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이 반가운 이유는 이번 해에 다시 필 것을 알고 오랜동안 기다렸기 때문이다. 마른 가지에 분홍색, 노란색, 보라색 꽃이 피어날 때 나는 마치 기적을 보는 것만 같다. 단단한 흙에 내리쬐는 햇빛 그리고 봄비 한자락. 멀리 가지 않고 안양천만해도 봄을 만끽할 수 있다. 어느새 집 앞 라일락도 활짝 피어 그 짙은 향을 내뿜는다. 날씨가 봄 같기도 하고 겨울 같기도 해 피어난 꽃들이 떨어질까.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작년에는 고궁으로 꽃놀이를 갔었는데 주말마다 날씨가 좋지 않아 아파트 안 벚꽃과 목련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꽃은 누구더러 보라고 그렇게 예쁘게 피어 있는 것일까. 그리고 또 그렇게 짧은 시간만 피었다가 사라지는 걸까. 어떻게 보면 인간의 젊음이 더 길다고 할 수 있으니 서로의 장단점이 있으리라. 젊은 시절엔 꾸미지 않아도 그 자체로 아름답다. 지금 생각하면 좀 꾸미고 다녀도 되었을텐데. 무슨 교복 입듯이 그렇게 단촐하게 하고 다녔다. 엄마가 사준 옷이 고와도 나는 내가 고른 옷만 고집했다. 특히 영화현장에 갈 일이 있으면 건빵바지에 검정 티셔츠를 입고 현장 스탭처럼 하고 나타나곤 했다. 왠지 그게 멋있어 보이고 그들과 어울리고 싶었던 것 같다. 동생조차 옷을 못입는다고 타박을 해도 나는 내 스타일이 있었다. 조심스러운 촬영장이었지만 사람들하고 이야기하는 게 재밌었다. 어쩌다 엑스트라를 해달라는 요구에 영화 장면 속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나의 뻣뻣함에 다들 웃음꽃이 만발했다. 힘든 시기였지만 모든 것이 다 안좋았던 건 아니다. 촬영장에서 밤을 새도 신이 나 힘든 줄도 몰랐다. 돌아보면 좀 더 여유있게 즐거워해도 좋았을텐데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늘 긴장하던 나였다. 후에 제작팀으로 오라는 말도 있었지만 그건 내 길이 아닌듯 했다. 이제는 꽃이 피면 한해가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꽃은 해가 갈 수록 무성해지겠지만 나는 점점 잎사귀가 떨어진 나무같다. 이젠 그런 쓸쓸함에 익숙해 져야 하는 걸까. 이럴 때 내가 사랑에 빠져 있다는 사실이 나를 봄꽃처럼 들여다보게 만든다. 새로운 생명을 부여 받은 것 같은 기분이다. 저 화사한 봄꽃도 분명 사랑의 결실이리라. 그래서 나는 조금 꽃나무를 닮았다. 다행히도. 이 시간이야말로 이 감정을 만끽하고 싶다. 사랑은 고목에 꽃을 피울 수 있는 마법임을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