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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별 Sep 16. 2024

혹여 내가 널 떠나더라도

희망만큼은 절대 잊지 않도록


첫째의 여덟 번째 생일을 6주 앞둔 어느 날이었다. 당시 매주 1~2회 아이들과 도서관을 다니고 있었고, 그날도 도서관에서 다양한 책들을 꺼내 보며 나름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초등 저학년 동화를 주로 보던 첫째는 책을 보다 갑자기 손바닥으로 책갈피를 만들며 펼쳐진 책을 반으로 접더니,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엄마, 이번 내 생일 선물은 뭐야?"

"받고 싶은 게 있구나?"


보던  속 주인공이 원하던 생일 선물을 받은 걸까? 아니면 생일 선물을 소재로 이야기가 쓰였는데 그게 또 재미있던 걸까? 갑작스러운 첫째의 질문에 적잖게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아직 첫째의 생일은 무려 6주나 남았기 때문이었다.


"엄마, 나 받고 싶은 선물이 생각났어. 이 책이 너무 재미있는데, 이건 이미 봐 버렸잖아. 그래서 이것만큼 재미있는 아직 한 번도 보지 않은 책을 선물 받고 싶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처음 맞는 아이의 생일을 위해 무언가 특별한 선물이 하고 싶어졌다. 입학 초에는 한쪽 눈에 운동 틱이 발현되어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고, 그게 유독 긴장이 심한 성격 탓이라는 걸 알았기에 첫째를 향한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그랬던 첫째는 다행스럽게도 학교 생활에 빠르게 적응을 했고, 친구들 사이에 나름의 인싸 역할을 해가며 좋은 대인관계를 유지해 갔다. 그런 아이가 참 기특했고, 어려움을 스스로 이겨낸 것에 크게 고마웠다. 그랬던 이유에서 첫째의 생일 선물에 다른 때와는 다른 특별함을 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 와중에 첫째가 콕 집어 '책'을 선물 받고 싶다며 의견을 제시해 왔기에, 구체적인 고민 시작해야 했다. 어떤 책을 사주면 좋을까. 책으로는 좀 아쉬운데.. 사실 아이가 좋아할 만한 주제의 책들은 전국 서점에 차고 넘쳤다. 게다가 그 책들은 커피 두세 잔의 금액만 지불한다면 언제든 게 구매할 수 있을 테니, 큰 감흥을 전달할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날 저녁, 아이들을 재우고 평소처럼 SNS를 하고 있었다. 노트북으로는 첫째의 선물을 고르느라 스크롤을 수도 없이 내리고 있었고, 휴대폰으로는 인스타그램 릴스를 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뜬 영상에 그만 눈물을 펑펑 쏟아버리고 말았다. 교통사고로 갑작스레 엄마를 잃은 어린아이의 영상이었다. 슬픔을 더욱 참기 힘들었던 이유는 아이가 엄마의 사진 앞에서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엄마와의 헤어짐이 더는 슬프지 않은 이유는 그 기간이 길어져서였을까, 아니면 슬픔을 억지로 참기 때문이었던 걸까.


다음 날 아침, 첫째의 여덟 번째 생일 선물에 대한 결정을 내렸다. 그토록 받고 싶어 하는 동화책을 직접 써보기로 했다. 전날 보았던 아이의 영상이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아이들의 곁을 지키지 못하게 될지라도, 이 세상을 굳세게 잘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속삭이듯 이야기를 남기고 싶었다. 꿈을 향한 열정이 좌절로 돌아올 때,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게 될 때 혹여라도 엄마가 이 세상에 없더라도 희망만큼은 절대로 잊지 않도록 메시지를 전달하는 동화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6주간의 동화 집필이라는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D-day가 정해져 있었기에 첫 도전이라는 궁색한 변명으로 생일날 선물을 안겨주지 못하는 불상사는 만들지 않아야 했다. 주차가 쌓여갈수록 새벽까지 작업을 하는 날들이 점점 늘어만 갔다. 그럼에도 이상하리만큼 피곤하지 않았고, 높아지는 완성도에 행복감은 점차 커져만 갔다. 비록 서점에 진열되는 도서는 아니었지만, 내 이름을 표지에서 발견할 상상을 하니 자꾸만 입꼬리가 실룩거렸다. 첫째의 생일을 일주일 남기고 주문을 넣을 수 있었고, 덕분에 주문한 2부의 책이 예상보다 일찍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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