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의 냄새

그리운 L에게

by 안개꽃





매일 글을 쓰고 싶어서, ‘매일 그대와’라는 매거진을 만들었건만. 여러 가지 일들로 현실에 치였다는 핑계로 또 이렇게 오랜만에 글을 쓴다.
매일 글을 쓰며 나와 내 주변을 돌아보고 싶다는 나의 바람은, 너무도 큰 것일까. 내가 게으른 것일까.

아이의 하원 시간. 오후 3시. 오후 3시에 맡는 이 시간의 냄새는 내게 옛 시절의 추억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초등학교 시절 하굣길에 친구들과 학교 앞 문방구에 들러 엄마 몰래 불량식품을 사 먹기도 했고.
중학교 시절 점심 식사 후 오후 수업에는 친구들과 수업 내용은 뒷전이고 우리끼리 떠들다 혼나기 일쑤였다.

어제도 불현듯 찾아온, 오후 3시의 냄새.
나를 찾아온 오후 3시의 냄새에 문득 친구 L이 떠올랐다. 중학교 1학년 때 내 첫 짝꿍이자 고등학교 때까지 단짝이었던 친구 L.


L과 나는 20대 중반까지 서로의 단짝으로 10년을 넘게 친하게 지냈다. 그러다 서로가 여러 가지 문제(취업 문제 등)로 예민해져 있던 시절에 한 번의 큰 다툼으로 멀어지게 되었다. L과 나는 10년을 넘도록 친하게 지내온 사이지만, 단 한 번도 다툰 적이 없었다. 그런 관계였기 때문일까. L은 나와의 다툼 뒤에 곧장 연락처를 바꿨고, 나는 서로 화해할 기회조차 빼앗겨 버렸다는 생각에 L이 더 야속하게 느껴졌다. 단짝이었던 우리는 이렇게 서로의 인생에서 사라져 버렸다.

나는 화가 조금 누그러들자 금방 L의 안부가 궁금했지만 그녀의 안부를 들을 길은 없었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나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아이를 키우다 문득 학창 시절이 떠오를 때면 어김없이 나의 단짝이었던 L이 떠오른다. L은 결혼을 했을까, 아이를 낳았을까.


“만약 지금이라도 연락이 된다면, 그녀가 아직 싱글이라면, 그녀의 결혼을 축하해줄 수 있을 텐데.” 이런 아쉬움이 입술 끝에 씁쓸하게 남아버리곤 한다.

만약 그때, 내가 조금 더 성숙했더라면, 그녀와 그렇게 어이없이 멀어지지는 않았을 텐데.
그때는 나도 어렸고, 그녀도 어렸었다. 그리고 현실의 벽에 부딪치며 많이 좌절하던 시기였으니까, 서로의 마음에 여유가 없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 다시 그녀를 인생의 길목에서 마주한다면, 먼저 손 내밀 수 있을 텐데. 이런 가정도, 그녀와 다시 마주하는 상상도 수없이 해봤다.

서로의 많은 시절을 함께 울고 웃어준 친구 사이였기에, 그녀의 인생에서 행복한 순간에 축하를, 힘든 순간에 위로를 해주고 싶다는 나의 바람은, 어쩌면 나의 순수한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다른 것보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참 귀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20대까지만 해도 주변 사람들에 대한 소중함을 지금처럼 느끼지 못했다. 받았을 때보다 줄 때의 기쁨이 점차 커져가는 걸 느끼고 있으니까. 나의 이런 주는 기쁨을 나누고 싶은 친구 L. 만약 그녀와 다시 연락이 닿게 된다면, 그때 꼭 다시 글을 써야겠다. 그녀와의 재회는 마치 첫사랑을 다시 만난 듯 내게 설레는 사건일 테니까. 어쩌면 첫사랑과의 만남보다 훨씬 더 설렐 것만 같다.

오늘도 내일도 나는 한 아이의 엄마로 수많은 시간들을 채워가겠지만, 나의 마음에 파고드는 한 줄기의 볕이나 스며드는 냄새에 때론 나란 사람으로 우뚝 세워지곤 한다. 나는 이런 찰나, 순간의 순간들이 참 고맙다. 내가 나를 잊지 않고, 나란 사람으로 살아갈 힘을 보태어주니까. 부정적으로 바라본다면 예민한 나의 성격이, 엄마로 살아가며 나를 잃지 않게, 나란 사람의 감각을 여전히 날 서있게 해 주어 고맙다.






오후 3시. 그리움 한 스푼.






To. 그리운 친구 L

너에게 닿지 못할 안부지만 말이야.. 이렇게라도 너에게 몇 글자 전해봐. L아, 너는 잘 지내고 있니?
나는 아이 엄마로 평범하게 지내고 있어. 이 평범함을 지켜내는 게 내 성격에 퍽 쉽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제법 그럭저럭 잘 해내고 있단다.
나는 네가 건강하게 행복하게 지내고 있기를 바라, 진심으로. 언젠가 우리가 웃으며 만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