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그날도 유치원 차가 10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가장 더웠던 7월 말이라 그런지 유치원으로 직접 픽업을 오는 엄마들이 많은 모양이었다. 둘째의 하원시간과 겹치는 탓에 첫째를 위해 더 부지런히 움직이지 못하는 나 자신을 탓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며 스스로를 토닥여야 했다. 그런 탓에 8~10분씩 일찍 도착하는 첫째를 마중하고자 일찍부터 집을 나섰다.유치원 차량보다 먼저 도착했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짧았지만기다림의 달콤한 시간을 만끽할 수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샛노란 유치원 버스는깜빡이를 켜며 버스 정류장 앞에서 브레이크를 잡았다.아침과 다름없는환한 그녀의 얼굴을 보니, 어제의 근심과 오늘의 걱정이 모두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손을 맞잡고 하츄핑 주제곡을 있는 힘껏 부르며 집으로향했다.
엄마가 해주는 짜장면이 제일 맛있다고 노래를 부르던 아이들 덕에 우리 집 부엌에는 짜장 냄새가 빠질 틈이 없었다. 밀가루 음식에 대한 죄책감이 드는 날이면 짜장밥으로 메뉴를 슬쩍 바꿔 들이밀기도 했다. 그날 저녁도 1시간 넘게 짜장 냄새를 풀풀 풍겨야 했다. 엄마표 짜장면을 맛있게 흡입한 아이들은 입 주변뿐 아니라 손과 팔꿈치, 그리고 티셔츠에도 까만 얼룩을 잔뜩 묻혀버렸다. 남김없이 먹어주는 건 참으로 고맙고 기쁜 일이지만, 설거지와 아이들 목욕 외에도 빨래라는 집안일이 또 추가되었다는 사실은 부정하고 싶은 현실이었다. 춘장이 만들어낸 패브릭 위 얼룩은 애벌빨래가 필수이기에 나는 그날또 세탁기를 돌려야 했다. 얼룩 제거제로 손세탁을 한 번 거친 후에 말이다.
다음날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아이들의 컨디션 조절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누워야 함을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되뇌었다. 아이들의 피로도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엄마에게 되돌아가기 때문이었다. 피곤함을 참기 힘든 둘째는 악을 써가며 거실을 눈물바다로 만들기 일쑤였고, 작은 소음도 견디기 힘들었던 나의 달팽이관은 크나큰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괴로워했다. 새벽까지 술집을 운영하는 남편은 육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기에, 이 모든 걸 혼자 다 감내해야 했다. 아이들이 짜장면을 다 먹고 후식으로 거봉을 먹기 시작할 때식기세척기에 그릇들과 수저를 넣기 시작했고, 식세기에 넣을 수 없는 냄비와 프라이팬은 후다닥 설거지를 끝내버렸다. 이어 과일을 다 먹은 아이들을 데리고 화장실로 들어갔고, 너무 늦지 않게 샤워를 시작할 수 있었다.
첫째는 하루 온종일 책을 끼고 살았았으며, 한 번 본 것들은 기억에서 지우는 일이 거의 없었기에 머릿속에축적한 지식을 상대방과 공유하는 걸 좋아했다. 게다가 궁금한 것에 대해 반드시질문을 던져야 했기에 입이 쉴 틈이 없었다. 샴푸를 마친 첫째에게 샤워볼로 몸에 비누칠을 해주는 도중, 갑작스러운 질문이 들어왔다.
"엄마, 엄마도 나처럼 어릴 때 꿈이 있었어?"
그날의 질문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주제를 담고 있었기에, 내가 들은 게 맞는지를 되물어야 했다.
"응?"
"엄마 어릴 적에는 뭐가 되고 싶었어?"
절대로 어려운 질문은 아니었다. 어릴 적 동네 어르신들이 자주 묻던 질문이 아니었던가.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느냐며 말이다. 그러나 비누칠이 다 끝나갈 무렵까지도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엄마는 엄마가 되는 게 꿈이었어?"
첫째는 사랑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봤고, 대답이 없자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녀의 눈망울에는 진지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 자신의 엄마가 꿈을 이루게 된 건지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엄마는 글을 쓰는 걸 참 좋아했어. 그래서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었어."
머릿속으로 수도 없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을 단축하고자 되뇌었던 결과일까, 다행히도 아이들은 저녁 9시 전에 곯아떨어졌다. 평소라면 서너 번은 만세를 외쳤을 것이고, 이후 컴퓨터 책상으로 나와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깔깔거리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어야 했다. 그러나 새근새근 잠이 든 첫째와 쿨쿨 저음으로 코를 골아대는 둘째 사이에서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아이 둘 엄마로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던진 첫째의 질문은 꽤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인적 없는 시골의 고요한 저수지에 누군가 갑작스레 나타나 묵직한 돌을 던진듯한 느낌이랄까.
어렸던 나에게도 꿈이 있었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달렸던 시절이 있었다는 걸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았다. 눈을 감고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에 상상력을 더하여 글을 써 내려갔던 때가 있었다는 걸 말이다. 차가웠고 어두웠던 현실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루에도 몇 번을 눈을 감고 꿈을 꿔야 했던 나의 청소년기가 문득 떠올라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연애도 한 번 해 본 적없으면서 연애 소설을 쓰겠다고 깝죽거리기도 했고, 지독한 사랑이야기를 완성하겠다며 엄마 몰래 새벽까지 글을 쓰다가 책상에서잠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올렸던 나의 소설이 인터넷 카페에서 긍정적인 댓글들을 받기도 했고, 시험 기간이 겹쳐 잠시 멈췄던 연재 탓에 우려와 걱정이 담긴 메일 몇 통을 받아봤던 기억도 있다. 나도 남들보다 조금 더 잘하는 분야가 있구나. 글쓰기에 재능이 있구나라며 생애 처음으로 스스로를 인정하는 짜릿한 경험도 할 수 있었다.
아이들 옷에 짜장이 가득 묻어 옷에 쓰인 레터링이 가려졌듯 어느 순간 내 꿈에도 까만 얼룩이 묻어버렸고, 그 탓에 소중히 간직하던 꿈을 잊고 살아왔던 것 같다. 얼룩 제거제로 빡빡 문질러서 지워내고 세탁 후 햇볕에 널어놓으면 깨끗하게 원상 복구할 수 있는데 말이다. '나는 아이 둘의 엄마니까', '엄마는 가족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고 견뎌야 하니까'라는 얼토당토않은 변명으로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해야 했고, 매일의 루틴한 삶에 안주해 왔다. 그 탓에 틈만 나면 내 꿈을 아이들에게 투영시키려는 못된 욕망이 꿈틀거렸을 테고, 아이들의 비명과 고통으로 인한 절규는 절대로 들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꿈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엄마가 되어보기로 했다. 꿈을 이루는 내가 되지 못하면 또 어떠한가. 꿈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에서 분명 셀 수 없이 많은 것들을 얻을 것임은 분명했다. 게다가 목표를 정하고 이를 향해 열정을 다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이 또한 최고의 교육이 아닐까 싶어 도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꿈'을 묻는 딸아이의 순수했던 질문 하나에 내 마음이 크게 동요할 수 있었던 건, 기억 저편에 구겨 넣어둔 이루지 못했던 꿈에 대한 아쉬움 탓이 아니었을까. 지금의 결심이 평범하고 따분하던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줄지 또 모르는 일 아니겠는가. 만 37살의 적지도 그렇다고너무 많지도 않은 나이에 다시, 꿈을 향해 달려보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