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하게 집밥을 특별하게 만드는 비법
어린 시절에는 밥상 위에 올린 초록잎들이 싫었다.
저마다의 냄새로 후각을 자극하는 반찬들이 가득해야 할 식탁에서 흐물거리는 초록 괴물들은 다른 먹거리들의 자리를 위협했다. 내 앞에 놓인 저 풋내나는 접시들만 치운다면 오로지 기름진 것들에 행복한 한 끼가 될 터였지만, 엄한 엄마 곁에서 나는 항상 골고루 반찬에 손을 뻗는 모습을 보여줘야만 했다.
내 남동생은 식탐이 강했지만 편식이 심했다. 특히나 익은 채소들은 손도 대지 않았다. 누나는 본보기를 보여야 하기에 동생이 남긴 나물들은 다 내 입속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기분나쁜 풀비린내가 참기름 냄새와 섞여 더욱 식욕을 감퇴시켰다.
결혼을 하고 나서 우리집 식탁에는 어떤 반찬을 올려야 할지 고민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신혼밥상에 약간은 환상을 가지고 있던터라 식재료를 사다보면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마트에서 두 손 가득 장을 보고 집에 와서 짐정리를 하는 데 문득 내 장바구니엔 채소가 가득했다.
눈과 입이 즐거운 밥상을 차리기 위해서 나름 고민한 결과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생각해낸 밥상에서 색감과 향기를 담당하는 재료들은 알록달록한 채소였다. 먹음직스러운 비주얼을 위해 당근, 감자, 양파며 파프리카는 필수였고 향긋한 냄새가 가득도는 식탁을 위해서 쑥갓, 미나리, 참나물, 냉이도 샀다.
깨닫지 못했던 나의 작은 변화는 실소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생각해보니 내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던 기름진 것들은 식탁 위에서 10/1도 안되는 보잘것없는 비율을 차지했다. 그 외에 주인공을 빛날 수 있게 도와주는 건 갖가지의 채소 반찬이었다.
식탁에 앉기만 하던 내가 도마 앞에 서서 비로소 나물에 정성을 쏟고 있다. 손맛을 요구하는 크고작은 노력들이 나물에 조물조물 묻어나며 감칠맛을 더하고 있다. 과정이 까다로울수록 창작자는 결과물에 더 애착이 가기 마련이다. 내가 무쳐낸 나물들이 밥상을 가득 채울 때마다 상이 더욱 만족스러워 보인다.
의식하지 않았던 나물들의 향을 오늘 하루 진지하게 음미했다. 씁쓸하면서도 달콤한 풋내들이 싱그럽다. 나물
반찬이 가득한 밥상이 완성되고 남편과 마주앉아 밥을 먹었다.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가 머릿 속에 그려진다. 마치 도시락을 싸서 소풍을 가듯 기분이 한층 들뜬다.
보잘 것 없다고 생각했던 나물이 가진 힘이다. 엄마의 사랑과 정성이 고기반찬이 아닌 나물반찬에 묻어나 있었음을, 우리집 식탁이 풍성한건 고기가 아닌 갖가지 나물반찬 때문이었음을 느낀다. 별 거 아닌 일상에서 갑자기 남모를 법칙을 발견한 것처럼 기분이 우쭐하다.
갑자기 햇빛 따사로운 봄이다. 우리 집 식탁에도 풀내음 가득히 봄을 맞이할 예정이다. 남편은 알지 모르겠다. 가짓 수 많게 늘어놓은 나물 반찬들은 아내의 사랑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