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일전에 연재했던 글처럼 장거리 출퇴근자로 일주일에 4~5일은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바쁜 걸음을 재촉하며 1시간 반 정도의 출근길에 나서죠.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열심히 걸어 나가 열차를 타고 김포공항역에 도착해 다시 9호선 급행을 타고 석촌역까지 가는 나름 긴 여정이랍니다.
전에는 앉아서 가기 위해 자리가 찬 열차를 보내고 다음 열차를 탔었는데, 언젠가부터 자리 때문에 시간을 그렇게 보내는 게 효율적이지 않다고 느껴져서 무조건 역에 도착했을 때 와 있거나 바로 오는 열차를 그냥 탑니다. 자리야 앉으면 좋지만 못 앉아도 까짓 거 1시간, 가방 올려두고 책 읽거나 유튜브 들으면서 가면 금방 가니까요. 중간에 자리가 날 때도 있고요.
하지만 사람인지라 1시간을 계속 서서 가게 되면 몸이 힘들긴 합니다. 허리가 아파오고 다리도 뻐근해져요. 내리기 2~3 정거장쯤 전부터는 딱 한 정거장만 잠깐 앉으면 좋겠다 싶어지고 말이죠.
진짜 운이 없는 날에는 야속하게도 제 앞사람만 빼고 양 옆 사람들만 몇 차례 바뀌기도 하더군요. '난 괜찮다, 어차피 서서 갈 생각이었으니까 괜찮다.' 해도 어째 그런 상황에선 허리, 다리가 더 아픈 것 같기도 하고, 잠깐 엉덩이 붙일 딱 한 정거장이 그렇게 아쉬워질 수가 없어요.
반면 어쩌다 연속으로 운이 좋아서 어제와 오늘, 출근과 퇴근 모두 자리에 앉게 되면 그렇게 감사하더라고요. 그럼 1시간을 쭉 앉아서 편하게 책 읽다, 영상보다, 졸다... 그렇게 갑니다.
어느 날은 본의 아니게 제가 제 앞의 사람에게 야속한 존재가 되기도 했어요. 앉아있는 동안 제 양 옆에 사람들이 계속 바뀌는 겁니다. 왠지 민망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하염없이 서서 가기도 했으니 제 앞사람도 힘들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제가 힘들었던 것처럼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겠지요...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어차피 서서 갈 생각으로 탔지만 자리에 앉게 되었다. 5분도 앉지 못할 수 있는데 30분 정도 앉았으면 이미 감사하다. 남은 30분은 내 앞사람을 앉게 하고 내가 서서 가는 게 좋지 않을까?
그래서 30분쯤 지났을 때 내릴 역이 아니었지만 그냥 일어났고 제 앞사람이 그 자리에 앉았습니다. 제가 그 앞에 다시 서있으면 좀 의아해할 것 같아서 다른 곳으로 옮겨서 서서 갔어요. 뭔가 기분이 좋더군요. 나 혼자 한 양보인데도, 누가 알아주는 게 아닌데도, 그냥 이런 제 생각과 행동이 좀 괜찮게 느껴졌어요. 모두가 바쁘고 힘든 팍팍한 출근길에 좋은 마음을 나눈 것 같아 스스로 살짝 뿌듯했답니다.
이런 식이라면 생각보다 나눌 수 있는 것이 많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따뜻한 마음, 다정과 배려. 이런 게 다 나눔인 것 같아요. 문을 잡아주는 것, 엘리베이터를 조금 기다려주는 것, 자리를 양보해 주는 것, 길을 묻는 사람에게 설명해 주는 것...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건 여유인 것 같습니다. 나만 힘든 게 아니라 다들 힘들다 여기는 마음의 여유, 체력적 여유, 시간적 여유 등등.
이동진 평론가님이 어디에선가 말씀하시더라고요. 바쁜 건 악에 가까운 것 같다고. 바쁘다는 건 여유가 없다는 것이죠. 여유가 없으면 주위를 둘러볼 수 없을 겁니다.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내 여유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을 때 나에게 돌아오는 기쁨이 꽤 커서 손해는 아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