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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어떤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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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썹달 Jan 12. 2023

우연히 아이를 만난 순간

퇴근 후 집에 거의 도착해갈 즈음, 길에서 첫째 아이를 우연히 마주쳤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두 달간 긴 방학이 시작되어 요즘 몸과 마음이 매우 편안한 상태로 느지막이 피시방에 가는 길일터였다. 작고 마른 녀석이 헤드폰을 끼고 걸어오다 손 흔드는 나를 발견하고 씩 웃는다.


집에서는 언제 이리 컸지 하며 다 큰 듯 느껴지던 아이가 밖에서 보니 작고 어린 학생이다. 아이가 잘 때 나와서 일하고 귀가할 때 본 것이니 하루 중 아이를 처음 본 순간이다. 뜻하지 않게 길에서 만나서일까 더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반가움에 머리를 쓰다듬는 내 손길 아래 말간 눈을 하고 나를 보는 녀석. 한 달 전 컴퓨터 사용 문제로 전쟁을 치렀던 아이는 온데간데없다. 저도 우연히 만난 엄마가 반가운지 슬며시 손 내밀어 내 손을 살짝 잡고 살랑살랑 흔든다. 고양이를 키우지 않지만 키운다면 이 녀석 같은 느낌 아닐까? 마음이 괜스레 포근하고 말캉해졌다.


그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이에 대한 염려도, 나의 고단했던 하루도... 다 없었다. 늘 가슴속에 소망하는 것 하나, 그저 오늘 하루 모두 무탈하기를. 그 소망을 마주할 거라 믿고 열심히 하루를 살았다. 각자의 자리에서 잘 지내고 다시 만날 수 있으면 그것으로 된 거였다.


하루를 살다 보면 무엇을 위해 지지고 볶고 정신없이 사는가 싶게 만드는 순간들이 다. 그 순간은 따뜻할 수도, 때론 차가울 수도 있다. 어떤 회의감에 사로잡혀 차가워지는 순간이 더 많을지 모르지만, 그럴수록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되새겨봐야겠다. 그것을 깨닫게 해주는 순간을 한번 더 생각해 보는 것. 이제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 오늘 나를 잠시라도 따뜻하게 했던 순간떠올려 보는 루틴을 추가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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