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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썹달 Jan 09. 2021

아이의 고민

사회생활의 중심. 친구관계.

그저 내 할 말을 잘하고 싶다는 것.


딸아이가 요즘 하는 고민이다.

절친으로 지내는 친구 S에게 자꾸 억울함이 생겨서 속상해할 때가 많아지고 있다.


S는 기억도 잘 못할 어린이집 시절부터 지금까지 한동네에서 친구로 지내오고 있는 아이다. 학교 반은 다르지만 학원에서 만나고 밖에서 함께 뛰놀고, 코로나가 심해지기 전까지는 집에 왕래하며 늘 가까이 지냈다.


S는 여럿이 함께 놀면 특정 누구에게 치우치지 않고 항상 공평하고 공정하게 놀이하는 방향으로 이끈다고 했다. 마음 상한 아이가 있으면 얘들아 우리 oo이 좀 챙겨주자. oo이랑 같이 뭐할까? 하며 속상한 아이를 어루만져주기도 하는 공감과 배려가 좋은 아이. 놀이할 때도 아이디어를 내면서 재밌게 놀 수 있게 무리를 이끄는 쪽이고, 언니가 있어서 그 언니 통해 배운 새로운 놀이나 유행을 또래들에게 전파하기도 하면서 인기가 많은 아이라고 했는데...


그런데 딸은 왜 그런 S에게 속이 상하는 것일까.




어느 날, 아이가 말한 억울함이 어떤 상황에서 생기는지 알게 되었다.

요즘 아이들은 스마트폰의 각종 어플을 활용해 함께 게임을 하거나 영상통화를 하거나 3자 4자 통화까지 수시로 한다. 그날도 스피커폰으로 3자 통화를 하며 같이 게임하는 중에 딸아이가 내 옆으로 왔고 내가 통화를 듣고 있을 때 언짢은 상황이 벌어졌다. S가 무슨 말을 했는데, 딸과 다른 친구에게는 들리지 않아서 둘 다 대답을 하지 않았고... S는 왜 내 말에 대답이 없냐, 너네 왜 나 무시하냐로 시작해 두 아이에게 엄청나게 따지고 들기 시작했다.


무시당했다는 생각이 들면 당연히 기분이 나쁘다. 아이니까 감정 컨트롤이 안되어 바로 화로 이어지기도 하고, 셋 중 둘의 대답이 없었으니 오해를 샀을 수도 있다. 딸아이와 다른 친구는 무시한 게 아니라 너의 말이 들리지 않아서 네가 아무 말 안 한 줄 알았다고 해명했는데, S는 아이들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 왜 자기 말을 듣지 않고 무시했냐며 딸아이와 친구를 나쁜 아이로 몰듯 말했다. 딸이 억울하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는데... 그다음 대화는 대략 아래와 같다.


S: "야, 무시당한 건 난데 네가 왜 화를 내냐?"

딸: "나는 그러려고 한 게 아니라 네가 얘기하는 줄 몰랐던 건데 네가 자꾸 무시했다고 말하니까 억울해서 그렇지..."

S: "억울하다고 네가 화를 낼 건 아니지. 기분 나쁜 건 난데 너는 상대방 생각은 하지 않고 네가 억울하다고 오히려 화를 내냐? 상대방 배려도 할 줄 알아야지 그거 못하면 너는 배려하지 않는 사람인 거 아니야?"


옆에서 듣고 있는데 얼굴이 뜨거워졌다. S는 자신의 기분이 상했다는 이유로 셋 중에 제일 이기적으로 굴고 있었다. 기분이 상한 것에 대해 일단 사과를 받아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았는데 두 아이 입장에선 무시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사과를 하게 되지 않는 것이었다. 억울한 심정을 표현한 딸이 배려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이런 걸 말하는 거였구나 싶었다. 딸은 결국 더 말을 잇지 못했다. 다친 마음을 속으로 삼키고 넘어가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내 속도 상했다.




딸의 말에 따르면 S는 1~2학년쯤부터 함께 노는 친구들 사이에서 옳고 그름을 철저하게 따지며 지적과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놀면서 별생각 없이 하는 말과 행동에 지나친 도덕적 잣대로 그건 잘못된 거라며 지적을 하는 모양이었다. 아이가 예로 든 상황을 하나 얘기하면, 한 친구가 동네 ㅇㅇ 식당에서 새우튀김을 먹었는데 거기 튀김이 너무 느끼했다고 말하니, S가 그건 뒷담화니까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했단다. 그 말을 한 친구가 그게 무슨 뒷담화냐고 하니까, 어쨌든 그 식당에 대해 안 좋게 말하는 것이니 뒷담화인 거라고 했다는..... 이런 식이다.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S의 해석을 통하면 꼭 내가 잘못된 사람인 것처럼 될 때가 많다고 했다. 그런 게 아니라고 얘기해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S에게 말꼬투리가 잡혀 피곤해지거나, 말싸움으로 번져 S에게 이런저런 말로 반박하려 하면 그 얘기가 여기서 왜 나오냐는 식으로 본인에게 불리할 화제는 튕겨내 버린단다. 본인이 항상 옳다고 생각하며 언쟁에서 절대 지지 않으려는 S의 말 기세에, 할 말도 다 하지 못하고 결국 S가 얘기한 대로 자신이 잘못한 것으로 끝나는 상황이 억울하여 마음에 분이 쌓이는 것이었다. 딸이 겪든, 다른 친구가 겪든... 같이 놀면서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니 재밌고 즐거웠던 S가 조금 불편해진 상황. 그럼에도 늘 S랑 노는 이유는, 그런 점이 싫긴 한데 같이 노는 건 재미있단다. 재밌게 놀다가 한 번씩 생기는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할 말을 다 하지 못하는 것이 늘 속상하다고 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좋을까? 나와 첫째, 둘째가 모여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딸아이의 바람은 확실했다.

'S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가 아니라, 같이 놀 때 S가 어떤 말을 하든 상관없이 '그 상황에서 내가 내 할 말을 잘하고 싶다'는 것. S의 기세에 꺾이지 않고 끝까지 자기 말을 하고 싶다는 것인데, 마음 약한 딸에게는 어려운 일 일 것이다. S의 그런 성향을 잘 알고, 딸의 고민도 잘 알고 있는 다른 친구가 딸에게 도움되는 말을 자주 해준단다. 그 친구는 S와의 언쟁에서 딸아이보다 승률(?)이 높다고.


가만히 상황에 대한 얘기를 듣고 난 첫째는 이렇게 말했다.


음.... 그 친구는 닫힌 마음인 데다 고집도 센 것 같은데.
닫힌 마음인 애들은 상대방의 말을 잘 안 들어. 자기가 옳다고만 하고. 네가 할 말을 다 한다고 해도 통하기 어려울지 몰라. 그런 아이들하고는 거리를 좀 두는 게 좋아. 나도 그런 친구가 한 명 있어서 지금 거리 두고 있어.
그리고 친구는 열린 마음으로 넓게 만나는 게 좋아. 딱 절친, 우리 멤버... 이런 테두리 안에서만 친구관계를 가지면 좋지 않아. 나중에 그 친한 친구들이 혹시라도 나쁜 길로 빠지려 할 경우, 또는 나쁜 행동을 하게 될 경우 옆에 걔네들 밖에 없으면 나도 모르게 따라가게 될 가능성도 높아져. 한두 친구에게만 의지하지 말고 두루두루 지낼 수 있게 해 봐.   


녀석... 제법이네.


나는 둘째 마음속에 하지 못한 말들이 쌓이는 게 마음에 걸렸다. 어른도 화병이란 게 있듯, 아이에게도 그런 것들이 쌓이면 마음에 병이 생길 수 있다. 상황은 지나면 끝인데, 내 마음에 풀지 못한 분이 남는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그런 상황이 생기면 일기를 써보라고 권했다. 하지 못했던 말을 일기에라도 쓰면 스스로의 마음과 기분을 다시 살펴볼 수 있고, 하지 못했던 말을 자꾸 쓰고 보게 되면 비슷한 상황이 닥쳤을 때 그 말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아니면 쓰고 풀어내는 과정에서 다른 방법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린아이에게 너무 어려운 걸 기대했나 보다. 친구의 안 좋은 얘기를 일기에 쓰고 싶지 않다는 초3 다운 대답으로 내 권유는 거절당했고, 이 날 대화는 장본인의 급격한 집중력 저하와 여신강림 시청시간이 도래함으로 인해, S에게 할 말 잘하기는 승률 높은 친구의 도움을 좀 더 받아보는 걸로, 그리고 오빠의 조언대로 다른 여러 친구들과도 좀 더 가깝게 지내도록 노력해보겠다는 것으로 급 정리되었다. 앞으로 둘째의 얘기를 많이 들어주고 대화 나누며 계속 주의 깊게 살펴봐야겠다.


코로나로 인해 1년간 학교를 제대로 가지 못하면서 친구 관계도 별 다른 기회 없이 좁게 유지되고 있다. 새로운 학년, 새로운 학교 생활을 예전처럼 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부디 올해에는 좀 더 활발하게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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