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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썹달 Nov 20. 2022

격리 생각 기록

뒤늦게(?) 코로나에 걸렸다. 주변 동료들 하나둘 대부분 걸리고, 남편이 걸렸을 때도 나는 걸리지 않아서 슈퍼 면역자인가 나름 자부심이 자리 잡을 무렵. 환절기 감기처럼 익숙하게 찾아와 양성 딱지를 붙이더니 나를 방에 가뒀다. 격리 3일째가 지나가고 있다.


다행히 나는 아주 꼼짝 못 할 정도는 아니지만, 기침 가래와 뭉근한 두통, 몸살 근육통이 있으니 평소처럼 일상생활을 하기엔 무리인 상태다. 금요일 오후부터 지금 일요일 저녁까지 방에서 식사하고 약 먹고 누워있다 자기를 반복하고 있다. 착실하게 먹는 것에 비해 움직임이 적어서 얼굴이 붓고 손발도 붓는 느낌이다. 여태껏 살면서 정말 많이 부었구나 싶었던 때가 출산 직후였는데, 그다음으로 부었다고 기억될 순간이 지금일 것 같다. 


남편이 코로나에 걸려 방에 있었을 때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으니 그 시간들을 알차게 보내길 속으로 바랬었는데, 막상 내가 걸리고 보니 그 시간들은 몸 아프고 힘들어서 아무 의욕도 나지 않는 시간임을 알게 되었다. 요리 못하는 내게 당시 수육을 부탁했던 그의 요구가 살짝 짜증스러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번에 나는 단 게 당겼고 초코과자 중 '빈츠'가 유난히 먹고 싶어 남편에게 밖에 나가게 되면 빈츠를 사달라고 했다. 그는 '빈츠'가 없어서 초코가 발라진 '다이제 씬'을 사 왔고, 나는 그에게 '난 빈츠가 먹고 싶었다'며 곱씹었다. 남편은 내게 어떻게든 빈츠를 구해왔어야 했던 거구나 하며 미안하다고 했다. 순간 코로나 환자가 벼슬인양 입덧 코스프레를 시전 한 내가 나조차 어이없었다. 


수육 하기 짜증스러워했던 그때의 나와 빈츠였어야 했다고 말하는 지금의 나를 통해 내 고약한 구석을 본다. 이래서 인간에겐 역지사지가 필요한 것이다. 어쨌든 아프고 힘들 때 의지할 곳은 가족뿐이다. 가장 조심해야 할 고령자임에도 매 끼 식사 챙겨주시는 시어머니. 주말 내내 나와 가족들 신경 쓰느라 바쁜 남편, 감기에 걸렸지만 다행히 코로나가 아닌 딸과 별 이상 없는 아들. 모두 고맙고 감사하다.

 


먹고 자기만 해도 하루가 이렇게 빨리 가는구나 싶다. 중간중간 책을 읽고 있는데, 그 마저도 읽다가 병든 닭처럼 꾸벅 조는 내 모습에 적응이 안 된다. 코로나에 걸리면 맛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오늘 아침까지 잘 먹었는데 조금 전 늘 맛있게 먹던 커피 맛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맛에 5단계가 있다면 1-2단계에서 그 맛이 끝나버리는 기분이랄까. 아는 맛이 느껴지지 않다니 묘하게 기분이 별로다. 


격리 해제될 때까지는 재택근무여서 일을 해야 한다. 의욕이 저하되어 일도 하기 싫다 사실은. 그러나 투덜거려봤자 소용없다. 밥벌이는 계속되어야 한다. 내 소중한 일자리 감사하게 생각하고 열심히 살자. 나의 빈자리를 메워주고 있는 동료들이 있고, 회복 잘하고 컨디션 잘 챙기라고 격려해주는 분들도 있으니 나야말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잘해야지.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고 그렇게 점차 일상으로 돌아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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