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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넷맘 Jan 30. 2019

이제 알아요. 그날은 당신 잘못이 아니란 걸.

네 살 아이의 손가락이 잘려나가다.


아이에게는 콤플렉스가 있었다.

바로 오른쪽 네 번째 손가락.


짧고 퉁퉁한 손가락들 사이에서도 유난히도 못생긴 오른쪽 네 번째 손가락은 사실 왼쪽보다 5mm남짓 짧다. 아이는 늘 오른쪽 네 번째 손가락이 신경 쓰였다. 무심코 손가락을 쫙 펴고 있다가도 누군가가 손가락을 쳐다보기라도 하면 그 순간 집게벌레처럼 손가락을 웅크리곤 했다. 아이에게는 습관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손을 호주머니에 찔러 넣는 것이었다. 길을 걸을 때도 무언가를 바라볼 때도 잠시 서있을 때도 아이는 덩그러니 삐져나온 손을 어쩔 줄 몰라 호주머니에 쏘옥 넣고야 말았다.     


아이는 늘 부끄러웠다. 오른쪽 네 번째 손가락이.

아이는 늘 원망스러웠다. 오른쪽 네 번째 손가락이.     




아이는 네 살이었다. 그날은 외할머니의 생신이었다고 한다. 열다섯 평 남짓의 어느 남루한 빌라에 가족부터 가깝고도 먼 친척들이 모처럼만에 모여들었다. 정확히 몇 월이었는지 엄마에게 물어본 적은 없지만 추운 한기가 집안을 비집고 들어왔다고 하니 꽤 추웠던 어느 겨울이었던 것 같다.      


“기쁜 날이니 오늘만큼은 부딪혀봐야지!”


어른들은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에 얼큰하게 취해갔다. 아이들은 작은 방에 모여앉아 놀고 있었고, 비어가는 술병에 어른들은 건너편 구멍가게로 들락거리며 분주히 빈 잔을 채우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할머니의 먼 친척은 좁은 거실의 끄트머리 다시 말해 현관문 바로 앞에 가까스로 엉덩이를 내린 채 앉아 있었다. 그녀는 신경이 쓰였다. 수시로 열렸다 닫히는 현관문 사이로 스며드는 한기에 추위를 느꼈다. 그리고는 문이 열릴 때마다 그녀는 찌릿하게 문을 쳐다보았다.


들락날락 거리는 현관문에 관심이 있었던 건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이제 갓 네 살이 된 어린 아이도 쉴 새 없이 움직이는 현관문이 재미있었던 모양이었다. 아이는 어느새 작은 방에서 나와 사람들이 들락날락 거리는 현관문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거침없이 향했다.  

    

그래. 오늘 나의 장난감은 바로 너야. 현관문 너.     


수많은 사람들의 소음으로 아수라장이 된 집안 구석을 유유히 지나 아이는 현관문 뒤편에 섰다. 열리고 닫히고 열리고 닫히고 수없이 반복되는 재밌는 놀이에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현관문이 열리자 아이는 잽싸게 오른쪽 네 번째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아이는 즐거움에 볼을 씰룩거렸다.      


더는 못 봐주겠어.     


현관문이 또다시 열리자 그녀는 잠시 현관문을 찌릿하게 바라보더니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거칠게 현관문을 닫았다. 아이가 거기에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악!!!!!"


날카로운 아이의 비명소리가 온 집안에 울려 퍼졌다. 시끄러웠던 집안은 순식간에 고요를 찾았다. 거실 한편에 앉아있던 엄마가 비명을 지르며 뛰어나왔다. 현관문 사이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도저히 진정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것은 울음이 아니라 발악에 가까웠다. 아이의 손가락은 절단된 상태였다. 손가락의 끝마디가 으스러져 찾을 수조차 없었다.       


아이의 손가락은 작고 여렸다. 절단된 손가락은 도저히 봉합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고, 결국 병원에서는 봉합을 포기했다. 손가락뼈도 함께 잘려나간 터라 절단된 손가락의 회복이 중요했다. 상처부위를 제외하고 온몸을 붕대로 감은 채 어두컴컴한 산소통에 들어가 수개월간 재생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아이의 손은 나아지지 않았다. 손톱도 자라지 않았다. 의사는 유경식피술을 제안했다. 유경식피술이란 절단된 부위를 본인의 신체 부위에 덧대어 정상부위의 왕성한 세포증식능력을 빌어 손상부위의 세포와 신경 등을 더 빨리 재생시키는 치료방법인데, 쉽게 말해 어린아이의 배에 구멍을 뚫어 절단된 손가락을 그 안에 끼우고 있는 것이었다.     


"어린 아이인데, 그것도 여자 아이인데, 배에 구멍을 뚫는다니. 안됩니다. 절대로요."     


아빠는 아이를 들쳐 업고 집으로 돌아왔다. 수개월 동안 치료를 받았지만 손톱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어린 아이의 배에 구멍을 뚫을 수는 없다. 아빠는 쇠 조각을 용접하여 아픈 손가락을 보호할 수 있도록 손가락 케이스를 만들어 주었다. 한동안 아이는 그 케이스를 손가락에 끼우고 살아야했다.      


"여보! 나왔어! 나왔어! 손톱이야! 손톱이 나왔어!"     


어느 날 기적처럼 허연 손톱이 올라왔다. 척박한 대지에 푸릇한 새싹이 돋듯 부모에게 그것은 기적이었다. 아이에 대한 고마움, 미안함, 소중함이 뒤섞여 눈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아이에 대한 죄책감이 아주 조금은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짧고 납작한 오른쪽 네 번째 손가락을 볼 때마다, 그 사건 이후 단 한 번도 얼굴을 들이밀지 않았던 할머니의 먼 친척 이야기를 전해들을 때마다, 사실 나는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겨우 네 살짜리가 감당하기에 그 시간들은 고통스러웠고 공포에 휩싸였던 기억의 단면들이 두둥실 떠올라 나를 괴롭히기도 했다. 그날의 기억이 내가 가지고 있는 공포심에 얼마나 영향을 주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자라면서 특히 어둠에 대한 공포가 굉장히 큰 편이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혼자 불을 끄고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어둠을 무서워했는데 아마도 어린 시절 암흑 같았던 산소통 안에서 수개월 동안 재생치료를 받으면서 생긴 트라우마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엄마가 미웠다. 가끔 못난 손가락을 바라볼 때면 나도 모르게 증오같은 감정이 솟아오르곤 했다.


엄마는 왜 나를 보지 않았을까.

왜 아이가 없어진 걸 몰랐을까.

원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은 엄마뿐이었다.     




얼마 전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집안이 섬뜩할 정도로 고요한 것을 느꼈다. 육아를 하면서 가장 무서운 순간은 바로 고요다. 폭풍전야라고 했던가, 육아에 있어서 고요함은 바로 그런 것이다. 무언가가 일어나기 직전의 이상한 고요함, 그래서 나는 집안 공기를 빽빽한 밀도로 가득 메우는 적막함이 무섭다. 그리고 무언가가 일어날 것만 같은 이상한 기분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부랴부랴 아이들을 찾았다. 이상하다. 방에도 거실에도 없다.

그때 부엌 쪽에서 히히 웃음이 새어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발길을 돌려 부엌으로 향하니 드럼 세탁기 안에 한 아이가 들어가 있고 나머지 두 아이는 그것을 보고 웃고 있다. 갑자기 머리가 쭈뼛쭈뼛 서는 것만 같았다. 급하게 아이를 꺼내 품에 안았다. 울음을 그친 아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얗게 질려버린 엄마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다. 분명히 세탁기 문을 닫았는데 도대체 아이들이 어떻게 문을 연걸까. 왜 이번에는 세탁기 콘센트를 뽑아두지 않았을까. 아이들이 세탁기의 버튼을 눌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죄책감이 온몸을 휘감는다. 가슴이 먹먹하게 아프다.

뜨거운 것이 울컥하게 차올라 울대를 감싼다.     



불현 듯 그날이 떠오른다. 그날 아마도 엄마는 그랬을 것이다. 그날 아마도 엄마는 울었을 것이고, 심각하게 스스로를 자책했을 것이며,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을 것이다. 그날이 그려진다. 잘려나간 어린 아이의 손을 쥐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엄마의 표정이, 아이를 업고 맨발로 뛰어나갔던 엄마의 다급함이, 어두컴컴한 산소통에 나란히 누워 아이의 손을 꼬옥 잡아주었던 엄마의 따스한 손이, 마침내 허옇게 삐져나온 손톱을 보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던 엄마의 두 눈이.


아직도 엄마는 내 손가락을 쓰다듬으며 그때 이야기를 한다. 슬픈 눈으로, 손가락을 어루만지며 쓸쓸하게 이야기하고는 한다. 늦었지만 엄마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날은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그냥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사고였다고,

그리고 이제 나는 아무렇지 않다고.

꼭 이야기해주고 싶다.     











올해 세쌍둥이는 네 살이 되었다. 개구쟁이 아이들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치고 박고 싸우고 만진다. 앞으로 아들 넷을 키우며 이보다 더한 일들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끔찍한 생각이 가끔씩 스친다. 오늘도 나는 갑작스럽게 온몸을 휘감는 고요함이 치가 떨리게 무섭다.

쉬도 때도 없이 높은 곳에 우르르 올라가는 아이들,                              겁이 너무 없어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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