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는 신호등 사탕이 필요해

선명하게 느끼는 삶을 위해

by 안개향

어릴 때 인천 할아버지 댁은 작은, 아주 작은 구멍가게를 했다. 바깥쪽은 구멍가게, 안쪽은 단칸방 하나의 살림집.


볕이 거의 들지 않던 집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다른 장면들은 상한 필름처럼 흐릿하게 흘러가는데, 몇 장면만 팝업처럼 또렷하게 튀어나와 있다. 그 중 하나는 마루 바닥 밑 차곡차곡 쌓여 있던 납작하고 새카만 번개탄. 또 하나는 입구 쪽에 반짝이며 놓여 있던 신호등 사탕. 번개탄처럼 어둡고 침침한 친가를 유일하게 환한 곳으로 만들어주던 것이 신호등 사탕이었다.

할아버지가 짐짓 꺼내주시던 사탕 하나는, 일곱 살 아이가 할아버지 댁에서 얻을 수 있는 제일 큰 기쁨이었다. 100원짜리 동전 하나면 살 수 있었으니, 아마 가게에서 가장 저렴한 간식 중 하나였을 것이다.

비닐을 벗기면 빨강 노랑 초록 세가지 색 사탕이 나란히 들어 있었다. 이름 그대로 삼색 신호등을 꼭 닮았다. 방 구석이나 집 앞 보도블럭에 쭈그리고 앉아 사탕 한 알을 입 안에서 굴렸다. 옥상이나 다락에라도 가면 되는 외가와 달리, 친가에서는 달리 갈 곳이 없었다. 온통 침이 고이게 하는 사탕의 달콤함만이 그 집의 그늘 같은 침묵을 견디게 했다.

사탕을 물고 놀다 보면 아무리 조심을 해도 사탕이 와르륵 함부로 입 안을 훑고 지나갔다. 색은 예쁘지만 표면이 설탕이 겉에 우둘투둑 붙어 있어 표면이 너무 거칠었다. 아차 싶지만 이미 입천장은 아릿하게 긁혀 있다. 사탕이 매끈해질 때까지 아차는 여러번 이어졌다. 그리고 결국 벌겋게 부어 쓸린 입천장과 혓바닥 위를 매끈해진 알사탕이 굴러다닌다. 훈장처럼 자랑스레.


달콤함을 위해 치뤄야 할 대가가 있다는 걸 일곱 살짜리가 배우기 위해서는, 입천장 정도는 내어주어야만 했다. 그쯤이야 얼마든지 내어줄 수 있었다.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 <알사탕> 속 동동이는 늘 혼자 있는 친구이다. 강아지 구슬이와 함께 다니지만 둘은 같은 곳을 바라보거나 눈을 마주치는 법이 없다. 놀이터에서도 동동이는 친구와 함께 하기보다는 혼자 구슬 치는 편을 선택한다.


그러던 어느날 동동이의 조용한 세계에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난다. 문방구에서 우연히 발견한 알사탕을 먹으면, 사탕 무늬와 똑같은 상대의 마음 속 소리가 들려온다. 옆구리에 리모컨이 낀 소파의, 늘 무기력하게 고개만 숙이고 있는 구슬의, 잔소리 폭격을 퍼부어대는 아빠의, 돌아가신 그리운 할머니의, 그리고...... 긴 여행을 떠나는 은행잎들의 빛나는 목소리가.


사탕을 먹기 전 동동이의 얼굴에는 빛도 그늘도 없다. '혼자 노는 것도 재미있다'는 아이는 특별한 기쁨도 없고 고통에 무감하다. 곁에 아무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동이와 세계 사이에는 투명한 가림막이 세워져 있다. 그건 누가 세워준 것이 아니라, 동동이가 제 손으로 꼭꼭 힘주어 세운 가림막이다.


알사탕은 동동이의 무감한 세계에 균열을 내며 등장한다. 생긴 것부터 체크무늬 분홍색 얼룩무늬 죄다 알록달록하다. 민트맛이 강렬해 귀가 뻥 뚫리거나 아빠 수염처럼 표면 까칠하기도 하다. 사탕은 가림막을 찢어버리며 동동이를 세상으로 와락 끌어당기는 초대장이다. 네 주변에 얼마나 많은 맛과 소리와 대화와 존재가 머물고 있는지, 두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라는.


<알사탕> 출판사 책 소개 중



입천장이 죄다 까지더라도 사탕을 굴리며 행복해하던 일곱살짜리는 이제 없다. 입 안이 찌릿할 정도의 달콤함도 그닥이고 입천장이 까이는 것도 영 싫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선명하게 빛나던 시절을 영영 잃어버리고 싶은 것만도 아니다. 내 안의 어린이는 아직도 사탕을 달라고 칭얼댄다. 나는 많이 맛보고 싶고 많이 아프고 싶다고. 너는 왜 그리 자꾸 누우려고만 드냐고.


동동이에게 우연히 찾아온 알사탕이 세상이라는 감각을 되찾아주었듯, 신호등 사탕이 내게도 그런 마법을 부려줄까. 무엇이든 선명하게 느끼고 선명하게 아프고 선명하게 기쁘던 시절을 되돌려 주었으면.




글을 쓰며 찾아보니 이제 신호등 사탕은 삼거리 사탕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편의점에서 400원에 판다고 한다. 30년도 넘는 시간 동안 100원에서 400원이 되었으니 값이 거의 안 오른 셈이다. 나이 마흔 먹고도, 요령 없이 입천장이 다 까질까봐 피식 웃음이 난다. 입천장 까지지 않을 요령 정도는 30년 간 좀 익혔으면 싶은데.


입천장을 내어주더라도 얻고 싶던 달콤함이 있었다, 그때는. 기꺼이 세상을 내게 초대하고 나도 세상의 초대장을 받아들이던 어린 날. 자꾸만 가림막을 치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려고만 하는 내게, 일부러라도 신호등 사탕을 다시 먹이고 싶어졌다. 이제는 사탕을 건네줄 할아버지도 계시지 않은, 통증이든 달콤함이든 다시 한번 선명하게 맛보고 싶은 푸석한 마흔 살 여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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