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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썹달 Mar 26. 2021

나 다시 돌아갈래

미용실 이야기

다니고 있는 미용실 실장님을 만난 건 2년 전이었다. 쇼핑몰 구경하다 즉흥적으로 들어갔던 미용실의 실장님이 남편 커트를 정말 마음에 들게 잘해주어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우리 머리는 그분에게 맡겨져 왔다. 깔끔한 기술과 실력, 군더더기 없는 서비스, 상세한 머리손질법 안내. 그 손길을 거친 머리는 시간이 나도 지저분해지지 않고 혼자서도 손질이 쉬워서 참 좋았다.


"내내 짧은 머리만 하셨어요? 긴 머리도 잘 어울리실 것 같은데."

"저는 여자분들이 가정 꾸리고 아이 키우면서 귀찮고 불편하다고 머리 짧게 자르는 게 괜히 속상하더라고요."

"고객님만 괜찮으시다면 제가 머리 지겹지 않게 예쁘게 기르시도록 도와드릴게요. 생각보다 금방 기를 수 있어요."


여기저기 미용실을 유랑하며 10년간 고수했던 내 숏컷 스타일은 그분으로 인해 어깨너머 긴 머리로 안착되었다. 전에도 여러 번 길러보려 했지만 짧은 인내심과 직장 스트레스를 머리에 푸는 습관 때문에 어깨 근처에도 닿지 못하고 다시 귀 위로 올라가버리곤 했다. 30대를 그렇게 정처 없이 숏컷으로 지내다 그마저도 지겨워질 때쯤 실장님을 만났고 어딘지 믿음이 가는 그분의 몇 마디가 나로 하여금 그래, 머리를 길어보자 다시 마음먹게 해 주었다.


기르는 동안 한 번씩 다시 짧게 자르고 싶은 충동이 일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아니에요~ 대신 지난번과 조금 다른 느낌으로 다듬어드릴게요." 하며 묶을 수 있는 길이를 마지노선으로 두고 옆머리를 내거나 펌을 하는 식으로 손질해주었고, 덕분에 나는 머리를 잘 길러서 숏컷보다 훨씬 부드러운 분위기를 얻게 되었다.




고맙고 좋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아무리 기르는 중일지라도 하고 싶은 헤어스타일이 있을 수 있고, 유행하는 머리도 한 번쯤 시도해보고 싶을 수 있는데 원하는 대로 잘해주지 않았다. 전문가적 시각에서 어울리지 않거나 단점이 더 부각된다는 것이 이유였지만, 그만의 고집스러움 앞에 살짝 서운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그분이 미용실을 옮기면서 손님이 많은 건지 손님을 적게 받는 건지 원하는 날짜와 시간에 예약이 잘 되지 않았다.


마냥 기르기만 한지 6개월, 날이 따뜻해지니 머릴 다듬고 싶어 졌다.

미용실에 갈 생각 하니 오래 다니기도 했고, 예약도 잘 안되고, 멀기도 하고(차로 30분), 또 비슷하게 해 줄 것 같다. 이래저래 다른 곳으로 눈 돌릴 이유가 머릿속에 줄지었다. 결국 나는 다니던 샵을 일탈하여 집 근처에서 머리를 하게 되었고... 보란 듯이 망했다.  


찾아간 곳은 예상보다 훨씬 작았고, 이미 예약 손님이 너무 많았다. 머리만 잘한다면 괜찮다고 속으로 되뇌었지만, 불길한 예감대로 샴푸도 없이 분무기로 물기 조금 줘가며 거의 마른 머리를 빗어 커트해주었다. 그리고 가벼운 드라이로 끝. 모발 상태를 체크하고 머리칼에 맞는 세심한 손질은 언감생심이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겠지. 미용실은 많으니까 다음엔 다른 곳을 가볼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봤지만, 아무래도 집 가까운 곳에서 긴말 필요 없는 그런 실력자를 만나기는 힘들 것 같았다. 이 파트만큼은 구관이 명관이라는 걸 거울 속 내 모습에서 알 수 있었다. 지금 내 머리는 묶일 정도의 중단발인데 라인이 깔끔하지 않고 잘 뻗치며 위는 볼륨감이 별로 없고 아래가 뜨는 상황이다. 하는 수 없이 출근 준비에 드라이 시간이 추가되었다. 뻗침을 막으려 드라이를 하니 옛날 단발 스타일이 되어 몽실이 같기도 하고 가끔 간난이도 왔다 가는 것 같다.


늘 비슷하다고 느꼈던 스타일이 내 머리칼에서 가장 쉽고 보기에도 게 관리할 수 있는 스타일이었음을 깨달았다. 쉽게 뻗치는 반곱슬, 머리숱의 분포나 빈약한 볼륨감, 드라이할 시간이 없는 형편까지 감안한 스킬로 여태껏 내 머리칼이 편하고 안정적이었다는 것을. 마음 같아선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실장님을 찾아가고 싶지만 조금은 길러야 케어가 수월할 것 같아서 한 달 후에 가려한다. 이제 정말로 한눈 팔지 않을 테다.




*메인사진: Unsplash by Guilherme Pet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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