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5일. 딸아이는 2년간 곱게 기른 머리카락을 싹둑 잘랐다.
매번 선물만 받았던 어린이날, 이번만큼은 받는 것이 아니라 나누고 싶다고 했다. 특별한 나눔을 고민하던 아이는 미용실로 향했고, 잘라낸 머리카락을 곱게 포장하여 필요한 곳에 보냈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났다. 생일을 앞두고 있던 아이에게 받고 싶은 선물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번 생일에 받는 거 말고, 주고 싶은 선물이 있어요."
"선물을 주겠다고?"
"그동안 받았던 상금들을 모두 기부하고 싶어요. 그래도 돼요?"
1학년 여름방학 때부터 아이는 동시와 독후감을 쓰기 시작했다. 그저 학교 숙제로 하던 활동이었을 뿐이지만, 제법 완성도가 있었고 잔잔하지만 찡한 감동이 있었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걸까 싶어 지인들에게도 보여주었다.
"이게 1학년이 쓴 글이라고?"
아이의 글을 읽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재능이 있다며 입을 모았다.
혼자 보기 아까운 마음에 아이의 작품들을 공모전에 내기 시작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수상 횟수도 함께 늘어갔다. 쌓인 경험만큼 글 솜씨도 좋아졌을 터였다.
상금을 받을 때마다 차곡차곡 모아두었다. 쓸 일이 딱히 없었다.
결과보다 중요한 건 과정이었다. 상을 받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였는지 알기에, 그저 그 노력 자체가 대견하고 고마웠다. 그때마다 받고 싶은 선물을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늘 같았다. 스티커를 사달라고 했다. 스티커 몇 장이 얼마나 한다고, 그 작은 걸로 아이는 그렇게 행복해했다.
2025년 11월 확인한 결과, 3년간 모아온 아이의 상금은 24만 원이었다.
시상식이 있던 날, 오후 반차를 내고 아이를 태워 사랑의열매 중앙회 건물로 향했다.
갑자기 찾아온 매서운 추위에 이가 덜덜 떨려왔지만, 시상식장은 유난히 따스했다. 나눔을 주제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던 아이들의 얼굴엔 기쁨과 환희가 가득했고, 그 덕에 강당의 공기마저 훈훈하게 달아오른 듯했다. 히터가 세게 틀어진 것도 아니었음에도 그러했다. 따뜻한 마음들이 모이면 세상을 봄빛으로 물들일 수 있다는 걸, 잠시 잊고 있었나 보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학생들이 상장과 꽃다발을 받았다. 단체 사진을 찍고 난 뒤에야 시상식이 종료되었다. 우리는 직원 한 분에게 다가가 그간 모아둔 상금이 담긴 봉투를 조심스레 건네며 기부 의사를 밝혔다.
가슴에 붉은 열매 배지를 단 직원은 좋은 곳에 쓰겠다며 감사하다는 말을 건넸다. 그 말을 들은 아이의 얼굴에 환한 빛이 번졌다.
"모든 친구들이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면 좋겠어요."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이 더 크다는 걸, 언제 배운 걸까. 고작 열 살의 마음속에 나눔이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고마웠다.
아직 세상의 추위를 온전히 겪어보지도 못했는데, 누군가의 겨울을 걱정하고 있었다. 이들을 위해 소중하게 모아온 돈 전부를 기부하겠다고 결정한 그 마음은 대체 어디에서 온 걸까.
나눔은 거창한 일도,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그저 내가 가진 것을 조금 덜어내는 일, 그 작은 마음이야말로 나눔의 커다란 시작이 되어준다.
아이의 나눔은 비록 미약하겠지만, 작은 촛불 하나가 어둠을 밀어내듯 세상을 더 밝게 비출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시작이 누군가의 마음을 흔들어 또 다른 나눔을 만들어 낼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눔은 나를 비워내는 희생이 아니라, 내 안의 온기를 필요한 곳에 건네는 일이라는 걸. 그런 다정함들이 모일수록 겨울은 빠르게 물러가고, 더 이른 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나눔이 틔워낼 봄을, 그 속에서 피어날 수많은 생명들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