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개별 Oct 14. 2024

치유와 성장의 글쓰기 2

죽고 싶었던 수백 번의 순간들

 

"OO 남친 뺏었다는 애가 쟤야?"

"남자들한테 살살 꼬리나 치는 걸레 같은 X."

"도둑질하다 걸려서 퇴학당했잖아, 둘이서만 그렇게 어울리더니. 꼴좋다 아주."



중학교 내신이 좋은 편이었기에 시골에서 벗어나 중소 도시에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곳에는 대부분 남고와 여고만 있었던 반면, 내가 입학한 학교는 몇 안 되는 남녀공학이었다. 친했던 친구들과 같은 학교에 입학하지 못했던 이유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는 데 있어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경험한 부모님의 이혼과 그들의 방황으로 난 언제나 외로웠기에 그래야 했다. 체육을 곧잘 했던 동생까지 집으로부터 멀리에 있는 체중, 체고, 체대에 들어가며 난 쭉 혼자여야 했다. 그래서일까, 의지할 수 있는 친구가 항상 고팠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난 모든 수업에 능동적으로 참여했고, 동아리 활동에도 언제나 열심이었다. 댄스 가수들을 동경해 왔으나 춤을 잘 추지는 못했기에 춤이 배우고 싶었다. 부끄럼 많았던 성격 탓에 어색하게 이리저리 움직이는 거울 앞 내 모습을 바라보는 일도 나에게는 절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꽤 오랫동안 고민을 해야 했다. 고심 끝에 댄스 동아리에 지원했고, 지원자 부족을 이유로 오디션 없이 동아리에 조인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었지만, 돌이켜보니 그게 화근이었다. 그 일이 재앙의 씨앗이 되어버릴 줄이야.


수학여행 일정이 나왔다. 인원이 많지 않았고, 부족한 인원을 더 채워야 했기에 홍보가 절실했다. 선배들의 간절한 요청으로 동아리원 모두가 장기자랑에 나가기로 했다. 우리 팀이 그때 준비한 노래는 박지윤의 <성인식>이었다. 안무 중간중간 다소 민망한 자세가 나오기는 했지만, 긴바지를 입고 추기로 하여 괜찮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동작들이 댄스 초보인 우리들에게 쉽게만 느껴졌다. 느린 비트와 어렵지 안무 덕에 나를 포함한 3명의 의견이 <성인식>으로 모였다. 매일 강당에 모여 동선을 맞췄고, 서로의 안무를 확인해 주며 최선을 다해 연습했다. 그 덕에 수학여행 장기자랑 당일, 무대에서 내려온 뒤 아쉬움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모든 걸 쏟아낼 수 있었다. 무대를 내려올 때 들렸던 함성 소리는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처음 서 보는 무대에서의 희열, 관람석에서 들려오는 응원과 격려의 소리가 주는 짜릿함, 함께 했던 친구들 사이 생겨버린 끈끈함은 내가 다시 태어났음을 알리는 신호 같았다. 중학교까지는 책을 좋아하고 공부 잘하는 키만 큰 찐따 같던 내가 동학년 모두에게 춤으로 나를 알렸고, 그들로부터 받은 박수와 함성은 나 스스로가 꽤 괜찮은 사람인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수학여행 이후, 나와 친해지려고 하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이전과는 달리 호의적으로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네거나, 이전과 다른 친절을 베푸는 그런 아이들 말이다. 남녀 가릴 것 없이 그리고 반 구별 없이 저 멀리 끝반에서부터 나를 보겠다고, 친구 하자고 오는 아이들도 있었다. 소위 말하는 노는 무리의 여자 아이들도 나에게 손을 먼저 내밀었고, 그 손을 굳이 거부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그들이 나쁜 서클에 가입이 되어 있던 그런 부류는 아니었다. 게다가 중학교 때까지는 나도 그런 무리에서 좀 있어 보이는 친구들과 함께 다니는 상상을 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으니까. 무엇보다 학교 생활을 재미있고 편하게 하고 싶었다. 단짝 친구가 학교에 나오지 않은 날은 온종일 입도 뻥긋하지 못하는 날이 되어버리는, 그런 하루는 더는 만들고 싶지는 않았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고 싶었다.


"쟤야, 수학여행 때 맨 앞에서 성인식 춘 애."

"가까이서 보니까  X나 더 날씬하네, 다리도 겁나 길어."


난 알지 못하는데 그들은 날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속닥거림은 내 기분을 상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나에 대한 칭찬이 대부분이었기에 그 귓속말들은 내가 뭔가라도 된 듯한 우월감을 주었고, 없던 자존감을 부쩍 상승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그런 와중에 내 위에 머리 하나가 더 얹어진 듯 키가 큰 여자애 하나가 나와 친해지고 싶다고 말을 걸어왔다. 나보다 키가 큰 동급생 여자 아이는 처음이었다.


"너 좀 멋있더라. 나 너랑 친해지고 싶어."

"아, 고마워. 그래, 친구 하자."


그녀는 큰 키만큼이나 성격도 시원시원했다. 같은 중학교에서 온 친구도 많았고, 이곳에서 새로운 친구도 많이 사귀었다고 했다. 난 그 친구 덕에 1반부터 끝반까지 각 반 모두에 친구가 생겼고, 당시의 SNS인 다모임과 싸이월드에서 핫하다는 다른 학교 아이들과도 만남을 갖기도 했다.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경험을 하며 제대로 인싸가 되어버렸다. 매일 학교 가는 길이 즐거웠고, 내 마음속엔 설렘이 가득했다. 성적은 점점 떨어졌지만 전에 없던 행복을 느낄 수 있었기에, 엄마와 담임의 잔소리쯤은 견딜 수 있었다. 내 인생에서조차 언제나 들러리였던 나였다. 그런 내가 드디어 주연을 맡았고, 주인공이 된 느낌의 그때가 좋았다. 조금만 더 놀고 공부를 해야지 싶었다. 중학교 때까지는 반에서 1등까지는 못해봤지만, 2~3등은 언제나 내 것이었기에 금방 따라잡을 수 있겠다 싶었다.



얼마 뒤 나에게는 남자 친구가 생겼다. 동급생의 다른 반 아이였는데, 나처럼 키도 컸고 운동을 좋아해 몸도 좋은 아이였다. 운동을 유난히도 잘하던 아이였다. 나에게만 직진하는 남자다운 모습과, 여러 차례 편지로 전해왔던 따뜻한 그의 마음에 반해버렸다. 모델 커플이라며 너무 잘 어울린다고 친구들이 부러워했다. 나 또한 그가 내 남자친구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몰래 만남을 이어오다 친구들에게 공표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을 즈음, 이상한 소문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내가 친구의 남자친구를 빼앗아 사귀고 있다는 소문 말이다. 당사자의 귀에 들어왔으니, 이미 소문은 전교에 깔리고 깔렸을 것이 분명했다. 난 그 친구가 누군지를 찾아야 했다. 알고 보니 그녀는 내 친구의 친구, 나는 그 애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 둘이 사귀고 있는지도 몰랐던 건 당연했다.


"□□□가 악의적으로 소문을 내고 다녔을 거야. 내가 너랑 친한 거 엄청 싫어했거든."


학교에서 이름 좀 날리던 여자애들 무리에서 나와 큰 키의 친구는 자연스럽게 배제되어 버렸다. 노는 무리에서 리더 역할을 맡고 있던 아이는 큰 키의 친구가 나와 어울리는 걸 못마땅해했다고 했다. 그녀는 그걸 알면서도 내가 좋았기에 나랑 계속 친구가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던 와중에 리더 역할을 하던 아이는 마침 자신의 친구와 헤어지자마자 나와 사귄다고 하니, 타이밍은 이때다 싶었던 것 같다고 했다. 나의 남자친구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헤어진 지는 한두 달 되었으니, 내가 뺏은 게 아니라고 말해줬다. 그 사실을 들고 가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그녀에게 가서 따져봤지만 소용없었다. 그녀 뒤에는 힘이 센 친구들이 버티고 있었기에, 나의 외침에는 아무런 힘이 없었다. 그래도 뭐... 괜찮았다. 나에게는 진짜 친구가 있었고, 나를 많이 아껴주는 남자친구도 있었으니.




"나 자퇴할 거야."


얼마 뒤, 갑작스러운 키 큰 친구의 한마디 말에 난 그 자리에 얼어붙어버렸다. 비장한 각오와 결심으로 말을 하는 게 아니라, 펑펑 울면서 하소연을 해왔다. 기숙사에 살고 있던 그녀가 도둑으로 몰려서 억울하다고, 그래서 자퇴를 하겠다고 말을 해왔다. 억울함을 만들어 낸 당사자는 우리가 동급생 모두로부터 소외받게 만들었던 그 주동자라고 했다. 내 루머를 만들고 여기저기 퍼뜨렸던 그 아이 말이다. 그 애가 자신에게 누명을 씌웠는데 선생님들이 믿어주지 않는다고 말하며 꺼이꺼이 울었다. 모두가 나에게 등을 돌렸을 때 나에게 손 내밀어준 유일했던 친구, 그녀가 내 앞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며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지만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같잖은 위로 따위는 그녀에게 그 어떤 도움도 되어주지 못했다. 그냥 그녀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내 유일했던 친구는 퇴학을 당하기 전, 자퇴서를 제출했다고 했다. 그녀의 쿨함이 마지막까지도 묻어나는 대목이었다.


그렇게 난 진짜 외톨이가 되어 버렸다. 나의 유일무이한 친구가 사라지고 나니, 더욱 악의적인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내가 남자를 너무 좋아해서 각 학교의 잘생긴 친구들과 모두 자고 다닌다는 소문 말이다. 결단코 난 어떤 남자와도 그런 경험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루머는 사실처럼 마구 퍼져 나갔다. 결국 난 남자친구와도 헤어져야 했고, 아무도 내 곁에 다가오지 않기 시작했다. 아니, 날 멀리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날 벌레라도 본 듯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길지 않은 단발머리로 내 앞의 시야를 가리고 다녀야 했고, 그때부터 목에 무리가 가기 시작했다. 지금도 내 어깨는 앞쪽으로 오그라들어 있고, 목은 앞으로 쭉 뻗어져 있어 경추 질환으로 매년 서너 번씩 추나 또는 도수치료를 받으러 다니고 있다. 난 그들의 시선과 속삭임이 너무도 무서웠다. 내 귀를 틀어막을 수 있다면 잘라서라도 없애버리고 싶었다.



"걸레 온다. 냄새나니까 우리 저기로 가자. 더럽다, 더러워."

"X발, 저 X을 오늘 두 번이나 봤어. 퉤!"


차라리 속닥거리면서 들릴 듯 말 듯한 험담은 나았다고 생각했다. 아예 면전에 대놓고 하는 욕도 있었고, 말도 안 되게 자신을 욕하고 다닌다며 나를 괴롭힐 심산으로 학교 뒤로 불러내기도 했다. 선생님들에게 알려 폭행은 막을 수 있었지만, 이후 지나가면서 툭 치거나 면전에 대고 욕을 내뱉는 그런 부류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런 일들이 잦아지자 더는 학교를 다닐 수가 없었다. 부모님에게 전학을 보내달라고 했지만, 그 이유는 도저히 말하지 못했다. 턱 끝까지 그 말이 차올랐지만 결국 입 밖으로 꺼내놓지 못했다. 모든 결과를 내 탓으로 돌리곤 했던 엄마에게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이 정말이지 두려웠다. 그렇게 난 그냥 견뎌야 했다. 죽고 싶었던 순간들은 셀 수도 없었고, 그들 앞에서 죽어버리는 상상을 수백 번은 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복수라고 생각했기에. 기억을 도려낼 수 있다면 그때의 2년 6개월을 통으로 날려버리고 싶다. 지금 와서 말이지만 신이 있다면 물어보고 싶다. 왜 하필 나였냐고, 왜 날 그 지옥 불구덩이 속에 던져놓았냐고 따지고 묻고 싶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을 했기에 언제나 날 불행 속으로 처박아 놔야 했는지를 말이다.


이전 07화 치유와 성장의 글쓰기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