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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도 다이어트가 필요해

요한 세바스찬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by 김정은

요즘 Early American이라는 유튜브 채널 영상에 푸욱 빠져 있습니다. 두 부부가 1800년대 미국 시골 생활을 그대로 재현하여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콘텐츠인데요. 특히 재미난 부분이 부인의 요리하는 모습입니다. 예를 들어 1803년에 출판된 레시피를 따라 그대로 음식을 만듭니다. 음식을 익히는 곳은 오로지 벽난로뿐이에요. 벽난로 안에 냄비를 걸어서 익히거나 숯 위에 프라이팬을 올려 볶거나 냄비 위에 숯을 올려 빵을 굽는 식이죠.


재료도, 조리 방식도 요즘의 레시피에 비해 단순합니다. 우유에 버터를 녹인 후 밀가루와 이스터, 소금으로만 반죽하여 비스킷을 굽고, 순무와 소고기를 물에 넣고 삶은 후 순무에 버터와 소금을 넣고 으깨고 소고기는 간장처럼 생긴 버섯 케첩을 뿌려 둡니다. 그리고 밭에서 방금 캔 당근과 계란을 삶아 준비하지요. 이렇게 차려진 한상은 요즘 북미인들의 식습관을 생각할 때 이례적이었습니다.


캐나다에 와서 지내보니 외식이 쉽지 않습니다. 일단 식당 종류가 다양하지 않아요. 햄버거 식당이 가장 많고 그다음으로 피자, 스테이크 식당 순입니다.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브런치 가게를 가면 그나마 식단이 조금 나아요. 구운 식빵이나 팬케이크, 감자튀김, 소시지와 베이컨, 스크램블 에그가 한 접시에 가득 담겨 나와 먹음직스러워 보이지만 싱싱한 야채샐러드는 따로 주문해야 합니다. 칼로리가 대단한 한 접시지요. 현지인들 입맛대로 먹으면 살이 찔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그러다 보니 기름기가 좌악 빠진 200여 년 전 미국인의 식단과 요즘의 식단 간의 괴리감에 당황할 수밖에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한식의 양념 또한 맵고 짜고 달긴 합니다. 저 역시 한식 요리할 때 간을 화려하게 하는 편입니다. 한식은 간장, 후추, 설탕, 깨소금, 참기름, 찐 마늘, 고춧가루, 고추장, 물엿이 기본양념입니다. 육수를 만들 때는 열 가지, 때로는 스무 가지 이상의 재료를 넣고 우려내지요. 여기에 한국 식당에서 먹던 감칠맛 나는 김치찌개나 된장국, 육개장 등을 만들고 싶을 때는 다시다를 넣거나 치킨스톡을 넣어 맛을 더 보강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늘 화려한 간으로 음식을 해 먹다 보니 가끔 소박한 음식이 그렇게 당깁니다. 갖은 야채와 닭고기 혹은 돼지고기 등에 진하고 맛난 고추장 소스를 넣고 기름에 볶거나 튀기는 대신 풋고추와 상추, 된장만으로 밥을 먹을 때가 있어요. 양배추를 쪄서 쌈장을 곁들이면 남편과 아이들의 젓가락이 고기반찬으로 향하질 않습니다. 콩나물을 듬뿍 넣은 후 소금으로만 간을 한 후 냉장고에 보관했다 먹으면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시원한 콩나물국이 됩니다. 담박한 백김치, 물에 말은 오이지, 양파 장아찌처럼 소박하고 단순한 반찬들이 갈비찜이나 닭볶음탕 보다 훨씬 맛있게 여겨지는... 그런 때가 있지요. 내 몸이 알아서 과부하 걸린 식단을 조절하는 것 같아요. 몸매를 위한 의식적인 다이어트가 아닌, 생리적인 균형을 찾고 싶어 단순한 음식으로 저절로 다이어트를 하는 것이지요.




몸처럼 마음도 다이어트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는 격언에서 알 수 있듯이 지식은 마음을 키워주는 영양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영양(지식)이 지나치면 고지혈증이나 당뇨를 유발하는 비만이 될 수 있듯 과도한 지식도 마음에 병이 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기본인 현대사회는 책뿐만 아니라 다양한 매체를 통해 원하는 지식과 정보를 언제든 검색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원치 않는 정보도 받아들여야 하지요. 꼭 필요한 정보만 검색하고 선택하는 것이 추가적인 지식 기술이 되고 있습니다. 기술이 발전하고 사회가 다양화될수록 더 많은 지식을 알아야 하는 아이러니는 또 다른 스트레스를 유발합니다.


지나친 정보는 가끔은 하지 않아도 될 걱정과 염려의 재료가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스트레스는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을 어지럽히고 더럽힙니다. 어떤 지식은 지나치게 머릿속에 들러붙어 강박증이 되기도 하고 우울증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기 전에 마음 속에 낀 더러운 때를 청소하고 생각의 콜레스테롤을 줄이는 다이어트가 필요한 것이죠.


마음에 낀 기름기를 빼내고 오랫동안 닦지 못해 눌어붙은 생각의 찌꺼기를 구석구석 깨끗하게 청소하는 저만의 방법으로 집 대청소와 자연으로의 여행, 그리고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듣기가 있습니다.




BWV 998번, 즉 바흐 작품번호 998번인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바흐가 1742년 <클라비어 연습곡> 제4권으로 출판한 작품으로 바흐 자신이 붙인 제목은 <2단 건반 클라비 쳄발로를 위한 아리아와 변주곡들로 이루어져 있는 클라비어 연습곡>입니다. 하지만 바흐의 제자 골드베르크가 이 작품을 초연하여 현재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으로 더 알려지게 되지요.


바흐가 붙인 제목 중 클라비 쳄발로와 클라비어라는 단어가 생소할 겁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클라비 쳄발로는 피아노의 사촌 격인 악기로 오늘날에는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클라비 쳄발로는 영어로는 하프시코드이고 독일어로는 쳄발로, 프랑스어로는 클라브생입니다. 이탈리아어로 클라비 쳄발로이고요. 독특하게 쳄발로는 건반 악기이면서 현악기라 할 수 있습니다. 굉장히 쨍쨍 거리는 음색을 가졌는데 피아노처럼 페달이 있는 것은 아니라 모든 음들이 약간 스타카토처럼 들리는 특징이 있습니다. 쳄발로는 르네상스에서 바로크 시대까지 많이 연주되었고, 피아노가 등장한 후로는 거의 사라지게 됩니다. 클라비어는 하프시코드와 같은 건반악기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클라비 쳄발로? 하프시코드? 쳄발로? 클라브생?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바흐가 자신의 제자인 요한 고틀리프 골드베르크를 위해 썼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신성 로마 제국의 주 러시아 대사였던 헤르만 카를 폰 카이저링크 백작이 불면증이 심해 바흐에게 잠이 잘 오는 부드러운 노래를 써달라고 골드베르크에게 부탁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수면제 음악인 것이죠. 백작은 이 곡에 만족해 바흐에게 엄청난 돈을 선물했다고 합니다. 오늘날로 치면 성과급인 건가요? ㅎㅎㅎ


변주곡을 영어로 variation music이라고 합니다. 하나의 주제 멜로디가 나온 후 주제 화성과 리듬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변형시켜 보는 것이죠.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총 30개의 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곡은 주제곡인 아리아, 두 번째 곡부터 29번째 곡까지 28개의 변주로 이어지며 1번의 주제가 다시 반복되는 30번 곡을 아리아 다카포라고 합니다. 또 하나 재밌는 것은 3번, 6번, 9번 등 3 배수 번째의 곡은 캐논이라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파헬벨의 캐논을 기억하는 분들이라면 캐논이 어떤 형식인지 금방 알아챌 수 있을 겁니다. 초등학교 음악 시간에 돌림노래를 해 본 적이 있으실 거예요. 1 분단이 먼저 노래를 시작하면 그다음 2 분단이 노래하고 그다음 3 분단이 그리고 마지막에 4 분단이 노래를 하지요. 이것이 곧 캐논입니다. 4 분단이 4 성부의 역할을 한 것이지요. 같은 주제의 음을 각 성부가 시간차를 두고 진행되는데 서로 음이 겹치는 때에 불협화음이 나지 않고 화성이 어우러지도록 만드는 것이 캐논의 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흐는 심지어 8 성부의 캐논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8파트가 시간차를 두고 노래하거나 악기를 연주하면서 음들이 중첩되고 싸이면 놀라울 만치 장엄한 음악을 만들어냅니다.



가장 대중적인 파헬벨의 캐논 https://www.youtube.com/watch?v=JvNQLJ1_HQ0


8 성부로 연주되는 바흐의 캐논, BWV 1072 https://www.youtube.com/watch?v=Q5-5Xvm8Qns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감상하는데 위에 설명한 배경지식은 솔직히 별로 필요가 없습니다. 음악의 분석은 작곡가와 연주가의 몫으로 남겨두고 우리는 그저 직관적으로 듣고 즐기면 된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3번, 6번, 9번을 들을 때 이것이 캐논이구나 한번 되새기면 바로크와 고전 음악을 감상할 때 캐논 형식이 들리게 될 겁니다. 캐논을 알면 바흐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대위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대위법을 보다 쉽게 간소화한 것이 바로 캐논이기 때문이지요. 대위법은 모든 위대한 작곡가들이 끊임없이 연구하여 작품을 만들 때 주로 쓰던 작곡 기술입니다. 후에 이 대위법에 대해 글을 쓸 기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의 주제로 여러 개의 변주를 하는 작품들은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것 같습니다. 일단 변주라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하게 음악이 전개되기 때문에 전혀 새로운 화성이 나타날 때의 긴장감을 완화해 주지요. 물론 그런 예상치 못한 전개와 반전이 한편 흥분과 황홀감을 주기도 하지만 자극이 과도한 상태에서 편안한 상태가 되고 싶을 때에는 감정의 폭이 크지 않으면서도 경쾌함을 주는 바로크풍의 음악이 큰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카이저링크 백작이 무척 만족했는지도 모릅니다. 이 곡이 연주되는 공연에서는 유독 졸고 있는 청중이 많이 발견되기도 하고요. ^^


더구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감정과 낭만이 절제된 음악이어서 기름기가 좌악 빠진 담백한 요리를 먹을 때의 청량함을 느끼게 합니다. 조미료와 향신료, 갖은양념이 맛을 더 풍부하고 화려하게 만들어 주지만 먹고나면 금방 질리게 됩니다. 제 경우 화려한 관현악곡들은 반복해서 듣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또 기름기 많은 중국 음식을 먹고 난 후 반드시 녹차나 보이차를 찾게 되는데요. 같은 이치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을면 복잡한 머릿속에 불어오는 시원한 솔향기 묻은 바람 같달까요.


골드베르크 변주곡 첫 페이지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하다가 쳄발로가 복원된 20세기에 이르러서야 쳄발로를 위한 연주곡들과 함께 발굴되었습니다. 20세기 대표 쳄발로 연주자인 반다 란도프스카가 연주한 1933년 연주는 여전히 쳄발로 연주의 고전이라고 합니다만 저는 아직 들어보지는 못했습니다.


이 곡을 처음 피아노로 연주하여 음반으로 녹음한 피아니스트가 바로 글렌 굴드입니다. 글렌 굴드의 이 연주가 워낙에 대성공을 거두면서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곧 글렌 굴드라는 수식어가 붙지요. 저도 글렌 굴드의 연주를 들은 이후로 다른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찾아 들을 필요를 못 느꼈습니다.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는 담백함 그 자체입니다.


열정 없는 확신, 글렌 굴드의 연주가 딱 그렇습니다. 이 곡이 원래 쳄발로 곡이기 때문인지 글렌 굴드는 페달도 많이 밟지 않습니다. 그래서 페달을 많이 밟는 다른 연주가들의 연주에 비해 약간 끊어지지만 그래서 화려하지 않고 음악의 뼈대만 순수하게 남기는 기분마저 들게 합니다. 콩나물 국을 끓일 때 다시다나 다른 조미료를 일체 배제하고 오로지 소금으로만 간을 하면 콩나물 특유의 향과 맛이 더 잘 느껴집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글렌 굴드의 연주는 일체의 조미료를 배제하고 바흐가 가진 바흐 특유의 향과 맛만을 내는데 집중하는 요리인 셈이지요.


글렌 굴드(1932~1982)는 음악사에서 유명한 기인이기도 합니다. 캐나다 토론토 태생으로 열두 살에 토론토 왕립음악원을 졸업하고 카라얀과 협연한 천재이지요. 글렌 굴드는 어린 나이인데 자신의 음악관에 꽤나 확신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사춘기 시절에는 낭만주의를 선호할 법도 한데 그보다는 고전주의와 바로크 시대 작품에 관심을 기울였고 특히 바흐 작품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는 31세 때부터 연주회를 중단하고 스튜디오에서 녹음으로만 연주를 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가 녹음만 고집한 이유는 작곡가의 의도를 온전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콘서트장보다 녹음실이 더 완벽한 환경을 만든다고 믿었기 때문이지요. 그의 녹음 철학은 발전하여 최대의 녹음 효과를 얻으면서 녹음 환경이 해석에 영향을 주는 부분을 파악하기 위해 여러 녹음 기술을 시도하였습니다. 50대가 되면서는 피아노 연주를 그만두고 지휘와 다큐제작자, 방송인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글렌 굴드와 정확히 반대 의견을 갖던 이는 러시아 피아니스트 리흐테르 였습니다. 한 번은 글렌 굴드가 리흐테르 연주를 녹음하고 싶다고 청한적이 있습니다. 폭탄이 떨어지는 전시에서도 청중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달려가 연주회를 했고, 러시아의 소도시를 유랑하며 만난 사람들 앞에서 즉흥적으로 작은 콘서트를 열었던 때가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고백한 리흐테르로서는 녹음실에서 기계에 의존하며 연주하는 글렌 굴드를 가짜 연주가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지요. 리흐테르와 글렌 굴드라는 두 전설적인 연주가들의 만남이 성사되지 못해 아쉽지만 두 사람의 의견 차이는 누가 옳고 그르다고 할 수 없는 부분 같아요. 세상은 그렇게 엇갈리는 톱니바퀴가 맞물리며 돌아가는 이상한 곳이니까요.


글렌 굴드의 연주를 가장 좋아하지만 요즘 새롭게 제 마음을 흔드는 연주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대한민국의 피아니스트, 손민수 교수의 연주입니다. 손민수 피아니스트는 올해 반 클라이번 우승으로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군 임윤찬 군의 스승이기도 합니다. 이전까지는 손민수 교수를 잘 몰랐다가 임윤찬 군 때문에 알아보게 된 보석 같은 연주가입니다.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는 앞서 서술한 것처럼 '열정 없는 확신'의 노래라면 손민수의 골드베르크는 '확신 있는 순수함'의 노래입니다.


좀 더 서술하자면, 글렌 굴드는 '자아, 진짜 바흐를 들려주겠소'라는 자의식이 약간 느껴지는 반면, 손민수는 '나는 그저 바흐를 노래할 뿐입니다'라고 들립니다. 손민수의 이러한 순수한 열정과 헌신이 느껴지는 음악에의 태도는 제자인 임윤찬에게도 그대로 전달된 것 같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완벽한 연주란 상대적인 것이란 걸 배우게 되었습니다. 나의 취향, 나의 자의식, 나의 가치관, 나의 감정, 나의 상황에 따라 내게 딱 들어맞는 연주를 발견할 때 그 연주가 바로 완벽한 연주이기 때문이지요. 절대적인 완벽은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퍽 위로가 됩니다.


마음에 너무 많은 것이 담겨 버겁다 느껴질 때,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듣습니다. 그리하면, 세상은 생각만큼 그리 어지럽지도 복잡하지도 않다고, 자세히 보면 익숙한 것들의 변주일 뿐이니 겁먹지 말고 가만히 귀 기울이면 어느새 세상에 조금 더 적응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라고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는 바흐의 진심어린 위로를 얻게 되니까요...




연주 중인 젊은 날의 글렌 굴드


글렌 굴드, 골드베르크 변주곡 https://www.youtube.com/watch?v=Ah392lnFHxM&t=299s



손민수, 골드베르크 변주곡 https://www.youtube.com/watch?v=BLElZaqQxE4


* 이 글은 나무위키, 위키백과, 문화웹진 채널예스, 경북매일 등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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