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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승호 Jun 03. 2024

인조의 굴욕

단편 소설

갑자기 등뒤 쪽이 시끌벅적하다.

뒤를 돌아보니

십여 명의 등산객들이

산 아래를 가리키며

와! 롯데타워 123이다.

저기는 무역센터고

 여기가 타워팰리스?

저 가운데는 테헤란로?

좌측은 강남대로 구먼.

모두들 아는

도로와 지역을 가리키며

떠드는 와중에


 백발에 중후한 멋을 풍기는

노 신사가 조용한 말투로

모두 내 발아래 있구먼 하면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그래 당신이 일등이다.

일등은 무언가 달라.

당신 말이 옳아!


자세를 바로 하고

제일 높다는 롯데 타워를

다시 한번 내려다보면서

 혼자 중얼거려 본다.


역시 일등이 멋은 있구먼?

그러나

영원할 수 없을 거야?

곧 더 높은 건물이

도전장을 내밀테니까?

얼마나 쫓기는 심정이겠어?

머지않아 2등이 될 수도 있어?

일등이다고 너무 폼 재지 마!

2등 빌딩이 있어서

너도 위대해 보이는 거야.

허허벌판에 혼자 있으면

휑하니 얼마나 쓸쓸하겠어?

그래도 2등 3등들이 주변에 있으면서

감싸주니까 돋보이는 거지.

고마움을 알아야 돼.

자식!


 서열을 매기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세상의 삶이 서열화되어 있으니

사회 계급이 존재하고

일등 계급에 등극하고 싶어서

모두들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내려다본다.


일등이 되기 위해

곧 재건축이 시작된다.

일등 아파트를 위해

모든 사람들이 잠시 이사를 간다.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일등 아파트로 다시 오지 못한다.


함량 미달이다.

나는 2등이다.


일등에 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아들은 대출을 받아 분담금을

마련하여 돌아오자 하고

딸은 연세도 있고 하니 빚 없이

편하게 여생을 보내라는 입장이다.

둘 다 맞는 말이다.


 늘 2등이었다고

스스로 위로를 해 본다.


떠들던 사람들이 모두 내려가고

다시 정상이 조용해질 무렵.


예비군 복을 입은 선두그룹이

총을 메고 정상을 지나

구룡산 등산로 길로 접어든다.


훈련이 힘이 드는지

서로들 아무 말 없이

앞사람 하체 쪽만 보고

산악행군을 한다.


 군에서도 2등 인생이었다.

논산 훈련소에서

사병 훈련을 받기 직전에

하사관 학교로 차출되어

6개월 교육을 마치고

단기 하사가 되었다.


하사는 장교한테 치이고

병들한테도 치이는

힘없는 중간 계급이었다.

그때는 그랬다.


선두가 정상을

지난 지 10분 후쯤에야

후미가 지나간다.

꽤 많은 예비군 병력이

훈련에 참가하고 있는 것 같다.


휴게의자에서 일어나

남쪽 기슭 헌인릉 맞은편에 있는

 내곡동 예비군 훈련장을 내려다본다.


젊었을 때 예비군 훈련받던 곳이다.

옛 추억에 잠시 젖어 본다.

같이 훈련받던 배우가 생각난다.

만년 조연 배우였는데

작년 봄에 지병으로 돌아가셨다는

기사를 포털 사이트에서 본 것 같다.

배려가 몸에 배어있는 분이었는데~

그래서 조연 전문 배우?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고 하니

 이미 다른 사람이 앉아있다.


일등자리를 내어 주어잖아?

내 주제에 일등자리라니?


  2등 휴게의자로 옮긴다.

남한산성이 보인다.


인조의 굴욕!


  어쩜 나도 인조처럼 살지 않았을까?


 그래도 인조는 궁으로 다시 돌아갔다.


나는 일등 아파트로 돌아가지 못한다.


인조는 그때 백성들 생각이나 했을까?

백성들은 인조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인조가 평상시 일등 정사만 했어도

굴욕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나도 조금 더 열심히 살았으면

아들 딸에게 떳떳한

아버지가 되었을 텐데?


이조판서"최명길"과 예조판서"김상헌"

둘 중 누구의 말이 정답이었을까?

두 분 다 충정 어린 고언이었을 것이다.


인조와 닮은 꼴 같아 씁쓸하다.

아들과 딸 중

인조라면 누구의 말을 들을까?


정상에 머무른 시간이 꽤 지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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