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앰버서더 선정
매일의 감정에 충실하여 휘리릭 썼던 글에 완성도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럼에도 출간이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에 갈고닦아보기로 했다. 모난 구석이 많고 어지간히도 볼품없던 돌멩이가 점차 둥그스름한 모양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한 손에 착 감기는 느낌을 내지는 못했지만, 안정적으로 쥘 수 있는 돌이 되었달까. 기막힌 서사가 있거나 머릿속에 그림이 절로 그려지는 맛깔난 표현들이 들어간 원고는 아니었지만, 쉽게 읽고 공감할 수 있도록 스토리 구성과 전개에 크게 신경을 썼다. 잘 가다듬은 습작이 세상 밖으로 얼굴을 빼꼼 내밀 그날을 마냥 기다리겠노라 다짐했고, 그렇게 에세이 공모전 두 군데에 지원을 하게 되었다. 이후 목 빠지게 기다렸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No'다. 아이들을 키우느라 그리도 좋아했던 책과 자연스럽게 멀어졌고, 에세이라는 장르를 거의 경험해 본 적이 없었기에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단 1도 기대하지 않았던 것 같다(좋은 경험이 되겠거니 하면서 말이다).
게다가 갑작스럽게 다시 회사를 다니게 되면서 공모전에 원고를 냈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았다. 새로운 직장에 빠르게 적응하고 맡은 바를 잘 해내고 싶었기기에 여느 때와 같이 열정을 쏟고 있던 어느 날의 정오. 휴대폰 진동이 유난히도 길게 울렸다.
"여보세요?"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쿠팡 반품 회수 일정이 당겨져 지금 당장 문 앞에 내놓으라는 기사님의 부탁, 또는 나도 모르게 수락해 버린 마케팅 수신 동의로 인한 광고 전화. 그러나 예상 밖의 멘트가 흘러나왔다.
"안녕하세요, OOOO 출판사입니다. 보내주신 원고 잘 보았습니다. 자사의 출판 앰버서더로 선정되어 전화드렸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마케팅 담당자라고 소개하는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진실 여부 확인이 필요했다.
"네? 제가 맞아요?"
"네, 맞습니다. 기뻐하시는 것 같아 다행이네요(웃음). 메일 하나 보내드렸습니다. 계약 조건 등이 기재되어 있으니, 보시고 진행 가능여부 회신 부탁드릴게요."
통화를 마치고도 사실이 믿기지 않아 얼떨떨한 기분으로 오후를 보내야 했다. 무슨 정신으로 이후의 일정을 소화했는지 지금도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아직 계약서에 도장을 찍지도 않았으니, 동네방네 소문을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못한 채 몇 시간을 혼자 히죽거리며 웃고 있어야 했다.
서너 시간이 지났을까. 메일 앱 알림이 도착했다. 새로운 메일이 도착했음을 알리고 있었다. 네이버 육아 인플루언서 4년 차, 하루에 10통 가까운 문의 메일을 받고 있었기에 원고 의뢰 또는 협찬이라고 생각하고 메일을 열었다.
'읽고 이해하기 쉽게 잘 쓰인 글로 작가의 성장기와 치유의 과정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비슷한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게 작은 희망을 주고 공감할 수 있는 글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지원했던 에세이 공모전 모두에 당선이 되었다는 연락을 같은 날 받게 되다니, 내가 아직 꿈속에 있는 건가 싶었다. 양손을 펴고 제법 힘을 주어 양 볼을 툭툭 때려보았다. 책 속에서는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때는 이렇게 한다고 배웠기에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볼따구가 아파왔다. 생시가 틀림없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나에게 행복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출판사들 각자의 일정에 차질이 없으려면 빠르게 결정해 주는 게 맞겠다 싶었다. 어떤 출판사와 계약을 해야 하지. 지금도 사실 잘 믿기지는 않는다. 꽁꽁 숨겨두고 나만 주야장천 볼 줄 알았던 습작 원고가 반란을 일으킬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