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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Dec 24. 2021

크리스마스 선물로 그것만은 제발...

캐나다는 어딜 가나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완연합니다. 제 앞집에도 옆집에도 현관문에 크리스마스 리스를 달아놓았습니다. YMCA 직원들은 모두 산타 모자를 쓰고 회원들을 반깁니다. 자동차 보험을 위해 들른 작고 예쁜 사무실 안에도, 은행 계좌를 개설하기 위해 들른 banker의 사무실에도 크리스마스 물씬 나는 장식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마트는 또 어떻고요. 제가 가는 마트들마다 크리스마스 장식 용품들을 한가득 판매하고 있었답니다. 크리스마스트리는 진짜 나무이고요!


캐나다에서 맞는 첫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아이들 크리스마스 선물로 무얼 할까 고민 중입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원하는 물건을 구입하는 것이 쉬운 일이었지만 지금 살고 있는 동네는 아직 지리도 어둡고, 어떤 가게에서 무얼 파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쿠팡처럼 당일 배송을 해주는 업체도 캐나다에서는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영영 찾지 못할 듯...


한국에 살 땐 아이들의 취향을 잘 알기에 물어보지 않고도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준비하곤 했는데 캐나다에서는 수급 곤란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아이들에게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무슨 선물을 받고 싶은지 넌지시 물어봅니다. 과연 공급 가능한 수요여야 할 텐데 말이지요.


12살인 큰 아이는 이미 산타클로스는 집집마다 있다는 사실을 간파했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친구들이 산타는 엄마나 아빠라고 하는데 그 말이 사실이냐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제게 물었는데, 올해는 심증을 아주 굳힌 모양입니다. 게다가 11월 자신의 생일에 몇 달간 노래를 부르던 아이팟을 선물 받아 세상 행복한 큰 아이는 별 물욕이 없는 상태라 자신의 니즈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습니다. 어차피 산타할아버지는 부모님이니, 얼마 전 비싼 아이팟을 선물해 준 아빠, 엄마에게 무언가 또 선물을 밝히기에는 큰 아이가 생각이란 것이 좀 있습디다. ㅎㅎㅎ


아직까지는 산타의 존재를 굳게 믿는 8살 둘째에게 선물을 물으니 매번 총, 다이아몬드, 금, 메갈로돈 이빨 같은 답변만 하던 녀석이 전혀 상상도 못 한 선물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것은 바로,


"도마뱀이요!"


도..도마..도마뱀이라고라!! 살아 있는 생물은... 산타 할아버지가 못 해 주신단다...라는 말이 목구멍에 솟구쳐 오르려는 순간, 둘째가 쐐기를 박습니다.


"원래는 뱀을 사고 싶었는데 엄마가 기절할 것 같아서 도마뱀으로 바꿨어. 도마뱀은 뱀보다는 더 귀엽잖아요"


오 마이 갓! 그렇습니다. 저는 파충류가 싫어요. 그 아이들은 별안간 내가 자신들을 싫다고 하는 고백에 황당하겠지만, 조금 미안하지만 할 수 없단다, 난 너희들이 징그럽단다, 그게 원래 태어날 때부터 내 유전자에 깊이 박혀 있던 거야. 선택 사항이 아니야. 난 그냥 너희들이 징그럽고 무섭다구 ㅠ.ㅠ


그런데 설상가상 둘째 아이의 폭탄 발언에 용기를 얻은 듯 큰 아이가 소리칩니다.


"뭐야. 애완동물 키울 수 있는 거야? 그럼 나도 애완동물 사주세요."


옆에서 듣고 있던 우리 남편은 무얼 하고 있었냐고요? 조용히 집 근처 파충류 동물 샾을 검색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기쁘다는 듯 소리칩니다.


"도마뱀이랑 여러 동물 파는 가게가 근처에 있는데?"


아빠의 말에 아이들은 신이 나 야호를 연발합니다. 아들은 도마뱀은 귀엽지 않으냐고, 키우고 싶다고 강아지처럼 제게 낑낑거립니다. 자신의 방에서 키울 거니 엄마는 보고 싶지 않을 때 안 볼 수 있지 않느냐고 나름대로 설득을 합니다. 아빠는 이미 번개 같은 검색으로 도마뱀 초보자들이 어떤 종을 많이 키우는지 알아보고 있습니다. 가만 보니 도마뱀은 아빠도 키우고 싶은 눈치입니다.


큰아이가 키우고 싶은 동물은 햄스터랍니다. 햄스터는 저도 귀여워하는 동물이라 그나마 다행입니다. 도마뱀 부자는 엄마의 눈치만 보고 있으니, 어쩝니까. 크리스마스잖아요. 허락해 줄 수밖에요.


그렇게 해서 근처라고 하던 애완동물 샾은 런던에서 한 시간 떨어진 키치너라는 동네에 위치하고 있었고, 우리 가족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기 위해 처음으로 런던 인근 소도시로 작은 여행을 떠나봅니다.

금방 눈이 쏟아질 것 같은 캐나다 시골 마을을 달려갑니다 go-go
키치너는 우리나라 읍 소재지 느낌을 주는 작은 도시에요.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펫 파라다이스', 그런데 막상 와보니 도마뱀보다 뱀이 더 많더라고요. 구경하는데 징그러워 혼났습니다. 파충류를 위한 천연 재료들이 많았지만 가격이 만만찮았어요. 제일 저렴한 도마뱀이 99달러, 키울 수조와 부대 재료들을 모두 세팅하면 적게는 300달러 이상이 들겠더군요. 게다가 큰아이가 보러 온 햄스터는 sold out.

먼 길 달려온 게 아쉽긴 했지만 도저히 400달러 거금을 들일 수는 없어 런던에 오래 사신 분께 SOS를 쳤지요. 그랬더니 런던 시내에 있는 Petmart를 가보라는 거예요. ㅜㅜ

팻파라다이스에서 만난 왕도마뱀과 보아뱀. 너무 무서웠어요.

알고 보니 집 근처에 커다란 애완동물 마트가 있었더군요. 검색을 잘 못 하는 바람에 코 앞의 큰 마트를 두고 옆동네 작은 읍 소재지에 다녀온 것이지요. 하지만 그 덕에 키치너라는 동네를 알게 됐습니다. 길을 잃을 때 비로소  진짜 여행이 시작된다는 말도 있잖아요. ㅎㅎㅎ

다행히 Petmart에는 도마뱀 종류도 다양하고 수족관과 부대용품이 훨씬 저렴하더군요. 물론 햄스터도 있었답니다.

레오파드 게코라는 이름의 도마뱀은 흰색에 약간 하늘색을 띠고 있어 생각만큼 징그럽지 않더라고요. 물론 일반 뱀의 색을 띠는 도마뱀은 여전히 무섭지만요. 아들도 게코가 맘에 든다니 천만다행입니다.


마트 직원이 도마뱀은 이 모두 세팅된 후에 데려가야 죽지 않는다고 해서 일단 만 들고 집에 왔습니다. 햄스터는 바로 데려왔고요. 아빠는 집에 오자마자 햄스터 집과 도마뱀 집을 열심히 세팅했답니다. 아이들은 햄스터에 빠져 연신 귀여워를 외쳤지요. 그리고 각자의 pet의 이름을 무얼로 정할지 고민 중입니다.


털 달린 짐승은 다 귀여워요. ^^
도마뱀이 살 집이에요. 꽤 멋진듯 ㅋㅋ

밖에는 어느새 눈이 쌓였습니다. 세팅 후 도마뱀을 픽업하러 가려했는데 내일로 미뤄야겠습니다. 그나저나 아직 산타할아버지를 믿는 8살 아들을 위해 선물을 하나 더 준비해야 할 텐데 선물 비용은 이미 한도 초과입니다. 산타할아버지께 우리 집이 한국에서 이곳으로 이사 왔다는 걸 알려드렸어야는데 그만 깜빡하고 말았네요. 지금 정신이 하나도 없으실 테니... 크리스마스가 지난 후 알려드려야겠어요. 우리 아들에게는 비밀입니다. 쉿


사랑하는 작가님들과 구독자님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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