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 온 지 3일이 되었습니다. 한국이 캐나다 런던 보다 14시간 빠르니까 한국 시간으로는 4일차일겁니다(여긴 지금 월요일 밤). 지금은토론토 공항에서 코로나19 검사를 하고 집으로 와서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자가격리 중에있지요. 캐나다로 출발하기 전에 미리 인터넷을 설치한 덕분에 그나마 갑갑한 생활을 견딜만하네요.
사람 심리가 참 희한합니다. 언제든 자유로이 외출할 수 있었을 때는 일주일 내내 집에만 있어도 답답한 줄 모르고 편하기만 했는데 막상 격리가 되고 니니 갑갑함을 느낍니다. 물론 집안에 살림살이가 없고 장을 마음대로 볼 수 없는 불편함 때문에 더 그리 느껴지겠지요.
아직은 요렇게 거실이 휑합니다.
격리하는 동안 랜딩서비스(정착지원)를 하시는 분께서 대신 장을 봐주셨어요. 우리가 집에 도착하기 전 햇반, 물, 김치, 참치캔, 김, 우유, 라면을 사다 놓으셔서 오후 5시에 도착한 첫날은 김과 밥, 김치로 맛있게 먹었습니다. 첫째 날 우리가 쉬고 있는 동안에도 주스, 소금, 과일, 샐러드, 빵 등을 사다 주셨어요. 고기가 너무 먹고 싶어서 셋째 날 부탁을 드렸더니 고기를 사다 주셨습니다. 우리 가족 말고도 서비스하는 고객이 많으실 텐데 발품 팔아주셔서 감사했지요. 아이를 셋 키우는 가정주부이시다 보니 기본적인 정착 서비스 말고도 생활에 필요한 여러 정보나 아이들 놀이터 등 팁을 섬세하게 알려주시네요. 캐나다 쓰레기 정책도 우리나라와 조금 달라 헷갈리는데 이런 걸 여쭤보기에도 마음이 편했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집주인분도 한국분이세요. 집을 한창 고를 때 이 집이 마음에 든다고 담당 Realtor(부동산 중개인) 분을 통해 계약을 추진했더니 담당자가 집주인 시더라고요 ㅎㅎㅎ 한국분에 부동산 전문가시니 마음 놓고 집을 계약할 수 있었답니다. 그리고 집에 들어오니 이렇게 커다란 초콜릿을 선물해 주신 거예요.
집주인께서 준비해두신 웰컴초콜릿 완전 맛있었답니다
집에서 격리하는 동안 푹 쉬고 있습니다. 아마 격리가 되지 않았더라면 마트, 은행, 교육청, 중고자동차 판매 가게 등 여기저기 돌아다녔을 거예요. 낮과 밤이 완전히 바뀐 데다가 시차 적응도 하기 전에 그랬더라면 아마 저와 남편은 쓰러지지 않았을까 싶어요. 오히려 격리생활로 가족들 모두 푹 쉬고 있어요. 그래서 저도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여유도 생긴 것 같아요.
우리 가족은 완전 한식 파라서 거의 두 끼를 한식으로 먹고 있답니다. 한식이 없었더라면 격리생활을 어떻게 견뎌낼꼬 싶어요. 비록 시큼 달달한, 낯선 김치 맛이지만 김치는 역시 김치!
둘째날 김치에 참치를 넣어 김치참치찌개 해 먹었어요. 너무 맛있었어요 ㅠ.ㅠ
캐나다에서 만난 서울식 김치. 너무 달고 시큼해서 서울식은 아닌걸로 ㅎ
격리기간동안 목숨을 유지해줄 소중한 식량
냉동칸에 저장중인 닭고기와 식빵
여기는 우유나 주스가 기본적으로 2리터씩입니다. 주스는 100프로 진짜 오렌지 과즙이라 무지 맛있습니다. 가격도 약 5천 원이니까 저렴하지요. 우유 맛도 한국과 약간 다른데 우리 아이들은 한국 우유보다 맛이 없다네요. 저는 맛있는데... 특히 커피에 넣으면 풍미가 좋을 그런 우유맛이랍니다. 커피머신은 지금 배를 타고 열심히 이곳으로 오는 중이랍니다. 믹스커피를 한국에서 챙겨 오지 않았는데... 그래도 아직까지 커피는 참을만합니다.
(좌)유일한 조리도구인 냄비, 프라이팬, 실리콘 냄비 (우)그릇도 배를 타고 오는 중이라 당분간 일회용 그릇과 컵을 씻어서 사용중
지금은 조리기구가 프라이팬이랑 냄비뿐인데 이걸로도 충분히 조리 가능합니다. 그릇은 일부가 배를 타고 캐나다로 오는 중이고 그 동안 쓸 그릇들은 제가 직접 사야 해서 당분간 1회용 접시랑 햇반 그릇에 의지하는 중입니다. 양념은 카놀라유, 올리브유, 소금 그리고 기내에서 챙긴 고추장이 전부랍니다. 음식을 소금만으로 간을 하니 화려한 맛은 없지만 뭐랄까 재료 고유의 맛이 더 잘 나는 느낌이더군요. 평소 좀 화려하게 양념을 하는 편인데 소금으로만 간을 해도 담백하고 심플하니 맛이 좋더라고요. 저는 지독한 후추 애호가인데 후추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울 뿐입니다.
이틀간 육식을 못해 랜딩서비스 사장님께 부탁드려 닭고기를 공수해왔습니다. 닭이 크더라고요.
큼직한 닭다리 6개에 4.1불, 약 4천원. 악 내 손 지못미 ㅎㅎ
닭날개는 올리브유와 소금에 잰 후 프라이팬에 굽다가 토마토를 넣어 스튜처럼 끓여먹었습니다. 큼직한 닭다리를 보니 삼계탕을 해야겠다 싶어 식구들 모두 잠이 든 야밤에 삼계탕을 끓여봅니다. 원래는 짐에 식재료를 많이 부렸다가 부피랑 무게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지만 유일하게 가져온 식재료가 요 아래 녀석들입니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가져온 다시마, 표고, 황기, 인삼
대추와 마늘, 대파, 통후추, 은행이 그리웠지만 인삼과 황기라도 있으니 감지덕지입니다
짜잔 비주얼 괜찮나요? 전 이 정도 비주얼로도 충분히 행복합니다.
국물 한 입 먹어봤더니 기가 막히네요. 아... 삼계탕은 언제나 저의 소울푸드입니다. 가족들 중 감기를 앓거나 힘이 없을 때면 저는 늘 삼계탕을 끓입니다. 캐나다에 도착하면 여독으로 분명 식구들 모두 기력이 떨어질 듯해서 황기와 인삼은 꼭 챙겨 왔지요.
이곳은 바람이 심하게 불어 낮에 많이 춥더라고요. 집에만 있으니 추위에 떠는 것은 아니지만 낯선 곳에 와서 자가격리를 하다 보니 마음의 위안이 되는 것이 바로 브런치와 한식입니다.
인삼과 황기 맛이 나는 국물을 마셨더니 어쩜 이리 마음에 온기가 도는지 모르겠네요. 내일 아침 일어난 가족들에게 뜨끈한 삼계탕 국물로 하루를 시작하게 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캐나다 살이의 첫 이야기는 이렇게 삼계탕일 수밖에 없는 걸 보면 저도 천상 한국인인가 보네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