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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썹달 Aug 19. 2022

도로에서 차가 멈췄던 날

회사가 2킬로미터 앞에 있었다. 곧 좌회전받고 직진하면 도착하는데 신호 대기하느라 브레이크 밟고 있다가 다시 액셀을 밟는 순간 계기판 경고 알림에 일제히 불이 들어오더니 맥 풀려 주저 않는 사람처럼 엔진이 꺼져버렸다. 설마.. 설마.... 안돼.. 월요일 아침이라고.... 게다가 여기는 1차선을 2차선처럼 사용하는 좁은 도로야... 조금만 힘내서 나 좀 살려주라......


방심과 부주의의 합작품으로 월요일 아침 바쁜 도로 위에 차가 멈춰버렸다. 주유를 해야 한다는 걸 전날에 인지했지만 미처 넣지 못했고, 이 날 아침 올림픽대로를 탄 후 주유 경고등이 울렸을 때에야 기름을 넣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월요일 지옥 출근길. 이미 출구는 없었고 앞만 보며 가야 했다. 연료 경고등이 들어와도 문제없이 50여 킬로쯤 갔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별일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랬으니 에어컨 세게 틀고 음악까지 들어가며 연료를 소비했지. 길 위에서 차가 서는 일은 남에게나 있는 일인 듯 말이다.


바닥까지 연료를 소진한 애마는 아무리 시동을 걸어봐도 정신이 돌아오지 않았고 처음 겪는 일에 당황한 내 멘털도 안드로메다를 향하는 판이었다. 수많은 운전자들의 바쁜 길을 막으며 공분의 대상이 되는... 그 설마 했던 일이 현실로 닥친 순간, 당혹감에 얼굴이 달아오르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서둘러 비상등을 켜고 긴급 출동을 찾아 긴급주유로 서비스 접수를 했다. 접수받은 기사분은 내 위치를 대략 파악하고 유종을 확인한 후 기름을 사서 가야 하니 시간이 좀 걸린다고 하셨다. 시간이... 걸린다고..... 



깜빡거리고 서 있는 내 차 뒤로 좌회전을 하려는 차들이 줄을 섰다. 내 앞에 차가 있는 줄 알고 멈춰서 대기하는 것이다. 아닌데... 나는 갈 수 없는 차인데... 민망하고 죄송하지만 알려줘야 했다... 내 뒤에 서면 안 된다고. 


직진, 좌회전 신호가 될 때마다 차에서 내려 뒤에 오는 차량들에게 옆으로 이동해서 가시라고 손짓을 했다. 팔이 떨어져라 연신 수신호를 보내고 종종 미안함에 고개를 떨구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했다. 창피하다고 차에만 앉아 있기엔 너무 가시방석 같았고 이왕 이렇게 길을 막게 된 거 뻔뻔할지라도 '어서 내 뒤를 피해서 가시오.'라는 신호를 최대한 보내는 게 팔은 아파도 훨씬 마음이 편했다. 그날따라 호피무늬였던 상의가 눈에 띄었을 테지만 마스크를 한껏 올려 쓸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출동기사분은 애매한 위치에 있는 나를 찾느라 수차례 연락을 주셨고 접수한 지 40여 분 만에 도착하셨다. 찾기 어렵기도 했고 기름도 사서 온다 했었는데 월요일 아침이라 차도 많았을 터라 충분히 이해되었다. 그저 와준 것만 해도 고마웠다. 긴급주유 3리터가 기본인데 얼마를 해야 할지 몰라서 기본량만 요청했더니 정말 아슬아슬하게 시동이 걸렸다. 기사분은 뒤차가 많으니 얼른 출발하라고 하시며 가까운 주유소에 가서 바로 추가 주유하라고 말씀하셨다. 겨우 걸린 시동에 개비스콘 먹은 듯 타는 가슴을 쓸어내렸고, 기사분께 감사인사를 전하며 이동했다. 


앞으로 이런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혹시라도 차에 주유 경고등이 뜨면 반드시 모든 에너지 소모원을 줄여서 운전하고, 긴급주유를 해야 할 때 유량은 기본보다 좀 더 여유 있게 요청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제대로 혼이 났으니 당연히 유량은 미리미리 체크할 것이다.

   

멈춰 있었던 도로를 벗어나 가까운 곳에서 기름 꽉꽉 채워 넣고 출근시간보다 한 시간 늦게 회사에 도착했다. 안 그래도 싫은 월요일인데, 정신없는 출근길을 겪다 보니 사무실에 와서는 내가 맥이 풀려버렸다. 그날의 에너지를 다 아침에 다 써버린 기분이었달까. 정신을 가다듬고 PC 켜며 업무를 시작하는데 다른 팀 동료로부터 메시지가 들어왔다. 


"차장님 혹시 오늘 차에 문제 있었어요? oo길에서 비상등 켜고 계시던데..."


하아.... 창피해. 모른 척해주시면 더 좋은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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