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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육토피아 15화

처음이기에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by 안개별


2016년 12월, 이틀간 내리 진통을 하며 힘겹게 첫째 아이를 품 안에 넣었다. 두려웠지만 설레었고, 비릿했지만 싱그러웠던 그날을 여전히 기억한다. 처음으로 누군가의 우주가 된 그날을.


3박 4일간의 입원을 마친 뒤 집으로 돌아왔다. 만지면 부서지고 깨어질까 귀하게 어르고 달래 가며 아기를 돌봤다. 그러나 난생처음 돌보는 아기에게 부모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란 불가능했다. 책에서 본 것과 실상은 사뭇 달랐다. 배웠던 대로 자세를 잡고 수유 쿠션 위에 아기를 올려 수유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오물거리던 입을 쩍 벌린 채 울기 바빴다. 잘은 모르겠지만 울분이 섞인 목소리가 담겨 있는 것은 확실했다. 배가 고픈데 빠는 게 어려운가 싶어 다시 자세를 고쳐 잡고 수유를 계속했다. 관자놀이를 타고 굵은 땀줄기가 스멀스멀 흘러내리더니 등짝이 온통 젖어버렸다. 온몸의 모든 땀구멍이 열린 것 같았다. 이후 몇 번이고 아기는 입을 뗀 채 자지러질 듯 울어댔지만 억지로라도 먹여야 했다. 마치 창과 방패의 싸움 같았다.


얼마 뒤 예방 접종을 위해 방문한 병원에서 된통 혼이 났다. 아기에게 탈수가 왔고, 몸무게가 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모유의 양이 수유할 만큼 충분치 않았던 탓에 배고픈 아기는 울고 또 울었던 것이다. 황망하게 그저 울기밖에 하지 못했을 아기의 마음을 감히 떠올리기조차 죄스러웠다. 너의 하늘이 되겠노라, 우주가 되겠노라 언약했지만 지켜내지 못했다. 완벽한 엄마가 되어주겠다는 결심과 각오는 작심삼일로 끝나 버렸다. 병원을 다녀온 그날부터 충분히 배부를 정도로 분유를 먹였다. 슬픔과 분노가 가득했던 아기의 울음은 더는 들리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기 마련이다. 엄마 몸속을 비집고 나와 "응애."하고 처음 세상을 향해 소리를 내지르던 때가, 수십 번의 실패를 자양분 삼아 홀로 뒤집기에 성공하던 때가, 엄마 손을 놓고 한 발 두 발 앙증맞게 첫걸음을 내딛던 때가 있었다. 처음이었기에 서툴렀고 첫 경험은 언제나 어설펐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듯 무언가를 잘 해내려면 연습을 거쳐야 한다. 연습엔 열정과 노력뿐 아니라 충분한 시간도 필요하다. 배우고 익혀 노련해지기 위한 시간 말이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가슴은 이를 이따금씩 잊어버릴 때도 있다. 그러고선 '왜 난 안 되는 거야.' 혹은 '처음부터 하지 말았어야 했어.'와 같이 자신을 조만히 책망하기도 한다. 인간이기에 처음부터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채.



살다 보면 작은 실수에 웃기도 하고, 알지 못했던 이유로 저지른 잘못에 당황하기도 한다. 그때를 돌아보면 우려하고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사소했던 문제였다는 걸 훌쩍 시간이 지나버린 지금에서야 알게 된다. 그렇다는 건 절대로 풀 수 없는 문제가 아니라 조금만 신경을 쓰고 노력을 기한다면 쉽게 해결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완벽하지 않으면 어떠한가.


살며 살아가며 겪을 사건 사고는 앞으로도 한둘이 아닐 것이기에, 그때마다 좌절에 빠져 허우적대는 그런 삶을 살아내기에는 우리네 인생이 무척이나 짧기에. 누구나 처음은 서투르다. 그 시간 속의 자신을 보듬고 사랑할 수 있다면 보다 나은 미래가 바투 다가와 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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