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개꽃 Oct 03. 2023

옷장 정리

모든 일에는 정성과 시간이 필요함을




"밀린 계절을 보내주고 새롭게 찾아온 계절을 맞이하는 것."

옷장정리. 나는 옷장정리를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새로운 계절이 찾아올 때면 지나가는 계절이 아쉽기도 하면서, 새로운 계절에 설레기도 한다. 그 마음을 담뿍 담아, 지난 계절의 옷을 정성스레 빨래하고 뽀송하게 햇볕에 말려 그 계절의 햇볕 냄새를 고이고이 접어둔다. 그러다 1년 뒤에 다시 그 계절을 맞이할 때 옷을 꺼내면, 그 안엔 잘 접어두었던 햇볕냄새까지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래서 항상 계절을 끝내며 옷장에 옷을 넣어둘 땐, 힘이 들더라도 굳이 손빨래를 하는 편이다. 손빨래를 하면서 손가락 사이사이로 비누 거품이 톡톡 터지는 느낌이 들면 조금 간지럽기도 하고 설레기도 한다. 새롭게 찾아온 이번 가을이 딱 그렇다.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기 위해, 그간의 묵은 감정들을 씻어내고 싶었고 좋은 향기만 남겨두고 싶었다. 내 때 묻은 감정들을 미련이라고 치부하고 탓하기보다는, 필요한 감정들이었고 당연한 것들이라 인정해주고 싶었다. 필요했던 감정들인 만큼 떠나보낼 때 정성스레 보내주고 싶었다. 지나간 계절의 끝에서는,  세탁기로 빨래하는 것이 아니라 정성껏 손빨래를 하듯이.


밀린 계절의 옷들을 옷장 속에서 정리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계절의 옷들은 옷장 속에 담을 수 없다. 밀린 계절의 옷부터 깨끗하게 세탁을 하고 정리를 해야만, 새롭게 찾아온 계절의 옷들을 옷장에 채워 넣을 수 있다. 우리의 감정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해묵은 감정을 정성 들여 하나하나 정리해야만, 비로소 마음에 빈 공간이 생겨 새로운 감정을 채울 수 있는 것.


옷장을 정리하는 데에도 이런 정성이 필요하고,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는 데에도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한데, 우리의 마음을 정리하고 새로운 감정을 마주하는 데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이치이지 않을까.


정성껏 손빨래한 옷들처럼, 정성껏 돌봐준 마음은 좋은 향기를 머금고 남겨질 것이다. 그러니 시간에 쫓겨, 상처받은 마음을 남겨진 미련을 쫓아내느라 힘겨워하지 말자. 모든 일에는 정성과 시간이 필요함을.


옷장 정리를 하다가 마음의 정리까지 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문장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우리는 일상을 거닐다가, 우리의 삶을 자주 종종 마주한다. 때론 우리가 삶을 무심히 지나치기도 하고, 때론 삶이 가슴에 콕하고 박혀버리기도 하면서, 그렇게 삶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예민해서 조금 불편할 수 있는 감각들이, 글을 쓸 때는 꽤 쓸모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 흔하게 넘길 수 있는 평범한 일상 속 순간들이 하나의 글감이 되어 내게 영감을 주고, 내 손가락 사이에서 문장이 되어 살아나니까. 그러니 인생에서 필요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쓸모없음에서 언젠가 쓸모를 느낄 수 있고, 단점이라고 생각한 부분이 장점이 될 수 있으니. 우리의 삶은 정답이 없어 우리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니까. 그게 우리에게 허락된 삶의 매력이 아닐까, 하고.



가을 한 스푼 더하기
이전 03화 오리 가족을 만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