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마주하기

이유 없는 이별은 없다

by 안개꽃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은 몇 번을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어려운 일중 하나다. 이젠 예전과 달리 나이를 제법 먹었고, 그간 몇 번의 이별로 이별에 내성이 생겼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이별을 맞이하니 얄궂게도 이별엔 내성이 생기지 않는 것인지, 생각보다 아팠다.


어쩌면 이별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아 처음엔 '어? 생각보다 아프지 않네? 이별에 내성이 생긴 걸까? 아니면 그동안 내가 너무 많이 지쳤었던 걸까.' 생각하며 덤덤하다면 덤덤한 내 모습에 놀랐다. 그러다 얼마간 시간이 흘러, 조용히 잠든 휴대폰을 바라보며 점점 이별은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그간 나의 베스트 프렌드였던 그를 잃었고, 그는 더 이상 내 곁에서 조용히 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 깨달음 뒤엔, 마치 내가 어딘지도 모를 길가에 홀로 내동댕이 쳐진 음료수 캔이 된 것 같았다. 그리고 이내 서글픔이 차올라 세월의 흔적이 남겨진 내 얼굴과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와 함께한 시간만큼, 내 얼굴과 손에는 주름이 늘었고 젊음이 사라졌다.


그때부터 흔히들 말하는 '이별의 후폭풍'이 찾아왔다. 그에 대한 미련이 스멀스멀 올라오면서, 좋았던 기억들만 떠올라 지나간 추억들은 미화에 미화를 거쳐, 왠지 그를 잡아야만 할 것 같았다. 지금 그를 잡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서, 우리 관계를 다시 되돌려야만 할 것 같단 생각이 나를 사로잡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잃어버린 것을 다시 붙잡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우리가 왜 이별을 겪게 되었는지는 잊게 되었다. 그리고 재결합에 대한 희망이 마음속에 자라났다. 그리곤 슬쩍 그에게, 재결합에 대한 의중을 떠볼 기회를 노려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놓고 그에게 재결합을 논하기엔,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 큰 상처를 주었고 힘든 시간들을 보내왔단 것을 잘 알고 있다.


어릴 적엔 몇 번의 연애에서 그저 감정에 충실했다. 다시 만나고 싶으면 자존심이야 어찌 되었든, 연애 기간 동안 얼마간 아프고 힘들었든,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솔직하게 내 감정을 따랐다. 그를 붙잡고 싶으면 앞뒤 따지지 않고 붙잡았다. 가끔은 그렇게까지 매달리던 내 스스로가 비참하지 않나, 스스로에게 질문도 던져 보았다. 하지만 내 감정에 충실하게 행동하는 내가 비참하지 않았다. 해볼만큼 다 해보고 헤어진다면 아쉬움도 미련도 덜한 법이라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힘겹게 다시 붙잡고(혹은 붙잡혀서) 만남을 이어간다 한들 결국 같은 이유로 이별을 맞이하거나 이별로 발생한 균열로 인해 이별 전과 같은 관계로 돌아갈 수 없음을 깨닫고 다시 이별을 맞이했다. 그래서 나는 이별 후에 다시 만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몇 번의 연애 끝에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번이고 잡고 잡혔던 이유는, 내 감정이 아직 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질구질하다면 구질구질할 수 있는, 이별에 질척였던 지난 내 연애들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무모할 수 없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이별의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알면서, 그저 감정에 충실해 다시 시작해 보자고, 말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내가 그와 헤어짐을 결심한 데에는, 그가 나와 헤어짐을 결심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별을 받아들이는 과정 속에서 나는 그 이별의 이유를 자꾸만 망각하게 된다. 이별 후엔 대체로 미화된 추억들만 떠오르니까, 어쩌면 당연한 거겠지. 하지만 이별에는 분명한 이유가 존재하고, 그 이유들은 결코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않았고 변하지 않았다.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성과 감정 사이에서 갈팡질팡, 오도 가도 못하는 사람처럼 얼마간의 방황이 필요할지, 그 방황의 기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다.


그저 이별에는 이유가 존재한다는 것.

세상 어떠한 이별에도 이유 없는 이별은 없다는 것만 알뿐.






그저 이별에는 이유가 존재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