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청도 역에 내리고 싶다
철길 옆에 핀 코스모스 서럽게 울고 있던
강원도의 어느 간이역
이름을 잃어 버려 다시 찾을 수 없는 그 곳이
그리워,
그리워,
또,
그리워
간이역 낡은 벤치
우리 두 사람
두 사람 사이에는 서울에서 부산만큼 아득한 거리가 놓였어서
플랫폼 사이로 삐죽 나온 바랭이 고개를 떨구고
눈썹달도 안타까워 침묵하던 밤
발자국들이 징검다리를 만들면 철로가 된다며
이제는 사라진 비둘기호 난간에 기대어
안녕, 안녕
나의 강원도
안녕, 안녕
나의 첫사랑
벤치에 두고 온 청춘도
안녕, 안녕
서울 역에서 KTX를 타고 부산으로 향한다
길에 흘릴까
서류가방 속에 봉인한 하얗게 날선,
공식적이고 효율적이고 예의바르게 잔인한 텍스트들, 얼굴들,
생산하면서도 난감한 활자들의 종착역은 어디에 있나
기차가 출발합니다
나는 가만히 앉았는데 세상은 뒤로 달려간다
백 투 더 퓨처 -
나의 과거는 누군가의 미래였다
프루스트에게 물어볼까
잃어버린 시간은 어떻게 찾느냐고
당신은 찾은 적이 있느냐고
찾으면 어떻게 되느냐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느라 잃어버린, 시간은 또 어떻게 찾느냐고
시간은 둥글어서 찾을수록 잃어버린다는 것을
당신을 알고 있었느냐고
기차가 정차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기차가 정차하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동대구와 밀양 사이에
전설처럼 숨겨진
아틀란티스 -
그 역에 가면,
시간을 구겨 주머니에 잠시 넣어둘 수 있습니다
진공관처럼 驛舍는 고요하고 생각은 흐르지 않습니다
잃어버린 간이역으로 넘나드는 포탈을 조심하세요
부산 역에서 KTX를 타고 서울로 향한다
밀양 역에 내려 시외버스를 타면 청도 역을 찾을 수 있다, 고
설레면서 주저하는 시간의 타성 아니 존재의 관성
그 곳을 스쳐 지날 때마다 긴장하는 기관사에게 귓속말을 건넨다
당신도 알고 계시는군요
가끔은,
청도 역에 내리고 싶다
플랫폼에 서서 둘러보면 비로소 나타나는 평범하고 비범한 無시간들
대문 이미지 by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