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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별 Sep 23. 2024

엄마가 작가시구나

우리 엄마가 쓴 책이에요


'띵동'


첫째의 여섯 번째 생일 선물이 집 앞에 도착했다. 택배 기사님이 보낸 반가운 메시지. 첨부된 사진 속에는 작은 택배 박스 하나바닥에 대충 널브러져 있었다. 마구 던져지며 새 책이 혹여 구겨지지는 않았을까, 염려 가득한 손길로 박스를 조심스레 열어보았다. 뽁뽁이를 잔뜩 넣어 보낸 덕에 훼손되지 않은 새 책을 받아볼 수 있었다. 천만다행이었다.


그녀에게는 기다림마저도 달콤했던 걸까. 택배가 일찍 도착했다는 걸 알렸지만 생일 당일 아침에 책을 꺼내달라는 주문이 있었기에 책을 꽁꽁 숨겨놓아야 했다. 종종 깜빡 병이 발현되는 탓에 혹시 숨겨놓은 장소가 기억에서 사라질까 휴대폰 메모장에 기록까지 남겨두었다. 빠르게 찾고자 최상단에 위치하도록 만드는 고정 작업도 잊지 않았다.




"엄마~!"


드디어 디데이, 손꼽아 기다렸던 첫째의 생일 아침이 밝아왔다. 그 어느 때보다 일찍 눈을 뜬 아이는 방문을 열자마자 큰 소리로 나를 찾았다. 밤새 건조해졌을 목을 축이라며 미지근한 물 한 잔을 먼저 건넸고, 이어 그녀의 펼쳐진 두 손바닥 위에 수줍게 책을 올려주었다.


"대박! 엄마가 표지도 만들었어? 글씨도 그림도 색깔도 모두 다 예뻐!"


이어지는 화끈한 그녀의 칭찬 공격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 지경이었다. 지난밤 그리 늦게 잠들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이리도 빨리 일어났냐고 물었더니, 책을 다 읽고 학교를 가려고 생각하며 잤더니 일찍 눈이 떠졌다고 했다. 개인 소장용이었기에 중간중간 인터넷에 떠도는 일러스트를 삽입하기도 했는데, 그림 하나하나 스토리와 잘 연결된다며 극찬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독서의 시간. 133페이지의 동화를 무려 30분 만에 다 읽어버렸다.


"엄마, 이야기가 너무 슬퍼. 결국 엄마랑 헤어졌잖아."

"엄마가 혹시라도 네 곁을 떠나더라도, 엄만 항상 네 옆에 있을 거야. 그렇기에 언제나 우린 함께일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어."


나의 분신과도 같은 너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동화 속에 담아봤다며 슬쩍 이야기를 꺼내봤다.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는 첫째의 모습에 괜스레 웃음이 났다. 6주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완성했던 스토리를 온전히 다 받아들이고 느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게다가 그녀가 나의 첫 독자가 되어주었다는 사실에 왠지 모를 편안함과 따스함이 느껴졌다.


"엄마, 나 학교 가져가서 또 보고 싶어요."


우리 엄마의 선물은 이렇게 특별하다며 친구들에게 뽐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아침 독서 시간과 쉬는 시간에 보겠다는 아이를 나무랄 이유가 전혀 없었기에 책가방 속에 쏙 넣어주었다.




그날 저녁, 식사 준비로 한창 바쁘게 움직이던 시간에 선생님으로부터 톡 하나가 도착했다.


'어머니, 오늘 OO이가 책 한 권을 가져와서 살짝 보여줬는데 어머님께서 쓰신 책이더군요. 너무 놀랐습니다. 어머님 작가셨군요! OO이가 엄마의 재능과 따뜻한 마음을 물려받았나 봅니다. 너무 존경합니다!'


첫째를 불러 자초지종을 들어봤다. 친구들에게 엄마가 쓴 책이라며 자랑을 늘어놨고, 이를 들은 선생님이 "엄마가 작가시구나!"라며 말을 걸어왔다고 한다. 이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그냥 선생님을 보며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는 첫째의 귀여운 대답에 웃음이 터져버렸다.


"엄마가 작가였으면 좋겠어?"

"응! 엄마 책 너무 재미있어. 나만 보기 너무 아까워. 이거 서점에서 팔면 좋겠어. 내가 10권은 사줄 수 있어!"


얼마 되지도 않은 자신의 용돈으로 엄마의 책을 다 사버리겠다는 그녀의 포부가 정말이지 멋지게 느껴졌다.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 소원 하나쯤 들어줘도 되지 않을까. 아니, 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연애 소설을 썼던 몽글몽글하던 소녀 시절감성을 다시금 꺼내보기로 했다. 매일같이 아이에게 읽어주던 동화를 직접 쓰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첫째의 생일인 작년 겨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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