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우리 집을 찾아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잡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음주 상태로 사고를 냈고 도주한 혐의로 즉각 구속이 되었다고. 차도 없는 그가 음주 운전을 했다는 것에 의아함을 품었지만, 도박판에서 큰돈을 잃고 홧김에 차를 훔쳐 달아났다는 소문을 듣고는 그라면 그럴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단 한순간도 술을 놓지 않았던 그였기에 그날 역시도 술에 흠뻑 취해있었을 것이 분명했다. 상상만으로도 미간이 찌푸려졌다. 오랫동안 몸에 절은 탓에 씻을래야 씻어낼 수 없는 지독한 알코올 냄새가 코를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코 안쪽 깊숙한 곳이 아파오는 기분이다. 속이 매스꺼워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놈의 술이 언제나 문제였다. 그 술이 스스로를 파멸시킬 거라는 걸 아버지는 정말 알지 못했던 걸까.
아버지를 죽이려던 계획은 마치 처음부터 없던 일이 되어버렸고, 그것을 위해 준비하던 과정들은 기억 속에서 지워져 버렸다. 드디어 세상의 신들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그들을 깔보고 우습게 여기던 그동안의 나의 불손한 태도에 대해 사죄라도 해야 했다. 그들은 단지 시기적절한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뿐,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권선징악을 주제로 한 전래동화와도 같은 일이 지금 내 앞에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가 않았고, 지극히도 평범한 내일을 꿈꿀 수 있는 현실을 마주하였음에 가슴에서 무언가가 울컥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들이 정확히 어떠한 것인지 설명하기는 어려우나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왔던 서러움, 슬픔, 울분, 분노 등에 대한 감정들의 잔해쯤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음주 운전과 뺑소니 사고는 중대한 범죄 행위였기에 그는 구속을 피하지 못했다. 게다가 피해자의 사망으로 일은 더욱 커져버렸다. 도로교통법 위반과 그 외 가중 처벌에 따라 무기징역까지도 받을 수 있다고 들었다. 아버지는 음주를 하지 않았다며 발뺌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음주 운전은 아니나 사고 당시의 기억은 나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를 담당하던 국선 변호사가 사임을 신청했고, 법원의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CCTV, 목격자 등의 명명백백한 증거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 지금의 상황들은 그가 더는 재활용조차 불가능한 쓰레기임을 증명하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사고의 피해자가 그 자리에서 숨을 거뒀다고 했으니, 그가 감옥에서 평생을 썩어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드디어 그와의 악연을 끊어낼 수 있게 되었다. 그 누구의 억압이나 참견 없이 하늘 위를 날 수 있는 자유로움을 얻었음에 마냥 기쁘고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하루라도 더 빠르게 계획을 실행했더라면, 애먼 사람이 피해를 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피해자의 죽음과 유족들의 슬픔이 꼭 나로 인해 벌어진 일인 것만 같았고, 부정할 수 없는 그 현실이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돌아가신 그분 덕에 할머니와 내가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음은 분명했다. 그에 따른 결과로 단 한 번도 상상하지 않았던 자유를 얻었기에 천근만근 무거워진 마음을 안고 살아가기로 했다. 이런 감정을 갖는 것만으로도 고인에게 위로가 된다면 내 몸뚱이가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마음 깊이 죄송만만한 마음을 가져보리라 다짐해 본다.
"들었어? 하동빈 아빠가 사람 죽인 거?"
"그러니까. 음주 운전이라며."
"오늘 재수 더럽게 없네. 저 새끼를 벌써 두 번이나 봤어."
"야, 저기로 돌아서 가자.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
그가 구속이 된 지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학교에 소문이 쫙 퍼져버렸다. 사람들은 아들인 나보다 더 빠르게 관련 소식을 업데이트하고 있었다. 그가 붙잡혔던 장소가 또다시 도박장이었다는 건 나도 알지 못했던 사실이다. 뺑소니 사고로 뉴스며 기사에서 매일 같이 자신의 이야기를 떠들고 있었음에도, 경찰이 대대적인 수색을 벌이고 있던 와중에도 또 그곳을 찾았다는 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는 인간이길 포기한 걸까, 뇌 구조가 일반인과 어떻게 다르면 그런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할 수 있는 걸까. 다시 태어난다면 과학자가 되어 그의 뇌를 열고 연구해 봐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연구할 거리가 차고 넘칠 것임이 분명했다. 어쨌거나 아버지에 관한 소문은 모두 사실이었다. 가짜 뉴스가 창궐하는 요즘, 살을 덧붙인 루머가 확산되지 않고 있음에 감사해야 하는 걸까.
나에게는 '살인자 아들'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버렸다. 그런 탓이었을까. 함께 운동하며 서로를 응원하고 격려하던 친구들마저 나에게서 등을 돌렸다. 우리가 함께 땀 흘리던 그 많고 많은 시간들이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린 기분이 들었다. 평생을 함께 하자며 서로를 토닥여주던 몇 안 되는 나의 죽마고우들 마저도 날 멀리하기 시작했다. 이름을 불러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고, 메시지나 전화에도 회신이나 응답은 전혀 받을 수 없었다. 그들에게 난 투명 인간이 되어버렸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보이지 않고, 함께 숨은 쉬지만 들리지 않는 난 투명 인간이었다. 차라리 그렇게라도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하는 건 괜찮았다. 그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니까. 무서움을 느낄 수도 있고, 역겨움을 느낄 수도 있는 데다 그 감정은 온전히 그들의 것이기에 내가 관여할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던 친구들로부터 받았던 냉정함은 그런대로 견딜만했다. 그러나 나를 잘 모르던 사람들로부터 오는 비난과 폭력은 점점 힘에 부쳐 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에게 침을 뱉거나, 밀치고 넘어뜨리거나, 조용한 곳으로 불러 무작정 때리고 짓밟았다. 폭력을 가하는 무리들은 반드시 이유를 달았다. '정의 구현'이라는 명목으로 폭력을 정당화했다. 날이 갈수록 강도가 높아지는 탓에 온몸에 멍과 상처가 사라지는 날이 없었다. 아버지로 인해 그려졌던 몸에 있던 자국들이 사라지기도 전에 내 몸뚱이를 또 다른 이들에게 내어주어야 했다. 이번에는 머릿수가 더 많아졌기에 고통이 배가되었다. 밤마다 통증을 참아내는 일에 모든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하루를 고단하게 보내고 지쳐 쓰러져버린 할머니의 단잠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에, 이를 악물고 그냥 견뎌야 했다.
"동빈이 할머니, 알고는 계시냐구요. 여기요, 댁들 때문에 살인자 동네가 되어버렸어요."
"이사 갈 거죠? 대체 언제 갈 건데요. 당신들 마주할 때마다 소름 끼치게 무서워요."
할머니가 사람들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다. 자그마하고 가녀린 할머니가 바람에라도 날아갈까, 뜨거운 햇볕에라도 녹아버릴까 늘 걱정했고 염려했건만 동네 사람들에게 매일같이 저런 취급을 당해 왔던 걸까. 나만 참고 견디면 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의 말에 틀린 부분을 찾기는 어려웠으니 말이다. 아버지가 음주 운전으로 사람을 죽였고, 그로 인해 내가 살인자의 아들이 된 것은 사실이었기에 딱히 부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사고 피해자를 내가 만들어냈을 수도 있다는 자책과 아버지와의 악연을 끊어낼 수 있었음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그런대로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할머니에게도 같은 폭력이 일어나고 있었음을 내 눈으로 확인했기에, 지금 이 순간부터는 절대로 참지 않을것이다.
"우리도 아줌마들과 엮이고 싶지 않아요. 이사 갈 거니까 더는 할머니 욕보이지 마세요. 한 번만 더 이런 말을 듣게 한다면 가만히 있지만은 않겠어요. 아시잖아요. 저 하기수 씨 아들이라는 거."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막 내던져 버렸다. 화가 치밀어 올라 참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는 상추, 가지, 애호박 등의 좌판에 깔린 채소들을 빈 봉지에 대강 쓸어 담고, 할머니 손을 잡고 집으로 향했다. 씩씩거리는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말들이 뒤통수로 날아와 박혔으나 듣지 않으려 애썼다. 각종 욕들이 난무했지만 빠른 걸음으로 보폭을 넓혔던 덕에 내 고막에까지 닿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할머니 역시도 그 험한 말들을 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린 계속 나아갔다. 조만간 떠나야 할지도 모를 소중한 보금자리를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