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빼빼로 데이에 태어났다. 평생 ‘키 큰 꼬마’, ‘키 큰 여자’로 불리는 나에게 딱 어울리는 날이다. 초등학생 시절, 생일에 친구들이 준 빼빼로를 한아름 안고 집에 가면 언니는 부러운 얼굴로 말했다.
“너는 좋겠다. 생일선물도 많이 받고!”
그러면 내 어깨는 한껏 솟아올랐고 다음 생일엔 어떤 선물을 받을까 내심 기대하곤 했었다. 그러다가 생일에 원하는 만큼의 축하를 받지 못하면 어쩌지 하고 불안해지며 생일만 되면 우울한 감정이 밀려왔던 시기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생일에 부여한 의미의 크기가 줄어들었다. 유난스럽게 생일을 여겼던 지난날이 쑥스러워지기도 했다. ‘생일은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는 날로 의미를 새겨야지 에헴!’하며 철이 든 체 했다.
그러다 생일의 의미가 달라진 건 아이를 낳고 나서다. 출산예정일이 지나도 나올 생각이 없는 아들에게 세상을 선물하려고 유도분만을 시도했다. 하지만 유도분만을 위한 촉진제가 내 몸에 들어가자 태아의 움직임이 둔해졌고 8시간의 유도분만 끝에 응급 제왕절개를 결정했다. 몸이 뜨끈해지며 마취제가 들어온 느낌을 받은 지 3초 뒤 나는 의식이 없어졌다. 2시간 후 깨어보니 남편이 상기된 얼굴로 출산소식을 알렸다. 만감이 교차했다.
생일에 무슨 선물을 받을까 설레하던 철부지가 이제 새로운 생일을 더 기대하며 기다리게 됐다. 자신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소중한 존재가 생겨 버린 그 날을 어떻게 그냥 보낼 수 있을까.
아이를 낳고 나니 길가에 지나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실감하게 됐다. 부모가 열 달 동안 애태우며 기다리고, 태어난 후엔 불면 날아갈까 잡으면 깨질까 소중히 키워온 누군가다. 그러니 생일은 누구나 축하받아 마땅한 날이다.
"이 세상에 오신 걸 축하합니다. 우주보다 소중한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