있음에 감사드린다. 한강 책을 다시 읽을 용기를 주시길...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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