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가 11살이 되었다.
초등학교 4학년, 적지 않은 나이다. 고학년이 되었으니 마음가짐도 조금은 달라지겠거니 기대해 보지만, 집에서의 행동과 태도는 작년과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아이는 여전히 해맑기만 하다. 고민과 걱정 하나 없어 보인다. 이는 생각의 깊이가 얕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해 본다. 언제 크려나, 5학년은 되어야 언니 티가 좀 나려나.
끝이 보이지 않던 긴 겨울방학이 지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3월, 우리 집 아이들 또한 새로운 일상을 맞이하고 있을 터였다.
3월의 첫 주를 무사히 보내고 맞이한 첫 주말의 아침. 첫째의 알림장을 확인하며 숙제를 봐주고 있었다.
아이가 대뜸 물어왔다.
"엄마 우리 이사 언제 간댔지?"
"5월 말쯤."
"그러면 안 되겠네."
"뭐가?"
"회장 선거 나가는 거."
아이는 다음 주에 있을 회장 선거에 출마할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전학 갈 거라고 아직 선생님한테는 얘기 안 했는데, 나가고 싶어?"
"뭐, 그건 아닌데.. 선생님이 전학 갈 사람은 절대 나오지 말래. 전학 가고 나면 다시 뽑아야 돼서 곤란해진대."
"그렇겠네. 조금만 기다렸다가 전학 가면 그때 나가자."
아이도 딱히 미련이 없어 보였고, 나 또한 욕심이 없었기에 우리의 대화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며칠 후, 회장 선거가 있던 날이었다. 어떤 친구가 회장이 되었고, 부회장이 되었는지를 물었다. 회장은 자신이 추천한 짝꿍 친구가 되었다며, 신이 나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친구 두 명이 자신을 회장 후보로 추천했다고 했다. 잠시간 고민했지만 양심상 기권을 택했다고.
"잘했어. 정말 잘한 선택이야. 그 친구들 참 고맙다. 교류도 없던 친구들인데 널 좋게 봤던 모양이네. 아쉬웠지만 기분은 좋았을 것 같아."
우린 서로를 마주 보며 방긋 웃었다. 아이의 입가에 작은 쓸쓸함이 걸려 있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대화를 끝맺었다. 속상함도 삼키고 견딜 줄 아는 그런 아이가 되길 바랐다.
그렇게 밤은 깊어져만 갔고, 우린 각자의 일과를 마무리하고 침대에 누웠다.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누웠기에 조금은 수다를 떨다 자도 되겠다 싶었다. 회사에서의 재미있던 에피소드들을 몇 개 풀어놓았다. 둘째는 이미 꿈나라에 가 있었고, 첫째는 엄마 이야기에 까르르까르르 배꼽을 잡고 웃었다.
"엄마 덕분에 처음 웃어보네."
첫째의 평소 말투와 사뭇 다른 말이 흘러나왔다.
"처음 웃는다고? 오늘 무슨 일 있었어?"
걱정이 묻어있는 엄마의 말에 아이는 참고 있던 눈물을 터뜨렸다. 이유를 물어보지만 쉽게 대답이 나오질 않는다.
"오늘 회장 선거 때문에 그래?"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를 참 좋아하기에 긴 방학 동안 개학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던 아이였다. 그리고 새롭게 사귄 친구들은 천사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곤 했다. 그랬던 첫째가 눈물을 보이니 원인은 명확했다.
"여자친구들은 다 나가는데, 나만 나갈 수가 없잖아. 나도 진짜 하고 싶었단 말이야."
이야기를 들어보니 여자친구들이 회장, 부회장 후보로 대거 등록한 상황이었다. 친한 친구들 모두가 후보자가 되었고, 누군가의 추천에 순간 공약까지 떠올렸다고. 작년 1학기에 부회장으로 활동하며 친구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던 기억까지 더해진 모양이었다. 그 설렘을 스스로 접어야 했다는 사실이 아이에게 작지 않은 좌절과 슬픔을 안겨 준 듯했다.
가슴이 저릿하게 아파왔다. 전학에 대한 서운함이나 두려움을 좀처럼 내비치지 않던 아이였다. 워낙 사교성이 좋아 어디서든 금세 친구를 만들 거라 믿었고, 그런 이유로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이제 막 고학년이 된 아이는 여전히 작고 어렸다. 하루 종일 티 내지 않고 그 작은 가슴속에 슬픔을 꾹꾹 눌러 담고 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훌쩍이는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등을 토닥이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럼 이사 가서 하면 되지. 엄마가 같이 고민해 줄게."
아이가 젖은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새 학교 가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이잖아. 친구들이랑 먼저 사이좋게 지내면서 마음을 얻어봐. 그게 좋은 공약보다 더 힘이 세거든. 거기다 네가 하고 싶은 걸 똑똑하게 잘 이야기하면, 분명히 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
아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당장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무력감이 밀려오는 순간들이 있다. 문제가 있다는 건 알지만, 해결을 도와줄 수는 없기에 오는 좌절감 말이다.
선거 이야기를 너무도 담담하게 했던지라, 정말이지 괜찮은 줄 알았다. 내가 키웠으니 내가 제일 잘 알 거라는 오만한 착각. 솔직히 말하자면 괜찮을 거라 믿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워낙 사교성도 좋고, 적응력도 좋은 아이니까.
때로는 믿음이 관심을 대신하는 핑계가 되기도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속상함도 견딜 줄 알아야지'라고 생각했으니, 하루 종일 슬픔을 삼키고 있었을 아이에게 무심한 엄마였음이 틀림없다.
한편으로는 아이가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티 하나 내지 않고 긴 시간들을 홀로 버텼다는 것. 선생님 말을 듣고 정직하게 기권이라는 선택을 했다는 것. 그러면서도 짝꿍이 회장이 되었다며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줬다는 것. 녀석은 친구의 기쁨을 자신의 행복인 양 이야기했다. 열한 살의 어른스러움을 나는 그녀에게서 배웠다.
아이를 이런 환경에 두게 된 것에 대한 미안함은 있었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냥 안아주는 것 밖에는. 그래서 속 깊은 대화를 하며 그녀의 진짜 마음을 끄집어냈고, 상처를 보듬어주고 토닥여주었다. 그날의 속상함이 끝은 아니라는 것,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 모든 순간마다 엄마가 늘 네 편이 되어주겠다고 했다.
그 말 몇 마디에 아이는 울다가 웃었다. 가지런한 하얀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어 보였다.
그날 밤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느꼈다. 아이가 참 단단하고 성숙하게 자라고 있구나 하고. 속상함을 혼자 삼킬 줄도, 옳은 선택이 무엇인지도, 친구의 기쁨을 함께 기뻐할 줄도 아는 아이라는 걸. 그리고 그런 아이 곁에 그저 머물러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엄마일 수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