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늦은 때란 없다

by leaves

내가 산 책 중에 유일하게 큰 글자책은 모지스의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라는 책이다. 평화로운 시골마을 그림으로 유명한 그녀의 그림과 글이 교차되어 편집되어 있다. 보통 크기의 책도 있었지만 큰 글자책이 표지도 좋고 그림도 더 많고 큼지막해서 돈을 더 주고 동네서점에서 구입했다. 물론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라는 말이 좋아서 산 것도 있다. 나이 들어감에 따라 내 자신이 쓸모없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초조한 마음에 딱인 제목이다. 내가 더 나이가 들어 눈이 잘 안 보일 때도 읽기 좋은 책이 될 것 같다. 그때도 이책은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다고 나에게 말해줄 것이다. 내 방에도 모지스의 그림이 한 점 걸려 있다. 흰 눈이 내린 마을 풍경이 아름답고 포근해서 보는 이의 마음을 행복하게 한다. 실제로 그녀는 행복해지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녀는 백 살이 넘게 살았다. 76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80세에 개인전을 열고 100세에 세계적인 화가가 된 분이다. 그녀는 미술을 배운 적이 없다. 그녀야말로 인생에 늦은 때란 없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기에 그렇게 유명해 진게 아닐까. 그녀에게 그림은 죽기 전까지 할 수 있는 멋진 취미였을 것이다. 그림만큼이나 그녀의 말도 멋지다.

"나는 행복했고 만족했으며 이보다 더 좋은 삶을 알지 못합니다. 삶이 내게 준 것들로 나는 최고의 삶을 만들었어요. 결국 삶이란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이니까요. 언제나 그래왔고 또 언제까지나 그럴 겁니다."

죽음을 앞두고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하는 걸까. 자연에서의 삶을 찬미하며 순응하고 개척하는 삶. 나는 그런 삶을 동경한다. 비록 화분 하나 잘 키우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내 주위에 꽃과 나무들만 있는 공간에서 살고 싶다. 그녀의 그림을 보면 마을 사람들과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다. 퀼트모임이라든가 가족소풍, 마을축제, 비누만들기, 양떼씻기기, 썰매타기, 시럽만들기 등 계절에 따라 벌어지는 다양한 행사를 비롯, 폭풍우와 전쟁까지 그녀 주변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것을 그림에 담았다. 1년을 주기로 하는 기간동안 끊임없이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는 자리가 있고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을 만끽하고 있다. 그 어떤 부족함이 없어보여 보는 내내 그림 속의 한 사람이 되고 싶은 충동을 일게 한다.

어릴 적부터 나는 도시에 사는 게 싫었다.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던 여고시절. 글 쓰는 사람 중에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나 나름의 컴플렉스를 가지게 되었다. 나는 처음 들어 보는 식물이나 곤충들에 관련된 에피소드와 시골생활의 정겨움을 경험하며 살아온 작가들의 사연을 내가 어찌 흉내낼 수 있을까. 한 가지 내세울 것이 있다면 3살된 아이와 함께 했던 숲공동육아가 그런 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해 주었다. 일주일에 두 번 아이와 엄마들이 모여 숲에서 놀고 도시락을 먹고 오는 것이다. 5년여간 숲을 다니며 숲에서 생활하는 것에 대한 기분을 어느 정도 느꼈기에 그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아는 것 같다. 숲에서는 스트레스를 받는 일도 없고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저 나름대로 식물이나 동물들이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겠지만 그럼에도 여유가 있어 보이고 겉으로 보기엔 평화롭기만 하다. 불쑥 찾아간 우리를 두 팔 벌려 환영해 줄만큼 여유가 있다. 제 주변의 존재들을 위해 자신의 것을 모두 내어주고 치유해 주며 행복하게 할 줄 하는 신성한 재능을 지녔다. 나이가 들면 자연이 얼마나 아낌없이 우리에게 베풀고 그 자체로 아름다운지 깨닫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더욱더 자연을 예찬하게 되는 것 같다.

내 나이 오십. 이제는 져야할 때를 아는 나이어서 내 나이 또래의 사회생활을 하는 친구들도 점차 자신의 자리를 내려놓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는 시기이다. 오래전에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주부로 지내다보니 앞으로 살 날도 많은데 남들이 보기에도 버젓한 무언가를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과연 지금 시작해서 완성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젊은 시절에 비하면 욕심을 많이 내려놓았기에 전처럼 초조하거나 하는 것은 없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많이 내려놓은 것 같다.

끝내 내가 이루어야할 일은 바로 진짜 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모임을 하고 글쓰기를 하면서 수많은 질문 속에 뭔가 깨닫는 것이 나는 좋다.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고 죽기 전에 깨달아야 할 것도 많다. 다행스러운 것은 내가 깨닫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그게 철학이든 종교든 심리학이든 내가 가졌던 의문을 찾아가는 것이 즐겁다. 물론 금세 지루해 지기도 한다. 그럴 땐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이 뭔지 찾아본다. 바느질을 하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한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아진다. 책읽기나 전시회 가기 등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맛난 브런치와 커피를 한잔 하는 것이 낙이 되고 있다. 크고 작은 전시회를 찾아가서 그림을 보고 감동을 느껴 좋은 수필이 나오기도 한다. 그렇게 모든 게 맞물려 있다.

이것 역시 우주의 원리가 아닐까. 그렇게 우주의 리듬을 타다보면 정말 내가 하고 싶고 잘 하는 것을 알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앞으로 나에게 보여질 세상이 어떨지 궁금하다. 나에게만 감추어두었던 그 내밀한 면을 모두 보여줄런지. 나도 죽기 전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최고의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녀의 그림을 보며 내 주변도 이렇게 평화롭기를 바라본다. 죽는 날에 나 자신이 내 주변 사람들에게 행복과 평화를 주는 사람이었다고 기억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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