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책 속에 끼워둔 편지

겨울눈 속 봄꽃을 품고 쓰기

by 안개향

집 근처에 좋아하는 목련길이 있다. 목련과 산수유가 섞여 스무 그루쯤 줄지어 서 있다. 3월의 딱 절반이 지났을 무렵 이 길을 걸어보면, 아직은 따뜻한 겨울눈 외투를 입고 있다. 아기새처럼 보송보송 보들보들한 외투다.


봄날 꽃이 피었다 지면 목련은 여름부터 가을까지 겨울눈을 만든다.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도 앞으로 올 계절을 잊지 않고 겨울 준비를 시작하다니. 인생에 겨울이 없는 양 망각하거나 코앞에 닥친 겨울을 겪지 않으려고 버티는 인간과 달리, 나무는 겸손하고 현명하다. 머지않아 다가올 겨울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여름은 푸르게 자라면서 겨울눈을 키우고, 겨울은 하얗게 기다리면서 봄꽃을 키운다.


꽃눈을 보호하는 외투를 포엽이나 아린, 혹은 눈비늘이라고 부른다. 목련의 눈비늘은 여러 겹으로 층을 이뤄 외부 공기를 차단한 데다 겉에는 빽빽하게 털로 감싸여 있다. 2개의 큰 조각으로 이뤄진 눈비늘은 꼭 하나처럼 보이지만, 벗겨질 때는 아래쪽부터 갈라지며 고깔 모양이 되어 떨어진다. 떨어진 눈비늘은 아이들 손가락 장난감이 된다. 예나 지금이나 자연 속에서 아이들 노는 모양은 비슷하다.


한 번 만든 눈비늘을 겨우내 쓰는 건 아니다. 패딩도 오래 입으면 보온 효과가 떨어져 새 옷을 사는 것처럼, 목련도 겨우내 세 번 정도 껍질을 벗는단다. 옷을 서너 번씩이나 갈아입으면서 목련은 혹독한 겨울을 견디고 마침내 봄을 맞이한다. 3월 중순 목련꽃이 입고 있던 눈비늘은, 그 겨울의 마지막 외투인 셈이다.


두번째 책이 나오던 때 역시 3월의 절반이 지나갈 무렵이었다. 목련 곁에 선 산수유와 봄까치꽃은 이미 이른 꽃망울을 터트리고 목련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봄꽃들과 함께 내 생일에 세상에 나온, 내 쌍둥이 책. 이 책이 나에게 봄을 불러다 줄 거야. 목련과 벚꽃과 조팝꽃과 이팝꽃으로 이어지는 꽃의 계절이 내 책에도 그대로 깃들었으면.

<너는 나의 그림책>은 아이 둘을 10년 동안 그림책 곁에서 키우며 함께 성장해나간 그림책 육아 에세이다. 코로나라는 정체불명의 괴물과, 그 괴물 덕에 집에 들어앉은 꼬마 괴물 둘을 수발들며 쓴 책이었다. 쓰느라 힘들었지만 그래도 쓸 수 있어 기뻤다. 해내야 한다는 강박감과 해냈다는 성취감이 집 안에 갇혀 시들던 나를 살아 있게 만들었다.


그보다 2년 전에 나왔던 첫 책 <어른의 그림책>은 예상보다 많은 사랑을 받았다. 베스트셀러가 보기엔 우스운 수준이지만, 초보 작가에게는 과분한 사랑이었다. 코로나를 몰랐고 남편도 육아휴직 중이었으니 나는 자유로웠다. 구미로 당진으로 남양주로, 불러주는 곳을 따라 짧은 그림책 여행을 다녔다. 책이 나를 세상으로 힘껏 꺼내주었다. 그러니 두번째 책도 나를 세상 밖으로 꺼내줄 거라 믿었다.




그러나 코로나 1년이 지나도록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대면 북토크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온라인 북토크의 모객도 이전만큼 수월하지 않았다. 매일 아침 온라인 서점에 들러 판매 지수를 확인했지만, 봄이 채 깊어지기도 전에 판매 지수는 꼼짝 않기 시작했다.


워낙 많은 책이 쏟아지는 시절이다 보니, 책 출간 2-3주가 지나면 향후 판매 추이가 대략 가늠이 된다. 입소문을 타고 더 나갈 것이냐 아니면 이쯤에서 멈추어 서서히 줄어들 것이냐. 두번째 책은 아무래도 후자인 듯 했다.


책이 세상에서 고군분투하는 동안 목련은 마지막 외투를 모두 벗어던지고 슈크림 같이 새하얀 꽃을 밀어올리기 시작했다. 세상은 봄꽃들의 노래로 점점 더 시끌벅적해졌다. 겨울이 언제 있었냐는 듯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낮이고 밤이고 쉬지 않고 피어났다.


그래서 더 미웠다. 이토록 모든 것이 찬란하게 피어나는 계절에 내 책은, 나는, 채 피어보지도 못하고 시들기부터 시작하는 것 같아서.


광화문 교보문고 매대를 서성이며 울퉁불퉁 삐져나온 마음들을 더 빼족하게 갈았다. 이런 책은 왜 잘 팔리는 거야 내 글이 더 나은 것 같은데. 일단 작가가 유명해야 하나봐. 이 사람 만나보니 영 별로던데....... 어디서 그렇게 검은 벌레 같은 미움들이 스물스물 많이도 기어올라 왔을까. 마음 속 피어보지도 못한 꽃이, 벌레 먹어 까맣게 까맣게 타버리는 냄새가 진동했다.


책은 단단하고 두꺼운, 손에 쏙 들어오는 네모난 몸을 지녔다. 하지만 독자를 만나 펼쳐지면서 진짜 몸이 된다. 내 뇌와 손을 통해 책으로 빠져나간 글자가, 독자의 눈과 입을 통해 몸으로 전해질 때 비로소 진짜가 된다. 내 책은 창고에 웅크린 채 긴긴 겨울잠에 빠져들려 하고 있었다. 내 말은 이제 가닿지 않는구나. 목소리를 잃어버린 인어공주가 왕자의 결혼식 파티를 바라보는 마음으로 속말을 삼켰다.


간간히 줌으로 독자들을 만날 때는 기뻤다. 하지만 직접 만나고 싶었다. 북토크를 하면 책을 소개하는 시간도 좋지만, 후식처럼 곁들여지는 시간이 정말 행복하다. 독자의 반짝이는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나누고 사인을 하고 악수를 나누고 함께 웃으며 사진을 찍는, 얼굴과 손과 몸이 있는 사람으로 만나는 시간.


그러나 줌 북토크가 끝나고 화면이 종료되었을 때, 주위에는 침묵 외에 아무도 없었다. 내 몸에 직접 기입되는 따뜻한 환대가 사라지자 방금 전까지 있던 만남은 별똥별처럼 빠르게 사라져버렸다. 화면 속에서 받았던 환대를 애써 불러오며, 내가 더 이상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고자 애를 태웠다.


겨울눈 속 봄꽃의 마음으로 쓴다


사랑하는 목련길의 목련도 하늘을 향해 하얀 등불을 높이 치켜들기 시작했다. 짧은 기간 밖에 볼 수 없는 풍경이기에, 일부러 목련길로 돌아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볼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던 어느 날, 멀리서 보니 개중 유독 키도 몸도 큰 목련나무 한 그루가 홀로 휘청거리고 있었다. 뭐지? 바람이 그 나무에만 불 리도 없는데.


가까이 가보니 일고여덟살 되어 보이는 남자 아이 둘이 목련나무 둥치를 힘껏 흔들고 있었다. 세상 신난 웃음을 터트리며! 환하게 켜졌던 목련 조명들이 툭툭 떨어지며 일순간 꺼졌다. 안 돼!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피어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피어 있는 건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잰걸음으로 목련나무에 닿았을 때 아이들은 이미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남은 꽃들을 무사히 지켜냈다는 듯 목련나무는 약하게 떨고 있었다. 부치지 못한 하얀 편지들이 바닥 가득 쏟아져 있었다. 단풍잎은 말려서 오래 두고 볼 수라도 있지만 목련꽃잎은 간직할 수도 다시 쓸 수도 없는데.......아이들과 한 나의 10년도 부치지 못한 편지가 되어 떨어진 것 같아보였다.


사실 그 시절은 누구에게 가닿든 아니든 상관없이 우리 셋 안에 고스란히 살아있는데 어쩜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했을까. 하지만 이르게 떨어져 가장자리가 까맣게 타들어가기 시작한 목련 앞에서 저절로 애가 탔다. 봉우리를 밀어올리다 채 피어나기도 전에 시들기를 먼저 배운 내 책 더미 같아 보였다.


책이 잘 팔린다는 기준은 어느 정도일까. 누군가에게는 3만부도 성에 안 차고 누군가에게는 3천부도 꿈의 숫자로 느껴질 테고. 베스트셀러가 되길 바란 건 아니지만 내 목소리가 쓸모없다고 느끼지 않게 하는 숫자는 얼마였을까. 그만큼 팔렸으면 숫자를 위로삼아 코로나 시절을 무사히 건넜을까. 희미해지거나 쪼그라들지 않고. 안간힘을 써도 책에는 책만의 운명이 있다고 느긋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판매량보다 더 괴로웠던 건 판매량에 연연하는 내 모습이었다. 매일 아침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 판매지수를 확인하고 SNS 리뷰가 하나라도 올라왔나 확인하는 모습. 판매지수가 조금 떨어지면 실망하고 조금 오르면 기뻐하는 내 모습. 다른 작가들은 이런 짓 안 할 것 같은데. 모두들 의연하고 근사하고 단단해 보이는데. 나를 좀 봐줬으면 싶어 전전긍긍하는 내 모습이 창피하고 한심했다. 그 모습을 숨기느라 몸 속이 새카맣게 탔다.


어릴 때는 떨어진 후 시들어가는 꽃잎이 흉해 목련이 싫었다. 그렇지만 이제 와서 보니 그게 목련인 걸 어쩌나 싶다. 한편으로는 우아하고 환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새까맣게 쪼그라드는 존재. 피었을 때는 백조, 저물었을 때는 흑조처럼 두 마음을 꽁꽁 품고 사는 게 꼭 보통의 사람 같다.


밤처럼 새까만 생각들은 내가 아니라고 밀어내지 말걸. 까맣게 지는 잎도 목련이듯, 까맣게 속태운 생각들도 다 나였다. 네가 이런 뾰족한 생각들을 하는구나, 마음이 많이 번잡하구나, 하며 안아줬어야 했는데. 남들에게는 아니 심지어 나에게조차 하얀 목련만 보여주고 싶었다. 하얀 목련꽃의 계절이 얼마나 짧은데, 일년 내내 꽃을 달고 있으려 했을까.


잎 떨어진 자리에서 목련은 겨울눈을 키우고 다음 해의 답장을 기다린다. 가을이 와도, 겨울이 와도 지치지 않고 묵묵히. 그래서 쪼그라든 나도 쓰기를 내동댕이치지 못했다. 그림도 노래도 춤도 서툰 이가 아는 말하기 방법이 그것 밖에는 없었으니까. 쓰지 못한 날들도 많았지만, 책상 앞에 앉은 날은 뾰족한 나를 손톱 깎듯 써내려갔다. 겨울눈 안에서 계속 외투를 갈아 입으면서.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동안 툭툭 떨어진 목련 꽃잎은 까맣게 사라져갔다. 봄밤은 짧고 백지는 어둠처럼 깊었다. 때때로 '당신의 책에 끼워둔 편지를 받았어요', 하는 수신호가 도착했다. 그러면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더 멀리 있는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졌다. 어쩌면 새하얀 봄날 나처럼 밤새 까만 생각에 시달리고 있을 당신에게.


밤은 조금씩 더워져갔다. 다른 계절이 오고 있었다.


지금은 듣고 싶은 말이 있어 다시 시를 쓰러 왔어요. 방문을 닫고 시를 쓰다 말고 창문 앞에 섰습니다. 불투명한 창이에요. 물가에서 돌멩이 던지는 소리, 멀리 들려옵니다. 창을 열지 않고. 다만 그 앞에 서 있어봅니다. 물고기에게 아가미를 만들어준 건 물고기 자신이었을까요. 봄밤이 끝나가요. 때마침 시는 너무 짧고요. 아직도 우리들 창밖에는 보랏빛 물고기가 맴을 돌고 있는데요.

- “창문 닫기” 중, 최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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