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아이의 성장을 돕는 그림책

2. 그림책의 힘

by 안개향

앞선 글들을 통해 그림책이 어떤 것인지, 어떤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는지 약간의 맛보기를 했습니다. 2장에서는 왜 어린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라고 권하는지, 그림책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다뤄보고자 합니다.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으나, 제가 생각하는 그림책의 힘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세계/경험/감정의 확장을 통해 아이의 성장을 돕는다
2. 머무를 줄 아는 힘을 기르도록 돕는다.
3. 상상력과 표현력을 기르는 바탕을 마련해준다.
4. 부모의 사랑을 온전히 느끼도록 해준다.
5. 부모 안의 아이를 일깨우고, 자녀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중 이번 글에서는 1번과 2번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세계/경험/감정의 확장을 통해 아이의 성장을 돕는다.


그림책을 읽어주는 부모가 자녀에게 다음과 같은 점을 기대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언어적 발달이 빠를 것이다, 한글을 수월히 뗄 것이다, 향후 공부를 잘 하게 될 것이다, 지식 습득이 빠를 것이다, 표현력이 월등히 좋을 것이다...... 이런 기대감은 언어적, 지식적 측면에서의 성장을 의미하지요. 물론 이런 아이들도 있어요. 책을 수없이 읽어서 연령 대비 수준 높은 어휘와 문장을 구사하는 아이들, 호기심이 많아 책을 통해 계속 지식 확장을 이어나가는 아이들이요. 그리고 그런 언어 구사력과 지적 호기심이 높은 학업 성적으로 이어지는 아이들도 있고요.


부모 및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쓰는 일상 언어와 달리, 그림책에는 잘 정제된 언어들이 담겨 있습니다. 상황에 맞는 의성어/의태어, 관용적 표현, 문어적 표현 등은 일상 대화에서는 접하기 어렵죠. 접하는 어휘의 폭이 다르다 보니, 언어 구사력이 높아지기 좋은 환경인 것이 사실입니다. 보고 듣는 것이 많으니 표현력도 향상되고 아는 것도 많아지겠지요. 책을 읽는 아이들이 모두 언어적/지식적 성장을 동일하게 경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기에 좋은 환경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그림책을 읽을 때 비단 언어/지식의 성장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를 둘러싼 세계, 경험의 확장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어른들이 책을 읽는 이유로 '간접 경험'을 꼽지요. 아이들도 마찬가지예요. 그림책을 통해 아직 가본 적 없는 나라를 여행하고, 다른 환경 속에서 성장하는 아이를 만나고, 지금 자신이 직면한 세계가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아델과 사이먼>을 읽으며 뉴욕의 거리를 걸어보고, <왜 이래요, 왜 이래?>를 읽으며 파리의 풍경에 젖어들고, <안녕, 폴>을 읽으며 남극에서 일어나는 일에 빠져들게 됩니다. 누가 나서서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전해지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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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통해 현존하는 다른 공간만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시간을 완전히 넘나들 수도 있어요. 옛이야기를 통해 우리네 과거로 갈 수도 있고, 다른 나라의 과거로 넘어갈 수도 있지요. 그 시대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문화를 즐기고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생생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뿐인가요? 원시 시대 혹은 아예 인간이 지구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공룡의 시대로까지도 갈 수 있습니다. 그림책은 독자를 이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데려다주는 타임머신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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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의 시공간이 늘 사실적인 것만도 아닙니다. 그림책을 통해 우리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판타지 세계로까지 갈 수 있지요. 세상에 있을 법하지 않은 캐릭터를 만나면서 낯섬과 설레임을 동시에 경험하게 되는 것이 그림책 세계입니다. 또한 가상의 공간을 마음껏 탐험하며 감정을 발산하고 후련하게 돌아올 수 있는 것도 그림책 세계입니다. 이보다 더 신나면서도 안전한 여행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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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세계가 확장되면서, 아이들은 다른 사람/동물/캐릭터의 모험담을 대리 경험하게 됩니다. 신이 났다가, 행복했다가, 절망했다가, 안타까웠다가, 두려웠다가, 안심했다가...... 주인공의 서사를 따라가는 과정에서 독자는 주인공의 감정을 마주하는 경험, 즉 감정이입을 하게 됩니다. 그림책을 통해 아이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의 폭이 무한히 넓어진다는 것이죠.


<이슬이의 첫 심부름>은 이웃나라 일본의 책입니다. 우리나라 소도시에 가면 아직 볼 수 있을 법한 풍경들이 나오지요. 아이는 이 골목길 풍경, 문화를 보면서 익숙함과 거리감을 동시에 느끼게 될 거예요. 하지만 5살 이슬이의 서사를 따라가며 감정이입을 하는 것에는 조금의 무리도 없을 것입니다. 비슷한 경험이 있는 친구는 자신의 첫 심부름을 상기하게 될 것입니다. 경험이 없는 친구는 이슬이의 모험에 동참하며 손에 땀을 쥐게 될 거고요. 이슬이의 성공이 마치 자기의 성공인양 긴장감이 해소되며 자신감이 생기는 간접 경험을 할 수 있겠지요. 이런 공감의 경험은 자신을 긍정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기회를 마련해줍니다. 내면의 성장이란 바로 이것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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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 책을 읽을 때 느끼는 기쁨, 감동, 경이, 신비를 아이는 그림책을 통해 처음 맛보게 됩니다. 언어, 지식의 확장보다도 경험, 감정의 확장이야말로 그림책이 아이들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일 것입니다.



2. 머무를 줄 아는 힘을 기르도록 돕는다.


아직 문자를 모르는 아이들은 그림책을 어른과는 다른 방식으로 봅니다. 눈으로는 그림을 보고 귀로는 어른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지요. 서사를 제대로 따라가기 위해서는 귀를 기울이고 눈을 크게 떠야 합니다. 귀 쫑긋 눈 부릅. 잠깐 한눈을 팔면 이야기의 중요한 부분을 놓칠 수 있으니까요. 작가가 그림 속에 숨겨둔 이야기는 또 얼마나 많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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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를 기울여 보고 듣고 생각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연스레 '머무를 줄 아는 힘'을 익히게 됩니다. 잘 듣고 잘 보는 연습을 그림책을 통해 하는 셈이죠.


그런데 저는 이 능력이 세상 살아가는 데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책 읽어주며 많은 부모들이 기대하게 되는 '공부'로 예를 들어볼까요. 공부를 잘 하는 데는 여러가지 역량이 필요합니다. 계획을 세울 줄 알아야 하고,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파악할 줄 알아야 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지요. 시험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는 기술적인 요령도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꼭 공부를 잘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배움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것'과 '지문을 제대로 읽는 것'입니다. 제대로 듣고 볼 줄 아는 능력은 모든 배움의 기초가 되어 주는 것이지요. 그림책을 열심히 읽어준다는 것은, 아이에게 배움의 기초 역량을 튼튼히 만들어주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세상 살아가는 데 배우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인간 관계입니다. 사람은 결국 관계 속에서 안정과 성취감을 얻으며 살아갑니다. 인간 관계에 있어서도 잘 듣고 잘 보는 능력은 기초 역량에 해당됩니다. 상대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어줄 줄 아는 것, 상대의 비언어적 신호를 주의 깊게 읽어낼 줄 아는 것. 이것이야말로 소통과 공감의 기본 자세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이 '잘 듣고 잘 보는 힘'을 어릴 적부터 길러주는 데, 그림책이야말로 탁월한 매개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그림책의 힘 중 3, 4번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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