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가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는 뉴스를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조용한 퇴사? 그건 내가 하고 싶은 건데? 미국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라는 호기심에 관련 기사를 더 찾아보았어요.
'조용한 퇴사'는 뉴욕의 24살 엔지니어 자이어드 칸이 만든 신조어입니다. 회사를 조용히 사직한다는 액면 그대로의 뜻이 아니라 회사에서 일을 하더라도 일의 노예가 되는 것을 그만두겠다는 일종의 선언입니다. 예를 들어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근로시간, 통상적으로 아침 9시에서 저녁 6시까지는 충실히 일을 하지만 초근이나 야근은 하지 않기, 인생을 회사 중심으로 두지 않기, 일에 완벽을 추구하지 않기 등을 말합니다.
자이어드 칸이 '조용한 퇴사'라는 영상을 틱톡에 올린 후 MZ 세대를 중심으로 많은 이들이 그의 영상에 열광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소셜미디어에 '#조용한 퇴사'라고 태그를 달며 칸의 신념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되지요. 젊은 세대들의 반응이 워낙 뜨거워 사회적인 현상으로 이슈가 되었고 이를 본 베이비붐 세대들은 이들을 '루저'라고 하거나 자기 자신을 위해 사회의 성장을 거부하는 '이기적인 세대'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어떤 뉴스에서는 각 세대가 이에 대한 토론회의 패널로 출연해서 격돌하고 있는 장면을 그대로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세대 간 갈등이 우리나라만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대두되는 것 같습니다.
어느 세대의 신념이 옳고 그른지 논쟁하는 것은 시간낭비 같아요. 양쪽의 생각 모두 옳기 때문입니다. 기성세대는 세계대전을 비롯한 여러 전쟁과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어려워진 경제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 또한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살고 있습니다. 기성세대보다는 사회, 경제적 측면에서 보다 발전된 사회에서 살고는 있지만 턱없이 높아진 집값과 부족한 일자리로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고통받고 있지요. 기성세대가 당시의 상황에 맞게 회사에 충성하고 국가의 성장을 위해 헌신했다면, 젊은 세대 또한 현재의 상황에 맞게 변화된 신념을 가지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베이비부머, X 세대 등 우리나라의 기성세대도 젊은 시절에는 당시의 기성세대에 반발하는 신세대였습니다. 시간의 흐름을 멈출 수 없는 한 변화는 불가피한 것이죠.
다만, 세대 간 생각의 차이가 갈등으로 이어지고 서로를 증오하기에 이르게 된다면 이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조금씩 양보하여 서로의 생각이 다름을 인정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기성세대가 먼저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어느 가정에나 부모와 자녀 간의 생각의 차이가 있고 갈등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좀 더 어른'이 '좀 덜 어른'을 먼저 이해하고 포용할 때 진짜 '좀 더 어른'이라고 할 수 있지요.
MZ 세대들의 이런 생각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기성세대의 관성은 역사적으로 볼 때 지극히 당연한 것이기도 합니다. 정권이 부패하면 새로운 정권을 수립하기 위해 혁명이 발생합니다. 무능한 왕정 체제를 붕괴시키고 시민들을 위한 정치체제를 마련하기 위해 발생했던 프랑스 대혁명이 대표적인 사례지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수많은 혁명 정부들이 급진적으로 사회를 개혁시키려다 보니 반대급부로 반혁명을 발생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했음을 역사가 보여줍니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공화정이 수립되지만 혼란한 사회를 빨리 수습하기 위해 단두대로 상징되는 공포정치가 실시됩니다. 공포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반감은 결국 공화정을 무너지게 만들었고, 나폴레옹의 제정 출현과 실각을 거쳐 부르봉 왕조가부활하게 됩니다. 시민들의 피로 무너뜨렸던 왕정이 복구되고 만 것이지요. 하지만 프랑스 혁명의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은 전 세계로 확산되어 오늘날의 민주주의 시대를 열어 주었습니다. 커다란 흐름에서 볼 때 혁명은 결국 성공한 셈이지요.
클래식 음악사에는 바로크-고전-낭만주의라는 주요 음악 사조를 뛰어넘어 완전히 다른 음악을 탄생시킨 작곡가가 있습니다. 클래식 음악 또한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많은 변화를 추구하였고 새로운 음악을 탄생시켰지만 이 모두 바흐가 확립한 조성 안에서의 변화였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화성법을 완전히 해체하고 '무조주의'를 만든 아르놀트 쇤베르크의 음악이 세상에 나왔을 때 소수의 음악가들은 열광했지만 대중들은 거부하고 싫어했습니다.
* 무조주의(Atonal music): 넓은 의미로 으뜸음이 없는 모든 음악, 1908년 이후 현재까지 작곡된 음악에서 찾을 수 있다. 으뜸음을 포함하는 장조나 단조의 7 음계 조성과 3화음에 의한 기능 화성을 해체한 음악이다. 좁은 의미로는 12음기법이 만들어지기 전에 작곡된 신빈악파의 무조음악을 뜻하며 대표적인 곡으로 쇤베르크의 <3개의 피아노곡>, <달의 피에로>가 있다.(출처: 고클래식)
그의 음악은 이전의 클래식과 차원이 다른 혁신적인 음악이었습니다. 수 백 년간 사용된 장조와 단조로 만들어진 음악 조성을 뛰어넘고, 기존의 7 음계(도-레-미-파-솔-라-시)를 12 음계로 확장시켜 전무후무한 음악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혁신의 대명사인 애플의 전 CEO 스티브 잡스처럼 대중적인 인기(마니아들에게는 거의 종교)는 커녕 처참할 정도로 대중에게 외면받은 작곡가가 바로 그였습니다.
아르놀트 쇤베르크
1874년 9월 13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헝가리 출신의 구두공이었던 사무엘 쇤베르크의 아들로 태어난 아르놀트 쇤베르크는 '불새'로 유명한 작곡가 스트라빈스키와 함께 20세기 클래식 음악의 최고 거장으로 꼽힙니다. 그의 가계는 빈에 기반을 둔 유대인 집안이었기 때문에 반유대주의를 강력하게 주장하던 독일 나치당이 정권을 잡자 1941년에 미국으로 망명하게 됩니다. 그 후로 평생 미국에서 활동하였습니다.
1891년부터 1895년까지 은행에서 근무하며 아마추어 실내악 오케스트라에서 첼리스트로 활동한 그는 지휘자였던 쳄린스키(훗날 쇤베르크의 처남이 됨)에게 약 3개월간 대위법을 배운 것이 그가 받은 음악 교육의 전부였다고 합니다. 음악원 등 정규 음악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던 그는 브람스, 바그너, 말러, 바흐와 모차르트 등을 연구하면서 독학으로 작곡을 공부했습니다. 물론 쇤베르크가 처음부터 독특한 음악을 만들었던 것은 아닙니다.
젊은 날의 쇤베르크는 후기 낭만주의의 거장 구스타프 말러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영향을 많이 받아 낭만주의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특히 1899년에 작곡한 <정화된 밤>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 중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 무척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무조주의를 확립하기 이전 후기 낭만주의의 느낌이 가득해서 그의 후기 작품보다는 받아들이기 좀 더 쉽고 직관적으로도 아름답다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 역시 그의 개성, 화성의 체계를 보다 확장시키고 새로운 음의 조화를 이루고자 하는 작곡가의 의도를 충분히 감지할 수 있습니다. 아름답지만 난해하고, 숭고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한 면모가 엿보입니다.
이 작품은 독일의 시인 리하르트 데멜이 쓴 연작시집 <여인과 세계(1896)> 중 '정화된 밤'이라는 시에서 영감을 얻어 완성되었습니다.
정화된 밤
리하르트 데멜
두 사람의 연인이 싸늘한 숲 속을 거닐고 있네
달은 그들을 따라 걷고, 그들은 달을 쳐다보네
달은 중천에 떠 드높은 떡갈나무 위를 걷고 하늘에는 달빛을 가릴 구름 한 점 없네
달빛 속으로 긴 그림자가 비치네
여인은 곁의 남자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길,
“나에겐 아기가 있어요. 하지만 당신의 아기가 아니랍니다.
나는 죄를 짓고 당신 곁에 있습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엄청난 죄악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나는 이미 행복을 바라지 않아요.
나는 풍요로운 생활과 어머니로서의 행복과 그 의무에 대한 강한 염원을 지니고 있어요.
나는 감히 두려움에 떨며 잘 알지도 못하는 남자에게 내 몸을 맡기고, 그것을 축복했어요.
이제 인생은 내게 복수를 하는군요. 지금 당신을 만나게 되다니…”
그녀는 굳은 걸음으로 걷고 있네. 그녀는 달을 쳐다 보고 달은 그녀와 함께 걷고 있었네.
남자가 말하길,
“그 아이는 당신 영혼에 그리 무거운 짐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보시오. 달빛이 얼마나 세상을 감싸 주고 있는가를.
우리는 차가운 호숫가를 거닐고 있지만 따뜻한 온기가 내게서 당신에게 흐르고 있습니다.
이 온기는 아기를 정화시켜 나를 위한 나의 아기로 태어나게 할 것입니다.
당신은 내게 빛을 안겨다 주었소. 그 아이를 제 것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남자는 여자를 포옹하며 입맞춤을 하네
둘은 달빛 아래 깊은 밤을 끝없이 거닐고 있네
25세의 젊은 청년 쇤베르크는 시의 화자에게서 큰 감명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달빛이 비치는 스산한 숲 길을 두 사람이 걸어갑니다. 시적 화자의 연인인 여인이 아이를 가졌지만 그 아이가 지금 옆에서 걷고 있는 화자는 아니라고 충격적인 고백을 합니다. 여인은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며 자신의 죄에 대한 애인의 심판을 기다립니다. 남자는 진심으로 여인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를 자신의 아이로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춥고 깊은 어둠 속을 헤매고 있었던 여인의 영혼은 애인의 용서로, 크고 깊은 사랑으로 구원받습니다. '정화된 밤'은 바로 여인입니다.
이런 시의 내용을 알지 못한 채로 <정화된 밤>을 들어도 음악 속에서 숭고한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의 내용을 알고 나면 이 작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소름이 다 돋을 정도입니다. 이 곡은 크게 5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 원작시의 5연을 상징합니다. 시의 내용을 그대로 따른 것이지요. 쇤베르크가 이 곡을 만들 때 그의 아내가 된 마틸데 쳄린스키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한 사람에 대한 진실된 사랑을 음악으로 표현한다면, <정화된 밤> 바로 그 자체입니다.
쇤베르크의 아내 마틸다
음악평론가 막스 그라프는 쇤베르크가 자신에게 가져온 현악 6중주 <정화된 밤> 악보를 본 후 심상치 않음을 느끼며 구스타프 말러에게 악보를 보여줍니다. 말러는 악보를 보자마자 자신의 매제이자 빈 필하모닉 악장인 아르놀트 로제에게 이 곡을 연주해달라 요청합니다. 그리고 작은 연주회를 열어 쇤베르크 앞에서 정화된 밤을 들려줍니다. 연주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열광했습니다.
대부분 음악가들이었던 말러의 작은 연주회와 달리 빈에서 <정화된 밤>이 초연되었을 때 청중들은 휘파람을 불며 야유를 보냅니다. 심지어 주먹다짐까지 일어났지요. 쇤베르크는 대중들의 이런 강렬한(?) 반응 때문에 <정화된 밤>이 더 유명해졌다고 담담하게 회상합니다. 실제로 쇤베르크는 이 곡이 대중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을 예상했습니다. <정화된 밤>에는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화음을 넣어 만들었기 때문에 연주조차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합니다.
새로운 것이 항상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추구하지 않으면 예술도, 문화도, 사회도, 과학도 도태될 것입니다. 물론 쇤베르크의 새로운 음악이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한 것은 아닙니다. <정화된 밤>의 달콤한 선율은 구스타프 말러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음악이 연상되는 지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바흐가 정립해 놓은 음악적 토대가 없었더라면 무조주의와 12음기법은 탄생조차 하지 않았겠지요. 무언가를 해체하고 새로 만들려면 분명 대상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니까요.
쇤베르크 정화된 밤(오케스트라 버전, 주빈 메타 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https://www.youtube.com/watch?v=P0uADb5DAy8
기성세대들이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는 서점에 가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지난 수 십 년간 쏟아져 나온 각종 자기 계발서가 곧 방증입니다. 경제 전문가부터 정신과 의사와 심리학자들까지 기업들과 수많은 기업인들을 분석하여 혁신을 강조하고 이윤을 창출하라고 다그치고, 개인으로서도 지금보다 생산적인 인간이 될 것을 종용합니다. 회사와 사회에서 성공적인 리더가 되기 위한 지침서들이 너무 많아 피로하기 까지 합니다.
기성세대는 자신이 속한 조직과 회사의 성장을 위해,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는 개인이 되기 위해, 가족과 풍족한 삶을 누리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고 살아온 세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MZ세대들의 '조용한 퇴사'에 대한 기성세대의 분노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변화를 두려워한다기보다는 자신들의 과거와 현재가 MZ세대들에게 부정당하고 있다고 충분히 느낄 만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세대 간의 충돌은 독일의 역사철학자 헤겔의 역사관인 변증법(정-반-합 이론)에 비춰 볼 때 세대 간 간극이 메꿔지고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의 일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변화는 모든 사람이 동시에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사람마다 생각과 처한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변화를 받아들이는 속도가 모두 다르지요.
이번 9월에 칼리지에 입학하여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지난주 첫 강의에 들어가니 우리 반에서 제가 가장 최고령자 같더군요. 제 학우들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 중후반 사이로 보이는 젊은이들이었습니다. 그들 가운데서 공부하려니 스스로 마치 외로운 섬처럼 딴 세상에 떠 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젊은 친구들이 나이 든 사람에게 굳이 관심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주눅이 들기도 했고요.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용기를 내서 옆자리에 앉은 학우들에게 초콜릿이나 사탕을 나눠 주며 자연스럽게 이름을 묻고 제 소개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이 든 사람의 덕목은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다 생각하며 말이죠. 그렇게 젊은 동기들을 하나 두울 알아가고 있습니다. 인도, 필리핀, 중국, 캐나다, 가나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젊은이들은 개인적으로 대화할 때는 친절하고 수업 시간에는 적극적이며 교수의 농담에는 호탕하게 웃어 참 사랑스럽게 보입니다. 젊음 그 자체로도 발산하는 긍정적인 에너지도, 최선을 다해 배우고자 하는 순수함도 참 아름답더라고요.
아주 조금의 용기를 내어 변화를 받아들이면 그전에는 미처 보지 못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굳이 역사책을 들춰 보지 않아도 다시금 배우고 있습니다. 배움에는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