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0. 13.
임신 40주의 60%를 좀 넘었을뿐인데 심리적으로는 오늘 내일쯤 낳아야 하지 않나 싶을정도로 무척 지쳐있다. 임신을 하면 급격한 호르몬 변화로 우울한 감정이 따라온다는 이야기는 여기저기서 많이 접했다. 호르몬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았고 임신 중 우울함이라는 뻔한 공식에 동조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몹시 힘이 든다. 특히나 남편과 다툰 후면 더 그렇다. 아주 사소한 문제로 싸움이 커지고 그러면 걷잡을 수 없이 화가 치민다. 그런 내 모습에 남편은 불만을 토로하고 나는 그것조차 꼴보기가 싫다. 나한테 무조건 굽히기만 했으면 좋겠는데 그것도 일정 선이 있나 보다.
이렇게 기분이 울적하고 가슴이 답답할 때면 몸이라도 마음껏 움직이고 싶은데 그마저도 불가능이다. 허리가 아파서 15분 걷고 5분 앉고를 반복해야 하는 처지... 저 멀리서 농구하는 친구들을 지켜보다가 왠지 이상해보일 것 같아서 관뒀다. 멀리서도 슛을 잘 쏘는 그 애들을 보면서 우리 행복이도 저렇게 운동을 잘하는 멋진 남자로 성장했으면 싶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나도 얼른 아기를 낳고 가뿐한 몸이 되어 농구도 하고(중학교 때 이후로 한적은 없지만) 요가도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화가 나서 씩씩대면 집을 나왔을 때는 그냥 남편이 밉기만 하다가 문득 행복이가 태어난 후에 이런 일이 있으면 어쩌나 싶었다. 오늘도 역시 내가 사소한 걸로 화내는 말투로 말해서 싸움이 벌어진 건데 행복이한테 이런 엄마가 되고 싶진 않다. 과연 100일 안에 내가 달라질 수 있을까. 화나는 상황이 와도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게 잘 말하고 싶은데 그게 남편에게는 잘 안 된다. 왜 화가 났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부드럽고 유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남편 앞에서는 뾰족뾰족 날카롭기만 하다. 내가 어떻게 해도 내 옆에 남아있을 사람이라는 확신 때문일까. 그럴수록 더 소중하게 대해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렵다.
마음을 정리하고보니 이건 임신 중 우울함이라기보다는 그냥 남편한테 성질부리다가 내 맘대로 안되서 짜증나는 것 같다. 역시 마음을 다스리는 데 글쓰기는 특효약이다.
어쨌든 임신을 하고 있으니 화가 난다고 제주도로 훌쩍 떠날 수도 없다. 좋은 점일까. 나쁜 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