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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May 10. 2023

힐링하러 서점에 갑니다

노스 런던 Indigo

서점은 어쩐지 낭만적입니다. 영화 <노팅힐>에서 줄리아 로버츠와 휴 그랜트가 처음 만나게 된 곳이 바로 서점이었습니다. 또 다른 영화 <유브 갓 메일>에서는 서점이 아예 영화의 주된 배경입니다. 작은 서점을 운영하는 맥 라이언과 대형 프랜차이즈 서점을 운영하는 톰 행크스는 서로 티격태격하다 사랑에 빠지고 맙니다.


하지만 서점을 배경으로 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는 바로  <채링크로스 84번지>입니다. 미국에 사는 이 책의 작가 헬렌 헌프는 자신이 원하는 고서적 등을 취급하는 영국 서점 <마크스>와 20년간 우정을 쌓게 됩니다. 서점 직원들과 주고받은 주문서와 메모 등을 엮어 낸 책이 바로 <채링크로스 84번지>로 책 자체는 얇기도 하고 기승전결의 화려한 내용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순수한 기쁨을 얻게 됩니다.


어린 시절에 살던 서울 봉천동의 작디작은 서점은 대학에 가기 전까지 제게 소소한 행복을 주는 곳이었습니다. 이곳에서 다달학습이나 동아전과 같은 학습서를 샀고, 시집이나 소설을 샀습니다. 가끔은 큰맘 먹고 잡지도 샀지요.  대학생 시절엔 홍대 근처의 헌책방만 골라 다니면서 중고서적을 사냥하기도 했고, 종로에 놀러 가는 걸 워낙 좋아해 종로서적과 교보문고, 반디 앤 루니스도 제가 자주 가던 서점이었습니다.


꼭 책을 사지 않더라도 아이쇼핑을 위해 종종 서점에 들릅니다. 마치 화원에 들러 다양한 종류의 화초들을 구경하는 것처럼 말이죠. 형형색색의 책 표지들만 보아도 이상하게 힐링이 됩니다. 이런 저의 취미는 해외에서 산다고 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사는 동네라면 어디에든 서점은 있게 마련이니까요. 책을 읽는 인류를 호머 부커스라고 한다지요? 책은 인간이 가장 좋아하는 오락 중 하나임이 분명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캐나다 런던 시내에도 서점이 여러 개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붙일 단골 서점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런던 북쪽에 위치한 인디고 서점입니다. 인디고 서점은 프랜차이즈라 런던 시내에도 두세 군데 되는 듯합니다만 집에서 10여 분만 운전하면 되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 하나가 있어서 참으로 다행입니다. 


인디고 서점에 처음으로 발을 들이면 교보문고를 축소해 놓은 듯한 인상 때문에 외국 서점이지만 전혀 낯설지 않습니다. 서점 바로 옆에는 스타벅스가 붙어 있어 여유롭게 차를 마시며 책을 읽기에도 안성맞춤입니다. 책뿐 아니라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소품들도 많이 진열되어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솔솔 하지요.


인디고 서점은 여러 카테고리로 책들을 잘 정리해 두었는데 저는 특히 이 섹션 네이밍이 참 마음에 듭니다.


"The Storty of Mankind"


역사와 정치과학, 문화, 예술, 문학, 전기 등의 책이 모여 있는 곳을 "인류의 이야기"라고 이름 붙여놨습니다. 생각해 보니 어찌나 적확한 네이밍인지요.

인간은 인간의 이야기가 가장 궁금합니다


서점 입구에는 베스트셀러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서점에 갈 때마다 전시되는 책들이 조금씩 바뀌는데 캐나다 런던 사람들이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트렌드가 보여 재미가 있습니다. 넷플릭스나 아마존 프라임을 잘 보지 않더라도 어떤 드라마가 인기 있는지 여기를 훑으면 다 알게 됩니다. 


해리 왕자의 자서전은 이제 인기가 좀 시들해졌는지 40프로나 세일하네요. 하지만 난 패스~


이런 수첩을 사면 글이 저절로 써질까요? 예쁘지만 가격이 사악해서 눈물을 머금고 패스~


Teen 섹션에는 다양한 만화책이 있는데 가끔은 한국 웹툰도 보입니다. 아래 <여신강림> 보이시나요? 하지만 캐나다에서 만화분야는 일본이 꽉 잡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마이 히어로 아카데미아>를 무척 좋아하는데 신간을 사려고 갈 때마다 재고가 없어서 허탕을 치기 일쑤입니다.


만화 섹션에 꽂혀있는 여신강림, 반가웠어!


버지니아 울프 전집을 25불에 팝니다...아...사고 싶다...영어 실력을 좀 더 늘린 후에 도전!
캐나다도 판타지 장르 인기가 대단합니다. 
(좌)화훼서적....보기만 해도 눈이 황홀합니다. (우)넷플릭스 핫 드라마 브리저튼 백과사전이 있네요. 아웅 사고 싶어라~


지난번 방문 때는 브리저튼 책이 꽂혀 있는 곳에 봉준호 감독의 작품을 설명하는 백과사전이 있었는데 그새 팔렸나 봅니다. 방탄소년단 앨범도 서 너개 보였는데 이번에 갈 때는 보이지 않네요. 잠시 국뽕에 취할 수 있게 해 준 인디고... 쌩유...


요 섹션 모두 일본 만화로 가득... 망가... 이거 약간 음란물 아닌가요??? 
SF 영화의 고전 스타워즈 살까 말까 고민했지만 지난번 듄을 샀고 아직 읽는 중이니... 패스... 광선검은 언제나 믓찌다! (연진아)


아이들 책 전용 구역, 책보다 인형이 더 탐이 나는데...
중간에 테이블과 의자가 있어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브리저튼을 꺼내 들었는데 영어 글밥에 그만 어질어질....화려한 사진만 후루룩 넘겨봤네요 ㅎㅎㅎ


캐나다의 책 값은 우리나라와 비교할 때 좀 더 비싼 편입니다. 인기 있는 소설들은 19불에서 25불 사이고 하드커버 책은 60불에서 100불, 200불도 합니다(대학 전공 서적은 가격이 더 사악함). 그래서 책을 많이 사고 싶을 때는 서점에서 할인할 때를 기다립니다. 다행히 인디고는 종종 20프로 세일 행사를 합니다. 그래도 이왕 이리 나왔는데 책을 한 권도 사지 못하고 가기에는 마음이 조금 허전합니다. 할인 중인 책들 가운데 살 만한 책이 없는지 매의 눈으로 스캔해 봅니다.


오! 요리책을 이렇게 싸게 팔고 있다니! 이건 무조건 사야 해!!!


드디어! 가격이며 내용이며 마음에 쏙 드는 책을 발견합니다. 35가지 재료로 350가지 레시피를 소개하는 요리책입니다. 레시피가 대부분 간단해서 도전해 볼 용기가 납니다. 무엇보다 영어 글밥이 적네요. 하하하 ;;;



서점 나들이로 헛헛하던 마음이 어느새 충전되는 기분입니다. 새 책을 사려면 지금 읽고 있는 책들부터 빨리 읽어야 하기에 나름대로 독서 채찍질이 되기도 합니다. 다음번 방문 때는 아마존 프라임에서 방영된 하이틴 드라마 <The summer I turned pretty>의 원작 소설을 꼭 장바구니에 넣어 오겠다고 다짐도 해 봅니다. 오늘은 일단, 저녁으로 Glazed chicken with Citrus Salad에 도전해야겠습니다. 왜냐고요? 요리책 산 기념으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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