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넷맘 Apr 07. 2020

젊은 베르테르에게.

그럼에도 삶의 끈을 놓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이유


“장롱 위에 네 어머니 약 있다.”

그의 유언은 참으로 심플했다. 유언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갖다 붙이기도 민망할 정도로 그의 마지막 전화는 너무나도 일상적이고 허무한 것이었다. 평생 농사를 지어 오 남매를 공부시켰다. 복작거렸던 시골집에는 언제부턴가 늙은 노부부와 적막만이 남았다. 일 년에 두 번 명절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리며 그렇게 그들은 거칠어진 주름만큼이나 깊게 패인 세월의 쓸쓸함을 견뎠다. 가까스로 버티고 있었던 일상은 늙은 아내의 치매로 인해 피폐해졌다. 아내는 하루아침에 순백의 아기처럼 변해버렸고, 모든 기억을 잃고 삶의 의지를 상실했다. 매일이 지옥 같았다. 2년간 아내와 함께 요양원에 들어가 버텨도 보았다. 하지만 정신이 멀쩡했던 그에게 요양원은 감옥처럼 답답한 곳이었다. 결국 그곳을 나왔다. 그리고 고작 몇 개월 후 그는 태어나 평생을 보냈던 시골집 사랑방에서 조촐하게 생을 마감했다.      




“사인. 그라목손 중독”

나의 할아버지는 농약을 마셨다. 그라목손이라는, 지금은 시중에서 구할 수 없지만 당시 시골에서는 손쉽게 사용했던 농약의 한 종류였다. 회사에 제출하기 위해 떼었던 할아버지 사망진단서에는 생전 처음 보는 아주 생소한 약품이 적혀있었다. 그 단어를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받았던 충격이 여전히 가슴 한편에 강렬히 남아있다. 이후 엄마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의 마지막은 너무나도 쓸쓸하고 고독했고 가슴 아팠다.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서 일까 그 기억을 외면하고만 싶었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당시 시골에서 음독자살은 쉬쉬했지만 빈번하게 일어났던 일이라고 했다. 할아버지의 고향에서도 꽤나 많은 사람들이 같은 방법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자살은 소리 없이 전염되었다. 김 씨에서 시작되어 박 씨로 이어졌고, 최 씨와 이 씨도 그 뒤를 따랐다. 기침에 의해 쉽게 옮겨지는 감기처럼 자살이라는 단어의 무게도 참으로 가볍게 퍼져 나갔다. 누구나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갖고 있지만 죽음이라는 단어가 내 삶에는 침범하지 않을 것 같은 그 안전함이 깨지는 순간 모순적으로 죽음에 대해 초연해진다. 피폐하게 얼룩진 지금의 삶을 모두 놓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     




사실 그날 떠오른 건 할아버지가 아니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할아버지 발인 때 보았던 하얀 나비가 생각났다. 관을 넣고 흙을 채우기 전 잠시 쉬고 있을 때였다. 제법 쌀쌀한 날씨였는데 어디선가 하얀 나비가 나타나더니 할아버지 산소 주위를 꽤나 오랫동안 날아다녔다. 나비를 보며 할아버지가 아닐까라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입관식에서 보았던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마치 고운 하얀 나비 같았는데 할아버지가 나비가 되어 우리를 둘러보시고 떠나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나비처럼 할아버지도 현생의 업보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했다.     




아주 오래전 보았던 하얀 나비가 떠오른 건 다름 아닌 내가 죽음을 떠올렸다는 의미였다. 그것은 죽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보다는 나를 에워싼 모든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이 삶의 끈을 놓아버리고 싶은 생각이었다. 내 삶이 너무나도 버거워서, 나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가 여전히 나를 짓눌러서, 아들 넷 엄마라는 엄중한 자리가 내게는 아직도 버티기 힘든 자리라서, 힘들었다. 세쌍둥이를 낳고 버텨온 지난 4년의 독박 육아, 하루하루는 순탄치 않았고 지금의 삶보다 오히려 체력적으로 지친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목표가 있었다. 글을 쓰기 시작했고, 연이어 2권의 책을 출간했으며, 자신을 여전히 무언가 만들어 볼 수 있는 사람이라고 다독일 수 있었다. 하지만 삶은 나아지지 않았고 여전히 나의 하루는 끝날 듯이 끝나지 않는 지치고 고된 시간들이었다. 그럼에도 무언가 변화를 만들어보려고 시도한 뉴질랜드행, 갑자기 터진 코로나, 국경 폐쇄, 국가 록다운. 결국 나의 무모함은 덫이 되어 이렇게 나를 짓누르게 되었다.      




“하지 마! 하지 말라고!”

아이들에게 소리를 치다가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흘러내렸다. 가슴팍이 쉴 새 없이 요동치며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내내 두 시간을 울었다. 내 삶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언제로 돌아가면 바꿀 수 있을까. 도대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렇게 고통받으며 살아야 하는 것인가. 아이들을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하루가 이렇게나 피폐하고 지치는 일상이라면, 여전히 벗어날 수 없는 굴레라면, 이것이 이 삶에 주어진 나의 운명이라면, 더 이상 이 삶을 지속할 자신이 없다. 그 순간 삶이 그저 고통스럽게만 느껴졌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었다.      




“울지 마세요. 울지 마세요. 사랑하는 엄마, 울지 마세요.”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들이었다. 방구석에 앉아 울고있는 나를 작은 원형으로 감싸며 아이들은 하나가 되어 노래를 불렀다. 마치 여러겹의 꽃입으로 둘러싸인 한 송이의 꽃처럼 나는 아이들에게 포개어져 파묻혀버렸다. 까르르 새어나오는 아이들의 개구진 웃음소리, 거칠어진 나의 뺨을 고사리같은 손으로 부드럽게 감싸는 아이들 그리고 붉게 충혈된 엄마의 눈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동자. 그순간 나는 또 다시 깨닫는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 이 삶을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이유....





홀연히 나타나 내 가슴을 헤집어 놓았던 우울은 아주 천천히 삶에서 사라졌다. 아직도 아이들의 끝나지 않는 울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슴 한편이 꽉 막히는 듯한 통증을 느끼지만 나는 내게 주어진 엄마의 자리로 돌아와 또다시 하루를 버티려 한다.





“이틀 만에 또 … 유명 가수, 약물 투약 후 실신”

며칠 전, 한 유명가수의 약물 투약 사건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의 잘못된 행동을 두둔하려는 마음도, 평소 그의 팬도 아니었지만, 기사를 읽으며 참 마음이 아팠다.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한 건지 아닌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건 그가 모든 것을 놓았다는 것이다. 삶을 집어삼킬 듯한 우울감, 그리고 삶의 끈을 놓아버리고 싶은 강렬한 충동. 그러나 우울하지 않은 삶은 없다. 단지 빈도의 차이일 뿐 누구의 삶도 우울을 벗어날 수 없고, 외로움을 벗어버릴 수 없다. 행복으로만 가득한 삶은 없다. 그것은 오히려 비정상적인 것이다. 삶에는 우울과 행복, 슬픔과 불행이 공존하기 마련이니까.




어쩌면 삶이란 건 나의 할아버지가 그러했듯 허무하게 사라져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살아야만 한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지금 내가 느끼는 향기와 감각, 사유와 감정에 대한 감사함. 눈을 감으면 선히 그려지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미소와 부드러운 살결, 품으로 안았을 때 전해지는 따뜻한 온기와 포근한 냄새. 고된 하루를 끝내고 삼키는 시원한 맥주 한 잔까지. 그 일상의 소중함을, 삶의 단면들을 포기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그리고 이 한마디를 건네고 싶다.




“많이 힘들었구나. 기운 내. 그렇지만 넌 혼자가 아니야...”







매거진의 이전글 코로나가 내게 남긴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