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본문: 글과 그림의 관계

1. 그림책이란?

by 안개향

그림책은 어떤 책을 의미할까요? 통상적으로는 글과 그림이 함께 있는 ‘아이들을 위한 책’으로 여겨집니다. 아직 글을 읽지 못하고 긴 텍스트를 이해하기 어려운 아이들에게, 그림을 통해 이해의 영역을 넓혀주는 책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그림책은 ‘글과 그림이라는 두 매체가 결합하여 의미를 전달하는[1]’ 독특한 매체일 뿐, 최근 들어서는 그 독자가 꼭 어린이에 국한되지는 않습니다.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은 태교 음악으로, 어린이들의 피아노 연습곡으로, 어른과 노인들의 감상곡으로 연령에 관계 없이 사랑받지요. 그림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그림책의 경우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어른은 어른 나름대로 즐길 수 있습니다. 내면의 감성, 경험, 성장 배경, 관계, 가치관 등에 따라 전혀 다른 것을 받아들이겠지만, 만남의 기쁨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이죠.


어쨌든 이 매거진에서는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그림책에 대한 이야기를 할 예정입니다. 그 중에서도 영아들의 인지를 위한 책보다는 이야기의 흐름을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는 3세 이상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을 주로 다루려고 합니다.


그림책을 '글과 그림의 결혼'이라고도 합니다.(David L.Russell, <Literature for Children : A Short Instrunction>) 결혼생활에서 남녀의 생각이 늘 같지 않습니다. 서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다가도 다른 길을 걷기도 하고, 협력하다가도 틀어지곤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방향으로 걸어나가면서 생활을 영위해 나가지요. 협력과 분리 속에서 결혼 생활은 되려 풍성해집니다.


그림책도 마찬가지예요. 글과 그림이 늘 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보통 글은 시간과 소리, 그림은 공간과 이미지를 담당한다고 하지요. 그것도 꼭 정석은 아니지만요. 많은 분들이 '글에 나온 내용 중 하나를 그림에 반영하는 거 아니냐.'라고 생각하시만, 그것은 삽화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글과 그림이 서로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 관계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제가 그림책 연구가는 아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심도 있는 이야기를 다룰 것은 아닙니다. 그럴 깜냥도 못 되고요. 다만 그림책의 문법을 간단히 알고 가자는 차원에서 제가 읽고 공부한 내용들을 쉽게 풀어 써 보려고 해요. 현은자 외 <그림책의 그림 읽기>, 이성엽의 <그림책, 해석의 공간>, 권승희의 <좋은 그림책의 기본>을 참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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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들에 따라 글과 그림의 관계를 다양하게 나눕니다. 반복/보완의 두 가지로 나누는 학자부터, 글 없는 그림책/대응/확장과 강화/대위/병행/그림 없는 책까지 다양하게 구분하는 학자까지요. 이성엽의 <그림책, 해석의 공간>에서는 그림책의 글과 그림 관계 분석에서 제일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분류를 '반복', '협력', '분리'라고 하고 있고요. 저는 이 분류에 따라 간단하게 설명을 해 보고자 합니다. 앤서니 브라운의 <고릴라> 책에서 일부 장면들을 가져와 볼게요.



1. 반복(중복 혹은 잉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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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사 제외 서술만을 따라갈 때) 글과 그림이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경우를 '반복' 관계라고 말합니다. <고릴라>의 두번째 장면인 이 본문에서 글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빠는 한나가 학교에 가기도 전에 출근했어. 퇴근해서도 일만 했지. 한나가 말을 걸려고 하면, 아빠는 "나중에 아빠는 바빠. 내일 얘기하자."하고 말했어.


그림이 담고 있는 내용은 글의 서술 차원과 거의 일치합니다. 출근하는 아빠, 퇴근 후에도 아이에게 등을 돌린 채 일만 하고 있는 아빠가 그려져 있지요. 글과 그림이 서로 반복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협력(교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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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이 서로의 빈틈을 채워주며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전개하는 것을 협력/교차 관계라고 합니다. 현실에서 판타지로 넘어가는 이 장면의 글은 아래와 같습니다.


한나는 고릴라 인형을 방 한 구석에 치워 두었어. 그러고는 다시 잠이 들었지. 그런데 그 날 밤에 굉장한 일이 일어났어.


글만 보아서는 무슨 굉장한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지요? 굉장한 일은 그림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아빠가 선물해준 작은 고릴라 인형이 거대한 진짜 고릴라로 변신합니다. 글이 다 말하지 않은 부분을 그림이 이야기해주는 거지요. 이런 관계를 협력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아요.



3. 분리(대립)


글과 그림이 서로 상관 없는 이야기를 하거나, 서로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분리 혹은 대립 관계라고 합니다. <고릴라>의 맨 첫 장면을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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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는 고릴라를 무척 좋아했어. 고릴라 책도 읽고, 고릴라 비디오도 보고, 고릴라 그림도 그렸지. 하지만 진짜 고릴라를 본 적은 없었어.

아빠는 한나랑 동물원에 가서 고릴라를 볼 시간이 없어. 너무 바빠서 시간이 나질 않거든.


고릴라를 무척 좋아하는 한나에 대한 설명을 보면, 글과 그림은 중복 관계처럼 보입니다.(왼쪽) 하지만 오른쪽 그림을 보면 글과 그림이 꼭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 아닌 것 같습니다. 아빠가 정말 바빠서 동물원에 함께 가지 않는 것 같나요? 제가 보기에는 아닌 것 같아요. 신문을 내려보고 있는 아빠의 얼굴이 차갑기 그지 없습니다. 사랑을 갈구하는 아이의 빨간 옷 외에, 이 장면의 모든 배경은 서늘한 푸른 색조를 띕니다. 아빠의 얼굴마저요. 살림은 텅 비어 있지요. 이 아이가 집에서 느끼는 정서가 이렇게 텅 비고 서늘한 것을 의미합니다. 아빠가 정말 바쁘다기보다는, 아이와의 유대감이 부족한 것 같아요.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고 생각하고 원하는지 관심이 없는 거지요. 글과 그림의 어긋남을 통해 독자는 아빠와 아이의 관계를 오히려 유의깊게 살펴보게 됩니다.



간단하게 살펴봤지만 글과 그림이 꼭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은 아시겠지요? 글과 그림은 서로 손을 잡았다가 부딪혔다가 다시 도움을 주면서 하나의 이야기 세계를 만들어나가는 관계랍니다. 이런 지점들이 그림책을 더욱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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