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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어떤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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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썹달 Nov 03. 2021

다 쓴 볼펜 자루

10월의 마지막 날에


저물어가는 10월처럼, 애정 하던 내 볼펜도 제 할 일을 다했다.

문구 욕심이 많아서 늘 이것저것 섞어 쓰느라 잉크가 바닥날 때까지 썼던 펜이 없었는데, 오늘 아침 쓰는 동안 잉크색이 흐려지며 수명을 다 하고 있는 볼펜 자루에 기분이 묘해졌다.


이 펜으로 새벽마다 일기를 쓰곤 했다. 오늘처럼 to do list를 써 내려갈 때도 늘 함께였다. 부드럽게 잘 써져서 못난이 글씨가 그나마 이 펜을 쥐고 썼을 때 봐줄 만했다. 손으로 계속 뭔가 쓰게 해 주었던 고마운 펜이다.


같은 제품 또 사면되는데, 고작 평범한 펜 하나 다 썼을 뿐인데, 아득해지는 글씨를 따라 작은 감동이 일었다. 새벽마다, 힘들 때마다 이 볼펜을 쥐고 꾹꾹 노트를 채워가며 끄적이던 내 모습이 필름처럼 스치며 나름 열심히 해 왔음을 일깨워주었다. 한 권 꽉 채워 쓴 적 없던 다이어리 노트도 올해는 볼펜 자루가 소진된 만큼 거의 다 채워져 가고 있다.


올해 막바지를 향해 가는데 벌써부터 새로운 기운이 얻어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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