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 and Life Balance
"선배님, 바쁘신데 죄송해요. 하나만 더 여쭤봐도 될까요."
내 나이 스물일곱. 이제 막 대학교를 졸업하고 인턴으로 입사한 스물넷 사회 초년생의 사수가 되었다. 당연하게도 그녀는 모르는 것 투성이었고, 계속되는 실수의 연발로 몸과 마음이 잔뜩 위축되어 있었다. 매일같이 수십 번 여기저기에서 그녀의 이름이 불렸고, 호명을 들은 즉시 후다다닥 뛰어가기 바빴다. 그녀는 곧잘 힘든 내색을 표했고 빈번하게도 상담을 요청해 왔다. 당시의 나 또한 그리 넉넉하지만은 않은 입장이었다. 가시덤불 속에서 살 길을 찾아 세상과 끊임없이 싸우고 있던 중고 신입인 내가 굵은 방울을 이쪽저쪽으로 흘려가며 하염없이 우는 그녀에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공감과 위로뿐이었다.
그때 내어줬던 마음이 고마웠는지 그녀는 당시의 일을 자주 입에 올렸다. 휴대폰 너머 주저리주저리 들려오는 그녀의 옛이야기가 듣기에 좋았다. 하염없이 맑고 투명했던 그때로 돌아갈 수 있었기에, 무일푼으로 추억 여행을 떠날 수 있었기에 그녀의 연락이 늘 반가웠다.
얼마 전 그녀는 나의 첫 에세이를 보고 감탄을 자아내며 말했다.
"난 언니가 롤 모델이에요.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그랬어요. 언니처럼 살고 싶었고, 앞으로도 그러고 싶어요."
주어진 삶을 풍요롭게 개척하고 살아가는 내가 꽤 멋진 삶을 살고 있다고 느껴졌다고. 그래서 그런 나를 닮고 싶다고 생각해 왔다며 수줍게 고백을 해 왔다. 두 볼이 발그레 달아올랐을 그녀를 떠올리니 귀엽다는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쉽지 않았을 그 말을 용기 있게 전한 것에 대한 고마움이 물밀듯 밀려왔다. 기분이 묘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참이나 그녀가 했던 말을 곱씹어야 했다. 나처럼 살고 싶다는 그 말을.
회사, 살림, 육아, 글쓰기까지. 어느 하나 부족함 없이 밸런스를 잘 유지할 수 있도록 각각에 정한 비중이 있다. 가진 에너지를 얼마큼 쏟을 것인가에 대한 비중 말이다. 그게 잘 지켜져야 어느 것 하나 무너지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늘 아쉽기만 하다. 그 어떤 것에도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한심하고 애처롭게 보였으니까. 카드 돌려 막기 하듯 부족한 곳은 그럴싸한 명분을 만들어 변명하며 꾸역꾸역 빈틈을 매워야 했다. 갑작스러운 연차 사용은 아이가 다치는 바람에 어쩔 도리가 없었고, 일찍 돌아와 함께 저녁을 먹고 실컷 놀다 자기로 했던 아이들과의 약속은 야근으로 인해 지키지 못했다. 아이 둘 워킹맘의 삶은 매 순간 맹렬하리만큼 차가웠고, 격렬하게도 뜨거웠다.
누구보다 나를 잘 알고 있는 후배가 나에게 건넨 한마디에 설움의 기억들이 또렷이 그려졌다. 아등바등 용을 쓰고 이를 악물던 시간들이, 하염없이 쪼그라들고 끊임없이 가라앉는 내 모습이. 더는 그러지 않겠노라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돌아보기조차 두려웠던 내 삶이 다른 누군가를 살아가게 만드는 이유이자 이상이라고 생각하니 내 자신을 너그러이 포용할 수 있겠다 싶었다. 더는 과거를 겁내거나 닥치지 않은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을 용기가 생겼다. '내 인생이 그리 멋없지는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온종일 머릿속을 지배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꽉 막힌 강남 한복판의 출근길. 매일 만나는 교통 체증에도 늘상 늦지 않게 출근했다. 아침 일찍 나오면 됐고, 조금의 여유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면 됐다. 그게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도로 정체는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으니까.
삶도 그렇다. 암흑 같은 터널을 걷고 또 걷는다. 새어 들어오는 빛 한 줌 발견할 수 없대도 멈출 수가 없다. 절체절명의 위기와 극단의 절망 속에 놓일지라도. 어려움의 고비를 이겨내는 방식과 시간에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 각자가 강구한 방법을 통해 난관으로부터 벗어난다. 비록 또다시 같은 상황을 직면하겠지만 우린 쉽게 삶을 포기할 수가 없다.
Work and Life Balance
워라밸. 내가 살아가기 위해, 살아내기 위해 선택한 전략이다. 모든 것에 내가 가진 에너지를 100% 다 쏟을 수는 없다. 고로 적당한 비중을 잘 분배하여 삶을 꾸려간다면, 그리고 그것에 만족한다면 썩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는 방증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