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눈썹달 Jun 01. 2022

상상 드론 띄우기

3월부터 서서히, 4월부터 급속히 업무가 바빠졌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회사도, 일상도 좀 더 활기를 찾은 모습이다. 2년 넘게 중단되었던 해외출장 문의도 많아지고 실제 다녀오는 직원들도 늘어나면서 내 업무량도 늘고 있다. 높으신 분의 출장까지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라 긴장의 연속이다. 회사는 늘 그렇듯 어느 날은 조용하고 어느 날은 호통이 난무하고 또 어느 날은 총알을 주고받는 전쟁터다. 그 안에서 다들 각자 업무를 하고 있지만 종종 앉아있는 모두가 오리처럼 보일 때도 있다. 수면 위는 무심한 듯 보여도 마음은 그 아래 분주히 움직이는 발처럼 시끄럽지 않을까 싶어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데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을 때, 어떤 돌발 사항으로 깨지는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정말 멍해진다. 바쁜 와중에 모여 회의하는 내용이 다소 황당하거나 납득되지 않을 때, 작은 일에 흐트러진 심기를 담아 부릉부릉 하는 상급자... 뭔가 착착 정리되지 않고 끄트머리들이 겹친 채 쌓여가는 업무들과 '나는 누구, 여긴 어디'가 되어버리는 순간들. 그럴 때 의식의 흐름이 잘못되면 이게 뭐 하고 있는 건가 싶고, 비관 모드가 되면서 일 자체를 부정하고 싶어 진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모두가 퇴근한 밤 시간까지 일하고 마지막으로 소등하며 퇴근하는 나를 볼 때면 나만 왜 이렇게 일하고 있지? 바본가 하는 생각에 발길이 무거워진다.


그렇게 숨 막히고 쫓기는 듯한 일상 속에서 문득 나 자신이 초라해지려 할 때, 하루가 힘들어지려 할 때 언제부턴가 쓰게 된 방법이 하나 있다. 어떤 물건도, 돈도, 별도의 시간도 필요 없다. 그냥 상상만 하면 되는 아주 간단하고 효과적인 일은 바로,


내 하루에 가상의 드론을 띄워놓는 것


머릿속으로 내 주변에 드론을 하나 띄워놓고 오늘의 나를 제삼자의 시각으로 멀리서 한 번씩 바라보는 것이다. 하루를 살고 있는 나는 당장 내가 해야 할 일과 내게 닥친 상황에 빠져있다. 뭔가 계속 확인하고 보고하고 처리해야 하는 업무의 반복. 주변은 시끄럽고, 예기치 못한 업무지시가 떨어지거나 돌발상황이 발생되면 휘말려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간다. 그 상황에 매몰되어 힘들 때, 상상 속 드론을 통해 나를 한 층, 두 층 떨어진 거리에서 관찰 예능 보듯 그려본다. 지금 내 모습을 멀리서 카메라로 본다면 어떤 모습일까.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르겠지만 제삼자의 시선으로 나를 보니 실제 내가 겪고 있는 것보다 상황이 가벼워짐을 느꼈다. 드라마보다는 시트콤에 가까운 일들이 많이 벌어져서 인지 멀리서 전체를 바라보면 나를 포함한 주변인들 모두 시트콤 속 등장인물 같다. 서로 너무 다른 모습으로 어쩌다 한 공간에 모여 먹고살자고 얽히고설키며 희로애락을 겪는 캐릭터들. 나도 그들 중 하나, 바쁜 현대 사회에서 존버 하는 직장인일 뿐이다. 힘들고 긴장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시트콤 찍고 있는 듯 한 상상은 피식 웃음이 나게 만든다. 그 웃음은 순간의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몸을 이완시킨다. 실제 상황에서 한 발짝 벗어나 이성을 찾고 조금은 차분하게 마음을 다잡도록 도와준다. 단순하지만 짧은 순간 마인드 컨트롤에 효과적이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라는 찰리 채플린의 명언이 있다. 되뇔수록 명언이 아닐 수 없다. 이 말 덕분에 내 하루를 멀리서 바라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내 인생은 가까이서만 보게 되어 힘들 때가 많고, 남의 인생은 멀리서만 보게 되니 좋아 보일 때가 많다. 종종 내 인생도 남의 인생 보듯 스스로 멀리서 볼 필요가 있다. 남과의 비교를 내려놓고 단독으로 내 삶을 내가 멀리서 관망하고 조망해보자.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Photo by petr-sevcovic_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혼잣말의 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