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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음악, 첫눈에 반하다

에릭 사티와 <짐노페디>

by 김정은

클래식에 대한 첫인상은 대다수의 제 또래(40대) 대한민국 국민이 그러하듯 중고등학교 음악 시간에 정해지기 마련인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예외는 아니었지요. 아, 곰곰히 생각해보니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약 3년간 피아노를 배웠는데 그때 약간의 선입견이 자리 잡긴 했습니다. 당시의 보편적인 피아노 교습 과정은 바이엘 상권과 하권을 떼고 나면 하농*, 소나티네 그리고 체르니를 배우고 체르니*가 끝날 때쯤 바흐를 배우는 식이었지요. 하농의 기계적이고 되풀이되는 음색은 그렇다 치고, 체르니는 정말 지루함의 극치를 달린답니다.


* 주: 체르니, 하농은 작곡가 이름입니다. 피아노 연습용으로 만든 작품들을 작곡가의 이름을 따서 체르니, 하농이라고 부릅니다.

* 주: 소나티네는 스카를라티, 모차르트 등이 만든 귀엽고 사랑스러운 소나타(3악장을 갖는 음악 형식) 곡인데 소나티네는 작은 소나타라는 뜻입니다. 어린이용으로 따로 발췌하여 모은 악보들이라 소나티네라고도 하고, 실제 작곡가가 소나티네라고 명명하기도 합니다.


소나티네는 체르니에 비하면 그나마 낫지만 지금 들으면, 그러니까 순수함을 상실한 어른이 되고 나서 들으면 그 단순함에서 오는 순수한 음색들이 참으로 아름답다 여겨지는데, 이미 순수함을 가지고 있던 어린이의 귀에는 유치하게 느껴지곤 했지요. 소나티네의 대표적인 곡으로 과거 영창 피아노 광고에 나왔던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가 있는데 그 곡도 방송에서 들을 때 마다 진저리 쳐지게 싫었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의 피아노 학원의 교습은 주로 손가락의 훈련을 위해 고안된 교육방식을 채택하고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라 어린 나이에 클래식 음악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비겁한 변명이지만, 좋은 선생님을 만났더라면 클래식의 아름다움을 좀 더 빨리 만났을 지도요.


물론, 소나티네를 연습하고 시간이 남으면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나 드보르작의 '유모레스크' 등도 배우기는 했지만 클래식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는 제 자신이 어리기도 했거니와 훈련용 음악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중학생이 되어 음악 시간에 배우는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이나 베토벤의 '합창', 드보르작의 '신세계로부터' 같은 곡들 역시 지루하고 고루한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더구나 이 곡들은 사춘기 소녀가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굵직굵직하고 구조적인 음악이지요. 물론 바흐, 헨델, 슈베르트나 쇼팽 등도 음악 시간에 배우지만 이론으로서만 그들을 만날 뿐 음악 시간에 선생님이 틀어주시는 음악은 앞에 나열한 세 곡이 전부였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음악실에 걸려 있던 흑백의 카라얀 사진은 물론 멋있긴 했지만, 멋있어 보이려고 찍은 구도나 흑백의 연출이 뻔하기도 하고 꼭 잘난 척하는 것 같아 클래식에 대한 선입견만 더욱 키웠습니다. 클래식 음악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저는 함부로 예단하는 실수를 저질렀지요. 고상한 척하는 사람들이 고상한 척하고 싶어서 듣는 음악이 클래식이라고 말입니다.




중학교 2학년이던 14살의 여름, 오빠가 뜬금없이 클래식 전집을 사 왔습니다. 7살 연상인 오빠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 학원을 다니다가 가계에 보탬이 되겠다고 대학을 포기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나중에는 대학원까지 나오게 되었지만요) 오빠의 첫 직업은 영업사원이었는데 파는 물건이 무엇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진 않습니다만 고속도로 휴게소로 출근했고, 운전자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했다는 기억이 나는 걸 보니 아마도 차량 청소용 제품을 팔았던 것도 같습니다. 싹싹하고 씩씩한 오빠는 어린 나이지만 주눅 들지 않고 영업을 잘했던 모양입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그날 저녁밥상에서 오빠가 손님을 어떻게 설득해서 물건을 팔았는지 자신의 경험담을 재미나게 풀곤 했지요. 삼십여 년이 지난 후라 경험담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기억 나진 않지만 오빠가 신나게 이야기를 했던 인상과 그 이야기를 들으며 속으로 '우리 오빠 대단하다'라고 생각했던 저의 판단만이 잔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오빠가 일을 한 지 3개월여 만에 드디어 첫 월급을 받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첫째 달과 둘째 달에는 영업 마진이 남지 않아 오빠에게 돌아오는 돈이 별로 없었던 모양입니다. 아니면 친한 친구들에게 다 써버렸는지도요. 오빠는 친한 친구들이 꽤 많았고 언제나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거든요. 여하튼, 분명 일은 봄부터 시작했는데 오빠가 엄마에게 첫 월급이라며 용돈을 드린 때는 초여름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빠는 검은색 소형 목재 캐비닛에 유리창이 달린, 겉보기에도 무척 고급스러운 케이스에 스무장의 CD들이 가지런하게 진열되어 있던 클래식 음반집을 사 왔습니다. 그 모음집에는 사진 앨범처럼 크고 두꺼운 책도 있었는데 그 책 안에 각 연주에 대한 해설과 악보가 실려 있었지요.


오빠에게 웬 클래식 CD냐고 물으니 오빠가 그러더군요. 생애 첫 직장에서 처음으로 받은 월급인데 자기 자신을 위해 어떤 물건을 살까 고민하다가 이 클래식 음반을 샀다는 겁니다. 자신을 위해 옷이나 구두를 살 수도 있었고, 시계를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오빠는 자신이 번 돈의 첫 소비로 예술을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그때 오빠가 좀 멋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빠도 생각이란 걸 하고 사는구나, 곧 군대를 간다더니 정말 철이 들었구나 뭐 그런 여동생의 심정 같은 것이 있었지요. 우리는 그저 툭하면 싸우는 '흔한 남매'였으니까.


그 고급스럽고 멋들어진 음반집은 당시 집집마다 구비했던 인켈 오디오 옆에 자리를 잡게 되었고 예상처럼 금세 먼지가 쌓여갔습니다. 오빠는 일하느라 바빴고 남는 시간에는 친구들과 어울렸거든요. 제 기억으로 오빠가 따로 시간을 내어 그 클래식 CD를 트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몇 달간 거실의 장식품으로 놓여있는 CD를 보며 당시에 꽤 거금을 들인 물건이라 그냥 두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생인 나라도 음악을 들어줘야겠다는 의무감 같은것이랄까요. 그리고 1번 CD부터 20번까지 주욱 훑어보다가 한 CD를 선택했고 오디오에 같이 있던 CD플레이어에 넣어 틀었습니다. 그리고 그 음반의 첫 곡을 듣는 순간, 생전 처음 듣는 낭만적인 음악에 그야말로 뿅 반하고 말았습니다.


사실, 꽤! 충격이었습니다. 제 기억으로 클래식이란 고리타분하고 딱딱한 음악이었습니다. 화음이나 화성이 단조롭고 섬세하지 않은, 재미없는 음악이었습니다. 브람스나 베토벤이 갖는 깊고 풍요로운 음들의 향연을 알아볼 귀가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클래식 입문자가 브람스나 베토벤을 먼저 접하는 것은 클래식에 대한 진입 장벽을 높이는 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CD에서 흘러나온 노래에 홀려 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음악에만 집중했고 곡이 끝나자마자 곡명이 무엇인지 찾아보았습니다. 짐노페디 1번... 짐노페디? 어느 나라 말일까? 1번이면 2번도 있는 건가? 음반 부록으로 함께 받은 두꺼운 해설서가 없었더라면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없던 30년 전에 클래식 정보를 어디에서 얻을 수 있었을까 생각하니 아찔합니다. 하드커버로 된 커다란 음악 해설서는 친절하게도 곡이나 작곡가에 대한 정보가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어서 도서관에 다니는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 제 유일한 클래식 선생님이 되어 주었지요.


짐노페디 1번은 1888년 프랑스의 작곡가 에릭 사티가 만든 피아노 곡의 이름입니다. 모두 3개로 이루어진 이 곡은 1번과 2번, 3번이 비슷한 듯 다른 느낌을 주는데 나른하면서도 오묘한 분위기가 있지요. 언젠가 이 곡에 대해 하나의 조각상을 각각 다른 구도에서 바라봤을 때의 인상과 같다는 평을 본 적이 있는데 딱 맞는 표현입니다. 이 세 곡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다른 분위기들로 변화를 주는데 단순히 변주라고 보기에는 또 독립적인 느낌도 있어서 하나의 물체를 다른 시각에서 바라본 관찰이자 인상이라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처음 접한 짐노페디는 피아노 연주가 아니라 오케스트라 연주용으로 편곡된 버전이었습니다. 피아노 버전의 짐노페디는 오케스트라 연주보다는 약간 건조하고 좀 더 몽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짐노페디가 원래 피아노 곡이라는 것은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알았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짐노페디가 관현악곡인 줄 알았답니다.


(30여 년 전 제가 듣던 버전의 오케스트라 편곡은 아니지만 드뷔시 편곡 버전이라고 해서 가져와봤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f2navamr4Q


관현악 버전의 짐노페디를 듣고 있노라면 신비롭고도 이국적인 어느 사원을 산책하다가 등나무 꽃 향기를 풍기는 아름다운 여 사제들을 만나는 기분이 듭니다. 하프로 시작되었다가 플루트가 주제음을 연주하고 다른 악기들은 베이스를 만들어 곡의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이제까지 제가 알던 클래식과 분위기도 화성도 전혀 달랐지요.


새로운 음악! 14년의 인생에서 숱하게 들어온 대중가요와 이러저러한 팝송들을 합쳐서도 이렇게 새로운 음악은 난생 처음이었습니다. 클래식에 대한 편견이 완전히 부숴졌어요. 이렇게 나의 선입견과 편견을 박살내고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는 무언가를 만나는 것은 대단한 사건임에 분명합니다.


어딘가 나른하면서도 신비로운 이미지가 가득한 이 곡은 사실 피아노를 많이 배우지 않은 사람도 연주할 정도로 충분히 쉽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전문 피아니스트만이 연주할 수 있는 어렵고 난해한 클래식 곡 사이에서 체르니 100번만 성실하게 배웠다면 충분히 연주 가능한 아름다운 곡을 만드는 작곡가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이 곡의 악보를 구했던 날, 연주할 수 있겠다는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짐노페디(Gymnopedi)는 고대 그리스어로 '벌거벗은 젊은이'라는 다소 엉뚱한 뜻이 담겨있는데 고대 스파르타에서 행했던 아폴론 축제를 말하기도 합니다. 이 축제에서 젊은 남성들은 나체로 노래하고 춤을 추며 아폴론 신을 찬양하는데 이 의식을 Gymnopediac이라고도 하지요.


* 주 gymnos는 고대 그리스어로 '알몸의'를 뜻하며, paedia는 '청춘, 젊은이'를 의미합니다


사티는 이 곡을 귀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의 소설 <살람보 Salammbô>와 낭만주의 시인 파트리스 콩떼미뉘(J. P. Contamine de Latour)의 시 〈고대인 Les Antiques(The Ancients)〉에서 영향을 받아 만들었습니다. 사티 본인이 <고대인>에 나오는 ‘짐노페디아와 사라방드를 뒤섞어 춤추네’라는 구절에서 직접적인 영감을 얻어 곡을 작곡했다고 밝힌 바 있지요.


나른하고 신비로운 분위기의 짐노페디는 나체의 젊은 남성들이 열고 있는 축제가 연상되기보다는 그 축제가 가진 정신에 대한 인상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스파르타는 정신적 육체적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상당히 엄격한 생활을 하던 도시국가였습니다. 그들의 그런 확고한 신념에 대해 사티는 숭고함 같은 것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장조로 시작해 단조로 끝나는 이 곡은 선명한 주제음 아래로 불협화음을 배치하고 있어 숭고한 듯하다가도 우울하고, 또 나른한 쾌락감 마저 느껴집니다. 이런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이 프랑스 클래식 음악의 특징이기도 하지요. 사티의 짐노페디는 현대의 뉴에이지 음악의 탄생을 예고한다고도 평가 받고 있습니다.





" 나는 태어나 얼마 안 된 때부터 내가 작곡한 곡들을 흥얼거리고 노래 불렀지,
그래, 내 모든 불행은 거기서 시작된 거야"

에릭 사티(1866-1925)


에릭 알프레도 레슬리 사티는 1866년 5월 17일, 프랑스 노르망디 칼바도스 주 옹플뢰르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 고향에서 오르가니스트에게 음악 수업을 들었던 그는 파리로 건너가 1879년에 파리 음악원에 입학하였으나 교사들은 그에게 재능이 없다고 평가 했다고 합니다. 1887년 몽마르트르에서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살던 사티의 척 작품은 그의 아버지가 출판해 주었다고 하지요. 다행히 그는 드뷔시와 어울리게 되는데 이 몽마르트르 시기에 지금에서야 사랑받는 짐노페디와 사라방드, 그노시엔느 등의 작품을 쓰게 됩니다.


사티는 어찌 보면 참으로 여러 가지로 불행했던 예술가였습니다. 어릴 적 어머니를 잃었고 재혼한 아버지와 살았습니다. 커서 그는 화가이자 르누아르 등의 그림 모델이었던 수잔 발라동과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녀와 결혼하길 원했지만 심하게 싸우던 날 수잔이 창 밖으로 뛰어내리는 바람에(다행히 죽지는 않았습니다) 몇 개월뿐이었던 짧은 연애도 끝이 나고 맙니다. 사티의 알려진 연애는 이것이 전부인데 실제 그가 간경변으로 죽었을 때 수잔에게 미처 부치지 못한 편지가 여러 통 있었다고 합니다. 또, 사티가 생존하던 당시에는 그다지 영향력 있는 음악가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의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작품들은 평론가들에게 평가절하되었고 평생 가난에 시달렸습니다. 심지어 별명조차 '미스터 가난뱅이'였다고 합니다.


자화상, 수잔 발라동(1883)


사티의 다른 피아노 곡들, 예를 들어 <그노시엔느>나 <바싹 마른 태아> 등의 곡들을 들어 보면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성스럽고, 우아한 듯하다가도 우스꽝스러운 광대처럼 돌변합니다. 사티의 곡들이 현대 음악에 비하면야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훨씬 쉬운 작품들이지만 사티의 작품에 내재된 미래주의와 유머(블랙 유머긴 하지만)를 당대에 인정받지 못한 것이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예술가로서, 자신의 자아를 반영한 예술 작품이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할 때의 고립감은 거의 우주 공간에 홀로 남은 미아처럼 막막하고 서글프지 않았을까요.


아, 그러고보니 사티의 가장 유명한 작품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사티는 가곡을 여럿 만들었는데 그 가운데 Je Te Veux(쥬 떼 부, 난 널 원해)는 한번 들으면 누구나 그 매력에 빠지지 않을 수 없는 사랑스러운 곡이랍니다. 이 곡은 수잔 발라동과 사랑에 빠졌을 때 만든 곡으로 사티의 다른 곡에서 느낄 수 없는 밝음과 기쁨을 느낄 수 있지요. 수잔 발라동은, 예상했겠지만 여러 화가들과 자유로이 연애를 하던 팜므파탈이었습니다. 팜므파탈은 여러 예술가들에게 늘 영감을 주는 가 봅니다.


저는 사티의 피아노 작품들을 한마디로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숭고한 서정'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티의 여러 피아노 연주곡들 가운데 프랑스 피아니스트인 파스칼 로제의 해석을 가장 좋아하지요. 프랑스의 유명한 현대 작곡가 중 프란시스 뿔랑이 있습니다. 1950년대에 그가 사티의 이 짐노페디를 연주하는 바람에 오랫동안 저평가되었던 사티가 재평가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당장 뿔랑의 연주를 찾아 볼 작정입니다. 뿔랑의 음악들도 언젠가는 한번 꼭 소개하고 싶네요. 이 분의 곡들도 굉장히 묘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짐노페디 1번, 그노시엔느, 쥬 떼 부를 틀었더니 옆에서 듣던 아홉 살짜리 아들이 한마디 합니다. "엄마, 이 곡이 제일 좋다. 이 곡도 클래식이야?" 이 곡은 바로 짐노페디 1번이랍니다. 취향은 쉽게 바뀌지도 않는데 심지어 유전도 되는가 봅니다.



파스칼 로제가 연주하는 짐노페디 1번 https://www.youtube.com/watch?v=pIbXrpy4EHY


프랑스 낭만이 물씬 풍기는 Je Te Veux(조수미) https://www.youtube.com/watch?v=lzpahJ4hSiI


에릭 사티의 그노시엔느 https://www.youtube.com/watch?v=pUDX5pcOk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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