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의 세계에 깊숙이 빠지게 되고 난 후 우리 집에 있는 클래식 모음집이 도이치 그라모폰이라는 음반사에서 나온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독일 축음기'라는 뜻을 가진 도이치 그라모폰은 1898년 독일에서 만들어진 유서깊은 클래식 전문 음반사로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후 곧장 계약한 회사도 바로 이 그라모폰이지요. 그라모폰이 유럽 대륙을 대표하는 클래식 전문 음반사라면 EMI는 영국의 전통 있는 음반사인데요. 이 둘은 한때 삼성과 LG처럼 '영원한 경쟁자' 인양 경쟁하곤 했습니다.
그 외에 필립스, 데카(Decca), RCA, 낙소스 등이 클래식 음악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메이저 음반사이고, 마이너 음반사로는 오르페오(ORFEO), 하이페리온(Hyperion)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면서 음반사들도 불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여러 합병 끝에 그라모폰과 필립스, 데카는 유니버설 뮤직으로, EMI의 클래식 계열은 워너 뮤직으로 넘어갔습니다. 지금의 워너 클래식이 과거의 EMI라고 보면 됩니다. 다행스럽게도 그라모폰과 데카는 지금도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클래식 음반을 사 본지 꽤 오래돼서 저도 이제 음반 살 때 헷갈릴 듯합니다만, 클래식 음반에 노란색의 그라모폰 로고가 박혀 있으면 잘 모르는 연주자라도 안심을 하고 고르게 됩니다.
196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메이저 음반사들이 경쟁적으로 명 연주가와 지휘자를 유치하면서 명반을 참 많이 만들었는데 이 또한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곧 대단한 음반이 나올것 같은데요.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과연 어느 음반사와 계약할 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어느 음반사에서 그의 음반이 나올지 조심스레 예측해 보건대, 그래도 가장 전통 있는 그라모폰과 손을 잡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라모폰 음반사 로고, 클래식 음반에 이 로고가 박혀 있으면 안심을 하고 사게 됩니다.
음반사들이 보이시는지? 위에서부터 EMI, 그라모폰(DG), 데카, 필립스, 소니 클래식, 낙소스 (사진 출처: 나무 위키)
고등학생 때 방송반이었던 저는 매주 목요일 점심시간마다 클래식 음악을 소개하고 틀어주는 코너를 1년간 진행했습니다. 당시에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 점심시간마다 방송실에서 음악을 틀어주었는데 대부분 가요와 팝송 위주로 선정했지만 목요일만은 전통적으로 클래식을 틀었습니다. 2학년이 되어 선배들에게 방송 바통을 이어받은 저는 당연하게 클래식을 담당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방송반에 들어온 이유가 바로 클래식 방송을 하고 싶은 야망(?) 때문이었으니까요.
중학교 2학년, 클래식의 아름다움에 눈을 뜬 이후로 저는 집에 있는 음반뿐 아니라 라디오도 언제나 클래식 FM만 들었습니다. 물론 이문세 아저씨의 '별이 빛나는 밤에' 시간에는 '별밤'을 들을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주로 들었던 라디오는 클래식 방송이었지요. 여성 아나운서가 우아하고도 지적인 음성으로 클래식 곡들을 소개할 때마다 나도 저렇게 라디오 아나운서가 되어 클래식 방송을 하고 싶다고 막연하게 꿈을 꿨지요. 고등학교에 들어갔더니 신입 방송부원을 뽑는다는 공고 방송을 듣게 되었습니다. 운명 같았지요.
제 방송반 동기들은 아무도 클래식을 담당하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큰 장애 없이 클래식 방송을 맡을 수 있었습니다. 방송실에 있는 조악한 클래식 음반으로는 선곡에 한계가 있어서 집에 있던 CD를 가져가 틀었지요. 제 선곡은 상당히 제 취향 편향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방송의 프로듀서이자 엔지니어, 작가, 그리고 진행자이기도 했던 저는 제가 좋아하는 곡들 위주로 매주 선곡해 틀었고 이 재미는 상상을 초월했답니다.
목요일 방송을 맡으면서 기존의 시그널 음악부터 바꿨습니다. 시그널 음악은 바로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 1번' 오케스트라 편곡 버전이었지요. 이 곡은 제게 이정표와 같은 곡이기 때문이기도 했고 신비로운 하프 소리가 나오고 뒤이어 아련한 플루트가 나오는 짐노페디 1번은 시그널 뮤직으로도 제격이었습니다. 그리고 진짜 라디오 DJ처럼 시그널 뮤직의 볼륨을 서서히 줄이면서 첫 멘트를 합니다. '클래식 속으로'
방송 짬짬이 점심을 먹어야 해서 10분에서 20분가량의 다소 긴 협주곡이나 교향곡을 선곡하기도 했지만 전체 악장을 틀지는 않았습니다. 음악 교과서에 나오는 곡들 역시 방송 목록에 넣지 않았어요. 학교 친구들에게 생소하면서도 아름다운 클래식 곡들을 소개하고 싶었거든요. 제가 만난 클래식의 아름다움을 사춘기 여고생들도만나길 바랐습니다.
그런 제 방송 목록을 기억해 보면 에릭 사티와 드뷔시, 뿔랑, 포레, 라벨 등 프랑스 작곡가들이 가장 단골이었습니다. 차이코프스키와 모차르트, 바흐, 헨델, 쇼팽도 자주 선곡했지요. 라벨의 <볼레로>와 포레의 <파반느>, 헨델의 <수상 모음곡>을 너무나 좋아해서 이 곡들은 정말 많이 틀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시절에는 라흐마니노프나 쇼스타코비치는 잘 몰랐지만 대신 하차투리안과 림스키 코르사코프를 틀었고, 오페라는 좋아하지 않아 거의 틀지 않았지요. 마스네와 엘가, 그리그의 곡들도 많이 틀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그의 페르귄트 모음곡 중 가장 유명한 '아침의 기분'과 '솔베이지의 노래'는 울적할 때마다 방송으로 틀던 곡이었습니다.
그 시절의 저는 작은 기악곡이나 피아노 소품 곡을 선호했습니다. 교향곡이나 협주곡, 소나타 전곡은 거의 틀어 본 적이 없었지요. 스케일이 큰 곡들이 방송으로 나가면 학생들이 밥 먹다가 체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토벤과 브람스, 바그너는 당시에 찬밥 신세였습니다.
그러던 고2 어느 여름날, 분명히 여름으로 기억납니다. 당시의 기억 속에 여름 교복인 하복을 입고 있는 제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려지거든요. 우리 학교의 하복은 디자인이 정말 별로였습니다. 매미 소리가 요란하고, 에어컨이 없는 방송실이 찜통 같던 어느 날, 방송실 선반 한 칸에 통째로 클래식 CD가 약 70장 넘게 들어왔습니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무려 음반사가 데카였지요. 데카 전집이라니! 당시 데카에서 음반으로 나온 유명 연주가들의 연주가 총망라된 전집이 아니었나 싶어요. 아마 가격도 어마어마했을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그런 전집은 살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음반을 정리하면서 하나하나 구경하고 있는데 음악 선생님께서 방송실에 찾아오셨습니다. 알고 보니, 클래식 전집을 학교 예산으로 구입해 방송실에 보내주신 분이 바로 음악 선생님이었던 겁니다. 선생님도 전집을 구경하고 싶어 근질근질하셨던 것 같아요. 전 그날의 흥분감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70장이라니! 1년간 매주 CD 한 장씩 틀어도 다 못 틀 어마어마한 분량이었지요. 문제는 진짜 전집이었다는 데에 있었습니다.
우리 집에 있던, 그러니까 우리 오빠가 산 도이치 그라모폰 전집은 듣기 좋은 음악들만 골라 모은 컴필레이션 음반이었어요. 예를 들어,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 중에서 제일 유명한 2악장만 선곡했거나, 보로딘의 현악 4중주 중 1악장만 들어있는 식이었지요. 그리고 대부분 관현악이나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등의 소품곡들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클래식 입문에 최적인 그런 구성이 아니었나 싶어요.
10대의 제가 그나마 베토벤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도이치 그라모폰 덕분이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베토벤의 곡들을 퍽 선호하지 않았거든요. 제 귀에는 베토벤이 정형화되고 구조화 된, 사람으로 치면 딱딱한 독일 군인 같았달까요. 그러나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비창의 제2악장 안단테 칸타빌레만 들으면 그토록 싫어하던 베토벤이 그 순간만큼은 다정한 사내처럼 느껴졌지요. 지금은 비창의 1악장과 3악장 모두를 좋아하고 모든 악장을 같이 감상하지만 컴필레이션에 익숙해진 당시에는 베토벤뿐 아니라 대부분의 연주를 길게 듣는 것이 곤욕이었습니다.
그렇게 컴필레이션 음반만 들어온 저는 3악장으로 된 소나타와 4악장으로 된 교향곡을 1악장부터 끝까지 감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떤 교향곡 중에서도 인기 많은 어느 악장만 발췌된 앨범만 들어왔기에 40분, 50분이 넘도록 끝나지 않는 소나타와 교향곡, 협주곡을 도저히 방송으로 틀 수도 없었습니다. 제가 들어도 너무나 지루했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음악 선생님이 방송실에 주신 선물은 커다란 숙제였습니다. 내가 들어보지 못한 음악을 방송으로 틀 자신이 없었기에 그날부터 CD를 한 개씩 집으로 가져와 억지로 감상하기 시작했지요.
데카의 그 음반들을 들으면서 연주에 대한 제 취향이 확고하게 정해져 버린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라모폰의 컴필레이션 앨범들 속에 수록된 연주가들은 지금도 전설로 여겨지는 연주가들입니다. 피아니스트를 예로 들면 아르헤리치, 박하우스, 빌헬름 켐프, 클라라 하스킬, 클라우디오 아라우, 미켈란젤리, 리히테르 등이 있었습니다. 지휘자로는 카라얀과 푸르트뱅글러, 칼 뵘, 칼 리히터, 번스타인 등의 연주가 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카라얀도 전설적인 지휘자이나 푸르트뱅글러는 거의 클래식 지휘계의 신과 같은 존재랍니다. 푸르트뱅글러가 EMI와 계약하여 전설적인 음반을 만들 때 그라모폰이 까맣게 속을 태우다가 EMI와 푸르트뱅글러가 삐걱거리는 틈을 타서 그라모폰이 지휘자를 뺏어온 유명한 일화도 있지요. 세상 까다로운 피아니스트 리흐테르도 그의 책에서 푸르트뱅글러만큼은 극찬합니다. 반면에 리히테르는 카라얀을 무척 싫어했습니다. 독선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고요. ㅎㅎㅎ
중학생 내내 들었던 컴필레이션 음반의 연주들이 마치 '로렌츠의 각인'처럼 제게 깊이 각인되어 클래식 음악을 들을 때 하나의 기준이 되어 버렸습니다. 특히 베토벤의 피아노 연주는 박하우스와 켐프의 연주로만 들어왔는데 절제미와 서정성 둘 다 가진 박하우스와 켐프의 베토벤만 듣던 저는 데카에서 나온 아슈케나지의 베토벤 연주에 적응을 못했습니다. 그의 연주만 들으면 멀미가 와서 혼났습니다.
아슈케나지 팬들이 들으면 이 무슨 천인공노할 소리인가 대로할 것이 뻔하지만 솔직히 그랬습니다. 아슈케나지의 해석이 이제까지 들어온 베토벤에 비해 몽글몽글 했달까요. 제가 들어왔던 피아노 음에 비해 덜 단단하달까요. 특히 페달링, 아슈케나지가 페달을 많이 밟아서인지 제 귀에는 왼손 건반 화음이 자꾸만 웅웅 거려 머리가 울리고 속이 메슥거렸지요. 제가 청각이 워낙 예민한 사람이었기에 더 그랬던 것도 같습니다. 사람의 말은 잘 못 알아 들으면서 악기 소리나 자연의 소리, 기계음은 엄청 잘 들립니다. 잘 들리는 소리의 주파수가 사람의 음성보다는 악기나 자연음에 더 치우쳐져 있는가 봅니다.
사실, 아슈케나지는 세계 3대 콩쿠르(쇼팽 콩쿠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차이코프스키 콩쿠르)를 모두 석권한 전설적인 피아니스트입니다. 쇼팽 콩쿠르에서는 2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와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는 1위를 했지요. 게다가 성격도 좋아서 훈훈한 일화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IMF 시기 우리나라로 내한했던 아슈케나지는 한국의 어려운 사정을 알고 개런티의 20%만 받았다는 일화는 팬들 사이에서 유명합니다. 그를 다른 피아니스트보다 먼저 만났더라면 좀 나았을까요. 그러면 아마도 그의 베토벤 연주가 제 취향이자 기준이 되었을지도요.
데카에 있던 다른 연주들도 그간 들어왔던 연주들과 결이 다를 때가 참 많았습니다. 저는 그제야 비로소 같은 작곡가의 곡이라도 연주가에 따라, 지휘자에 따라, 아주 작은 차이만으로도 전체적인 곡 해석과 느낌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취향이 생겨나면 즐겁기도 하면서도 한편 불편하기도 합니다. 모든 연주를 골고루 즐기지 못하게 되니까요. 클래식 공연에 선뜻 못가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이러면 음반 위주로 감상하는 방구석 감상자가 되어 버리는 것이지요.
이후로도 30여 년간 클래식을 들으면서 제 취향은 한결같이 확고해서 연주가에 대한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편입니다. 슈만의 아베끄 변주곡은 클라라 하스킬의 연주로 들어야 하고, 바흐의 영국 모음곡은 헤블러의 연주로만 듣게 됩니다. 쇼팽은 또 어떤지요. 에튀드는 폴리니를 듣고 피아노 협주곡은 조성진의 연주만 듣습니다. 그리그의 서정 모음곡은 에밀 길레스와 리히테르의 연주만을 선호하고 포레의 소품곡은 백건우의 음반이면 충분하지요.
그런데!!!
최근 작곡가의 작품별로 연주자를 달리 선호하던 저의 취향에 반기를 든 연주가가 나타났습니다. 그의 이름은 바로 임.윤.찬.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임윤찬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비롯해 그가 연주한 바흐, 쇼팽, 쿠플랭과 베토벤, 모차르트 등을 들으며 저는 비로소 깨달았어요.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완벽한 연주자를 비로소 찾았다는 것을!
그를 공연장에서 만나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아 음반만을 목이 마르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KBS에서 젊은 연주가들을 데뷔시키는 음반 시리즈의 일환으로 임윤찬의 음반이 나오긴 했습니다만 캐나다에 살다 보니 구입이 어렵습니다. 빨리 그라모폰이든 데카든 전세계 데뷔 앨범이 나왔으면 합니다. 한동안은 그의 공연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레코딩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이지만서두...
참, 고등학생 시절 클래식 방송의 선곡은 데카 전집이 들어온 이후에도 여전히 제가 가지고 있던 그라모폰 음반을 고수하게 됩니다. 결국 익숙한 음반 위주로 선곡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졸업 후 시간이 지날수록 그때 다 들어보지 못한 데카 전집이 너무나 궁금하고 다 들어보지 못해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도 모교의 방송실 벽 선반 한편에 그때의 전집이 남아 있는지 문득 궁금합니다. 실은 제 후배들에게 방송을 넘긴 후 클래식 방송은 명맥이 끊어져버렸습니다. 고3이 되어 점심시간에 클래식 음악이 더이상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화가 났지만 어쩔 도리는 없었습니다. 후배들에게 취향을 강요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그나저나 저보다 24기수는 어릴 까마득한 방송반 후배들에게 연락하면... 반가워할까요? 한국에 돌아가면 꼭 연락해서 후배들에게 밥도 사주고, 데카 음반도 잘 있는지 물어봐야겠습니다. '라떼는 말이야'~도 시전하면서 말이죠.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