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발단
본격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게 된 건
시상식 참석을 위해 국회의사당으로 향하고 있던 기분 좋은 오후였다. 일찍 도착하여 배부른 외식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들어서던 나를 향해 남편이 물어왔다.
"자기, 꽃다발 산다고 하지 않았어?"
맙소사. 깜빡병이 또 도져버렸다. 첫째의 첫 수상을 축하해 주러 가는 자리인데, 꽃이 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사장님, 지금 바로 포장 가능한 꽃다발이 있을까요? 네, 그걸로 해주세요. 10분이면 도착해요. 급해서요, 최대한 빨리 부탁드려요."
부랴부랴 전화 예약을 하고 20분 만에 꽃다발 픽업을 완료했다. 혹여라도 차가 막혀 입장이 늦을까 심장이 쿵쾅거렸지만 이내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싱그러운 꽃내음이 차 안을 가득 채운 덕에 모두의 마음에 여유로움이 봉긋 피어날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최종 목적지는 국회의사당 의원회관. 어린이 독후감 대회에서 동상을 수상한 첫째는 아침부터 지금껏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하루 온종일 기분이 좋을 만도 했다. 생애 처음 상을 타는 데다가 시상식 이벤트도 다채로이 준비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클레이 만두 만들기, 퀴즈 풀고 선물 받기, 책 속 캐릭터들과 사진 찍기, 어린이 마술쇼와 다양한 먹거리까지 잔뜩 준비가 되어있었다. 이 모든 걸 다 즐기고 나서도 한참 후에야 수상의 영광을 맛볼 수 있었다. 수상자들이 많았던 탓에 차례가 생각보다 늦게 돌아왔다.
"□□초등학교 1학년 ○○○, 수상을 축하합니다."
상장과 메달을 받고 기념사진을 찍는 첫째의 모습에 뭉클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한없이 작고 여리기만 했던 아이가 이렇게나 금세 커버리다니. 게다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글로서 멋지게 표현할 줄 아는 어린이로 성장했음에 깊이 감격하고 있었다.
"엄마 메달 좀 봐도 돼?"
시상대에서 이미 읽어주었기에 상장의 내용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메달은 달랐다. 마라톤 대회가 아님에도 초등학생들에게 메달씩이나 준다는 게 놀라웠던 나는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다. 무슨 문구가 어떻게 쓰여있을지가 궁금했다.
"엄마, 내가 부럽구나? 엄마도 독후감 대회에 나가 봐. 엄마는 나보다 글을 더 잘 쓰니, 큰 상을 받을 수 있을 거야."
풉 하고 웃어버렸다. 키는 3학년만큼 커서는 귀여운 구석이 제법 많은 녀석이다. 네가 자랑스러워서 메달이 궁금했던 거라고 말했더니 옅은 미소를 띠고 끄덕끄덕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래, 성인부 독후감 대회가 있을 수 있겠구나. 아이의 말대로 잠시 상상해 보았다. 시상대에 올라 상장을 받은 뒤 꽃다발을 안고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뜨겁게 타오르는 기분이었다. 머릿속에 그림을 그렸을 뿐인데도 스스로가 괜스레 멋지게 느껴졌다. 그날의 대화가 사건의 발단이 될 줄이야.
닥치는 대로 쓰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림을 한글이라는 도구를 활용해 하얀 도화지에 스케치했고 색을 입혔다. 영감이 떠오를 때면 이를 놓치지 않고자 휴대폰 메모장을 켰고, 아이들을 재운 후 나만의 상상 속 공간으로 행복한 여행을 떠났다. 주 1~2회 동네 도서관을 다니며 손에 잡히는 책들을 몽땅 빌려왔다. 많이 읽다 보니 딱히 막히는 구석이 없었다. 동시, 동화, 에세이까지 그냥 써 보았다. 쓰고 보니 썩 나쁘지 않았고 가다듬고 보니 봐줄만했다.
6개월 뒤, 공모전에 당선되었다는 메일과 전화를 받았다. 축하 멘트와 함께 출판을 해보자고 얘기해 왔다. 같은 날 두 곳의 출판사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