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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썹달 Mar 23. 2024

우리는 지금 아름다운 날들을 살고 있는 거야

국가검진으로 유방 엑스레이를 찍은 결과로 추가 검사 소견이 있어서, 한 산부인과 내 유방외과 초음파 검사를 대기하고 있었다.


뱃속 아기, 갓 태어난 아기, 이제 막 아빠 엄마, 혹은 조부모가 된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에서 참 오랜만에 갓난아기의 울음소리를 가까이서 크게 들었다.


사람인 듯 고양이인 듯 응애인 듯 그릉인 듯

엄마의 양팔에 반이나 찰까 싶은 만큼 작은 갓난아기가 엄마에게 안긴 채 내 앞을 지나쳐간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정수리에서 회오리쳐 나온 까만 머리칼이 꽤 풍성하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아기의 울음소리.


이제 고등학생, 중학생이 되어버린 나의 아이들도 저렇게 여리하고 본능의 울음소리를 내던 아기들이었는데.



엊그제 같다고 하기에는 꽤 바래진 기억이 많지만 내 아이들의 저리 어렸던 시절이 잠시 스쳐간다. 그리고 그 시절의 내 모습도 떠오른다. 


나도 저렇게 조심스러웠더랬지. 

몸이 변하고 배 속에 아기가 자라는 동안 책도 읽고 많이 찾아보며 엄마가 될 준비를 나름 했지만 아기가 세상 밖으로 나오니 다 소용없었다. 읽고 보는 것과 현실은 달랐고 내 아이는 또 달랐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맨날 허둥거리고 버둥거렸던 나날들이었다. 지금도 난 아이들을 잘 키우는 엄마는 아니다. 엄마는 쉬운 날이 없다. 


아이들이 다 커서 손 갈 게 없다고, 그래서 요즘은 정말 몸이 편해졌다는 생각을 주로 했었다. 그런데 갓난아기를 안고 가는 엄마와 그 아기의 선명한 울음소리를 들으니 알 수 없는 감정에 코끝이 찡해져 왔다. 


불현듯 오래 전의 우리, 여리디 여렸던 아이들과 젊디 젊었던 우리 부부... 좌충우돌 알콩달콩 네 식구의 그 어렸던 시절이 애틋하고 몹시 그리워졌다. 그래, 그리움이었다. 



되돌릴 수 없게 감겨버린 필름처럼 절대 다시 느껴볼 수 없는 그 시절이 참 좋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막 부모와 아이로 새로운 가족생활을 시작하는 이들이 예뻤고 그들을 보며 우리도 그렇게 아름다운 시절을 지나왔음을 깨닫는다.


여전히 지금을 사느라 바쁘고 힘들지만 이 시절도 나중에 아름다웠다고 회상하게 되겠지. 요즘 이런저런 걱정들로 마음이 좀 무거웠는데, 이 또한 훗날 아름다울 거라 생각하니 기분이 조금 나아진다. 우리는 지금 아름다운 날들을 살고 있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사진: Unsplash의 Esteban Cas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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