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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썹달 Dec 13. 2020

깜이를 보내며

2년 반 동안 우리와 함께 살았던 햄스터 깜이가 세상을 떠났다.


큰 아이는 묵묵히 작은 상자 안에 베딩을 깔고 먹이를 조금 넣어준 후 죽은 깜이를 옮겨 수습했다. 가르쳐준 적이 없어서 어디서 봤는지 물으니, 그냥... 이렇게 해주어야 할 것 같아서 한다고 했다. 깜이를 수습한 큰애는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쓴 채 그제야 눈물을 흘렸다. 


둘째 아이는 오빠가 수습하는 동안 옆에서 소리 내어 울며 슬픔을 표현했다.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여 그 마음을 편지로 써보라고 했다. 눈물을 머금고 방에서 종이를 햄스터같이 작게 오려 몇 마디 글을 쓰고 편지봉투처럼 마감하여 가지고 나왔고, 깜이와 함께 상자에 담겼다.


두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던 나도 눈물이 왈칵했지만 불현듯 내가 울 자격이 있는가 하는 생각에 눈물이 차오르다 말았다.


생명을 키우는 일에 자신 없었던 나는 당연히 반대했지만 어린아이들의 성화에 어쩔 수 없었다. 만지면서 키우지 않기, 식사와 물 잘 챙겨주기, 케이지 청소 돕기 등을 아이들에게 당부하고 식구로 맞이했지만, 볼 때마다 케이지에 갇혀 사는 깜이가 안쓰러웠다. 


2년이 넘어가면서 생각보다 오래 사네... 했는데 햄스터의 평균 수명이 2~3년이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다행히 케이지의 크기는 권장 크기와 비슷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케이지 관리를 제대로 해 주지 못했던 것이 내 속으로 정말 미안했다. 그렇게 햄스터에 대한 지식도 큰 관심도 없이 키웠다는 사실이 깜이를 보낸 마당에서야 큰 부끄러움으로 남았다. 내가 해야 할 역할에 충실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아파트 뒷 산 적당한 곳에 깜이를 묻어주었다. 

적당히 높고 나무 아래 평평한 곳으로 자리를 마련하여 돌아가며 흙을 덮고 이별의 인사를 했다. 

집으로 돌아와 잠시 후 식사를 하는데 큰아이가 말했다. 깜이의 장례식을 치르고 와서 밥을 먹는 이 상황이 어딘가 현실적이기도 비현실적이기도 하다고. 애도와는 별개로 밥때가 되어 허기를 채우는 산 생명들의 모습이 모순되게 느껴졌을 것이다. 슬플수록 먹어야 한다는 어디에선가 들었던 말을 하며 식사를 했다.


그리고 두 아이는 매일 들여다보는 휴대폰에 깜이 모습을 담아 애도했다.


햄스터를 마음속에 간직하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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