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9. 24
임신 중에 힘든 점은 여러 가지가 있다. 임신 초기의 입덧, 불어나는 체중으로 인해 맞지 않는 옷, 하고 싶은 것들을 잠시 미뤄둬야 하는 점 등.
하지만 제일 극강의 어려움은 아플 때 약을 쓰거나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제 모처럼 출근해 회사 서랍을 여는데 허리가 삐끗. 이후 앉을 수도 제대로 서있을 수도 없었다. 요 며칠 출고 때문에 재택근무하면서도 야근을 했던 게 무리였던 모양이다. 너무 놀라 회사 안마의자에 누웠지만 통증은 더욱 심해졌고 오빠에게 SOS를 쳤다. 다행히 코앞 건물에 있는 회사에 근무하는 오빠는 부리나케 와주었고 우리는 곧장 회사 근처 튼튼병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임산부라 해줄 수 없는 게 없다며 우리을 돌려보냈고 걷기도 힘들어 119를 불렀다. 하지만 구급대원들은 내가 다니던 산부인과로 이동은 시도를 넘나드는 것이기에 어렵다며 시간을 끌었고 나는 눈물이 터졌다. 결국 오빠 차로 이동. 산부인과에서는 행복이 상태만 확인해줄 뿐 별다른 치료를 할 수가 없다며 응급실로 갈 것을 권했다.
또다시 길에서 시간을 버리며 오빠를 의지하며 다리를 질질 끌고 한림대 병원으로 갔다. 제대로 주차도 못한 채 긴급하게 응급실을 찾았으나 응급실 대기도 한참 기다려야 하기에 척추센터로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거기서도 돌아온 답은 임산부라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것.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면 위험을 감수하며라도 x레이를 찍고 물리치료라도 하겠지만 그 정도는 아니지 않냐는 의사의 말에 하염없이 눈물만 흘릴 수밖엔 없었다.
너무나 아파서 걸을 수도 앉을 수도 누울 수도 없지만 우리 행복이에게 위험한 건 결코 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집으로 돌아와 형부가 일러준대로 찜질을 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움직일 때마다 비명이 나왔다. 이대로 내 인생이 끝날 것 같았고 다시는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할 것 같았다. 한마디로 절망 그자체.
퇴근하고 우리 집에 온 언니가 내 몸 구석구석을 살펴보며 치료를 시작했다. 물리치료사인 언니의 손 닿는 곳마다 내 고통의 원인을 찾아내는 듯 했다. 다리를 벌리고 차근차근 고관절을 이용해 몸을 움직이니 비명소리는 잦아들었다. 그리고 오늘도 휴일임에도 하루종일 언니가 와서 치료해주었다. 언니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을까.
여전히 혼자서는 화장실도 못가는 나를 남편은 온 사랑과 정성으로 지켜주고 있다. 너무나 감사하다. 말로 표현 못할 만큼 고맙다. 사랑하는 남편이 온종일 간병으로 지쳤는지 코고는 소리가 요란하다. 그것마저도 사랑스럽다.
임신으로 힘든 점은 많지만 가족의 사랑을 깊이 느끼고 있다. 우리 행복이에게 더 따뜻하고 사랑 가득한 환경을 선물해주고 싶다. 오직 두 손밖에 자유롭지 못한 오늘밤. 매사 감사하며 건강을 소중히 지켜가며 평생 남편을 사랑하겠다고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